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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10. 2020

빈 미술사 박물관 2

루벤스는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행정관으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그의 작품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루벤스의 작품 중 성숙기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은 안트베르펜의 예수회로부터 의뢰받은 제단화 3점과 천장화 36점이다. 그런데 1718년 교회의 화재로 천장화는 거의 소실되었고 제단화만 무사하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성 이그나티우스 데 로율라의 기적>이다.



작품에서 악마로부터 병자들을 구해달라는 성이구나티우스의 기원이 성취되어 악마는 물러가고 병자들은 치유된다. 성 이그나티우스를  에워싸는 종교적 분위기와 고통받는 민중의 현실적 표정이 신비감과 세속감으로 대비를 이루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회화적 대비효과는 후에 장엄한 교황곡처럼 펼쳐지는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 사용되었다.


다음은 루벤스가 그린 <모피>를  감상하자.



루벤스는 통통하고 살집이 많은 여자에게 관심이 많았다. 당시에 마른 여자는 빈곤의 상징이었고 통통하면서 살결이 뽀얀 여자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 미인으로 대접받았다.


이 작품에서 루벤스는 원숙한 기량으로 37살의 연하이며 두 번째 아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 전체에 덞은 아내에 대한 애정과 넘치는 행복을 표현한 이 작품은 자연스러운 포즈와 뛰어난 색감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작품의 구성은 간단하다.


인물 위주의 전신상은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채 배경과 의상들이 단일한 색조여서 여인의 투명한 살빛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작품 속 여인은 비너스의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무거운 모피를 한 손으로 가까스로 올려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다. 특히 여인의 손과 홍조를 띤 붉은 얼굴에서 에로틱함이 묻어 나온다.


다음으로 독일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인 알브레트 뒤러의 작품을 감상하자.



금세공업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가 된 뒤러는 틈틈이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 그때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느낀 생각과 감동을 뒤러는 이 작품에 잘 녹여내어 독일 르네상스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작품은 4세기 페르시아의 왕 사포가 로마 황제의 지령을 받고 지금의 아르메니아에 있는 아리랑 산에서 1만 명의 그리스도 교인을 학살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뒤러 자신도 가장 좋아하는 이 작품은 당시 작센의 선제후인 현공 프리드리히의 의뢰를 받아 그린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1만 명의 순교에 개해 관심이 많아 당시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완성된 그림을 벽에 걸어 두었으며 순교한 사람들의 유물도 소장했다고 한다. 


그림에는 총 13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두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고 있다. 오른쪽의 터번을 쓴 사람이 학살을 주도한 페르시아 왕이며,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검은색을 입은 두 사람 중 오른쪽이 바로 뒤러 자신이다. 그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순교자들을 애도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빈 미술사 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는 미술품 중 세계 최고의 회화로 인정받는 얀 베르메르의 <화가의 아틀리에>를 감상하자.



이 작품은 우리에게 <진주 귀걸이>이로 친숙한 베르메르의 작품이다. 그는 네덜란드가 독립하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최전성기를 누리던 <황금시대>에 활동한 화가로 당시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 37점의 작품만 전해진다.


처음에 그의 작품이 많지 않아 19세기에 다른 미술가의 작품을 잘못해서 그의 작품이라고 결정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은 대다수 전문가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을 정도로 뛰어나다. 특히 <화가의 아틀리에>는 베르메르 특유의 세심한 빛의 표현과 정확한 색상 처리로 미술사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다.  


작품을 살펴보면 작업 중인 화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한쪽으로 젖혀 놓은 두껍게 짠 커튼 뒤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다.


진주처럼 환한 빛은 커튼과 웅장한 샹들리에 그리고 앞쪽에 보이는 의자에 박힌 큰 못에서 반짝거린다. 특히 탁자에 걸친 옷감을 타고 빛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창 앞에서 눈을 내리깔고 서 있는 모델은 아폴론의 시중을 드는 아홉 명의  뮤즈 가운데 한 명인 클리오로 그녀의 상징인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트렘펫을 들고 왼손에는 책을 들고 있다.


그녀의 앞에 놓인 탁자 위에는 펼쳐진 책이 보이는데 이는 이탈리아 미술 이론 중 소묘 예술을 상징하고 그 옆에  누운 석고 가면은 모방 예술을 상징한다. 또한 탁자 위에 세워둔 책은 회화 규칙을, 길게 늘인 비단 직물은 장식예술을 상징한다.



특히 석고 가면은 네덜란드에서 회화가 여전히 살아 있는 반면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는 남부 유럽에서는 회화 예술이 사망하였음을 암시한다.  


화가의 밑에 보이는 바닥의 타일은 이 집이 부자임을 나타내고 벽에 있는 의자는 누구든 이 자리에 앉아 세심하게 구성된 화가의 아틀리에를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젤 앞에 있는 화가는 일상복이 아니라 15세기 예복을 입고 있다. 이는 네덜란드 회화의 대가들인 얀 반 에이크와 반 데르 바이텐이의 예술과 자신의 예술이 연걸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또한 이젤은 위로 갈수록 뾰족해지면 지도에서 신생 공화국이 된 네덜란드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화가의 오른손을 받치는 말 스틱은 섬세한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스틱의 끝을 천으로 누벼 캔버스에 닿아도 그림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제작하였다. 화가는 캔버스에 승리의 관을 그려 넣어 마치 화가의 손이 승리의 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작품 제일 위에 보이는 지붕의 들보는 수평으로 반복되며 작품 전반에 안정감을 부여하고 그 아래 화려한 샹들리에는 당시 지배세력이었던 합스부르크가 의 문장인 독수리로 장식되어 있으나 정작 촛불이 없어 합스부르크가 의 세력이 점차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몰락은 벽에 걸린 구겨진 지도에서도 볼 수 있다. 지도의 중앙 선은 독립한 신교도의 국가 네덜란드와 아직 합스부르크가 의 영향 아래 있는 구교도의 플랑드르 지방을 정확히 나누고 있다.          


당시 신생 독립국가가 된 네덜란드의 사람들은 정치적 문화적 자유를 누리면서 더 이상 종교 세력이나 왕을 위한 회화가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회화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풍경화과 정물화 그리고 장르화가 신생 공화국의 모습과 생활양식을 보여주게 되었다. 특히 장르화는 도덕적이며 정치적인 메시지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실내 풍경을 그 소재로 많이 사용하였다. 이 작품이 그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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