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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Oct 10. 2020

두브로브니크 여행

천국을 논하지 말라

두부로브니크의 구도심은 도시를 지키기 위한 성벽과 탑으로 둘러 싸여져 있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베네치아와 터키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성벽은 세계의 건축물들 중 가장 잘 보존되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높이 25m 성벽을 지나면 정문인 필레게이트가 나온다. 정문 위에는 성 블라이세 조각상이 보이는데 그의 오른손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두브로브니크 모형이 들려 있다.




성 블라이세는 10세기 경 베네치아 사람들이 두브로브니크를 정복하려는 계략을 저지하면서 이 도시를 지켜냈다. 이후 그는 두부로브니크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정문을 지나면 두브로브니크 구시가를 가로지르는 플라차 대로가 나온다.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대리석으로 지어진 대로의 바닥은 수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닳고 닳아 낮에도 반짝거린다. 그래서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발걸음을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대로가 되었다.



원래 이 곳은 바다였으나 바다를 메워 만든 도로로 그리 길지 않지만 성당과 광장 그리고 낭만 가득한 노천카페로 볼거리가 가득하다.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의 여행은 오노프리오 분수부터 시작한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이 분수는 12km 떨어진 강에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1870년에 재건되어 지금은 지하수로와 연결되어 사용하고 있다.



분수대 반대편에는 성 사비오르 성당과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다. 성 사비오르 성당은 1520년에 건립되었으며 1667년 대 지진에도 살아남은 유일한 성당이었으나 1991년 세르비아의 전쟁으로 포격을 당하여 지붕의 70퍼센트가 파괴되었다가 최근에 재건한 성당이다.




성 사비오르 성당과 프란체스코 수도원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프란체스코 약국이 나온다.


파도바와 바그다드의 약국과 함께 가장 오래된 약국은 1317년에 설립되어 사람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육지에 약을 수출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장미 수분크림을 사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문 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 조각상이 보인다. 피에타 조각상 좌측 인물은 성 제롬으로 성경을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사람이자 크로아티아 중부지방인 달마티아 전역의 수호 성인이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도시에서 벗어나 동굴에서 가거하며 성경을 번역하는 중 입속에 가시가 낀 사자가 다가와 가시를 뽑아주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발 밑에는 언제나 사자가 있다. 우측에 있는 인물은 세례 요한이다. 그는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인물로 그의 상징인 가죽옷을 입고 십자가를 들고 있다. 또한 모든 조각상의 머리 위에는 그들이 성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후광이 보인다.



플라차 대로를 걷다보면 중간 중간 좌우로 뻗은 골목들이 보인다. 시민들의 일상이 담긴 골목에는 집과 식당 그리고 노천카페가 늘어서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전쟁의 포화속에 이 곳을 보존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 군이 3개월 동안 공격을 하면서 두브로브니크의 여러 곳이 파괴되었다. 이 때 프랑스 학술원 원장인 장 도르메종이 유럽문명의 상징이 파괴되고 있다며 유럽의 지식인들이 힘을 합쳐 인간 사슬을 만들자고 제안하여 지금의 두브로브니크를 지켰다.




전쟁으로부터 살아남은 두브로브니크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건물1층에 식당이 보인다. 하지만 이전에는 부엌은 맨 위층에 있었다. 당시 장작으로 불을 피웠는데 음식 할 때의 연기가 투숙객을 함들게했기 때문이다.


또한 귀족들의 저택은 중앙에 홀이 있고 각 코너에 방이 있으며 방의 구조는 똑같았다. 귀족들 저택의 부엌 역시 제일 위층에 있었다.


플라차 대로 끝에 이르면 창을 들고 있는 올란도 동상이 나온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기독교를 지킨 영웅 롤랑을 상징하는 동상으로 그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정신에 감동받아 머나먼 이곳에 그의 조각상을 설치했다.


 


롤랑의 이탈리아식 표현이 올란도이다. 올란도의 왼손은 검의 요정이 만들었다는 <뒤랑달>이라는 칼을 쥐고 있다.

또한 그의 오른쪽 팔꿈치에서 손까지의 길이는 두브로브니크의 팔꿈치라고 하여 도시가 상업적으로 번성했을 때 팔꿈치의 길이 51.2cm가 길이를 재는 기준이 되었다.


올랑도가 새겨진 기둥은 국기 게양대로 사용되거나 죄인을 묶거나 고문하거나 처형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플라차 대로의 끝에 있는 종탑의 시계는 매시 정각에 그 시간만큼 종을 치고 벽면의 문어 시계는 시간을 가르킨다. 또한 아래에 있는 황금빛 둥근 공은 보름달을 보여주며 절기에 따라 공은 점차 은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탑 왼쪽에 위치한 스폰자 궁전은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1516년 무역을 취급하는 세관으로 사용되었다. 르네상스식 아치와 고딕양식 건물로 이루어진 이 곳에 두브로브니크 역사에 대한 7km에 달하는 문서와 오스만 투르크에 관한 10만장의 서류를 보관하고 있다.




스폰자 궁전에서 구 항구로 나가는 입구를 지나면 렉토르 궁전이 나온다. 렉토르 궁전 앞에는 르네상스 시대 코미디 작가인 마린 드르시치 동상이 있다. 그는 이 도시에 대한 비판이 가득한 작품을 많이 썼다가 베네치아로 도망간 후 그 곳에서 사망했다.


해마다 여름 축제 기간이 되면 그의 작품들이 이곳 광장에서 공연된다. 그의 동상에 앉아 코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에 유난히 그 곳만 반짝인다.




렉토르 궁전은 최고 통치자가 사귀족 국가였던 이 도시는귀족들 중 그들을 대표하는 렉토르를 선출하여 렉토르 궁전에 기거하며 정치를 하였다.


궁전에 입장하면 정교한 조각상들로 장식한 안뜰과 렉터가 머물던 침실과 집무실 그리고 무기고와 지하 감옥등을  방문할 수 있다.


당시 렉토르에겐 명예와 많은 권력도 있었지만 몇 가지 제한도 있었다. 렉토르는 그의 재임 중 사적인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궁전 밖으로 출입이 제한되고 가족과도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렉토르 궁전을 마지막으로 두브로브니크 시내 구경이 끝나면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으로 올라야 한다.


두브로브니크를 제대로 보기위해서는 5번을 보아야 한다.

먼저 케이블카를 타고 도시 위로 솟아 있는 산에 올라가서 한번 보고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 다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구시가 전체를 감싸는 성벽에서 세 번째로 보고 마지막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낮에 한번 밤에 한번 보아야 한다.


 번을 보아도  때마다 새로운 두브로브니크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412미터의 스르지 산의 정상에 오르면 보고  보아도 눈을   없는 두브로브니크의 전경이 펼쳐진다. 이리저리 사진을 아무리 찍어보아도 눈에 보이는   황홀한 전경을 담을  없다.


도시로 내려와 좁은 골목을 지나면 성벽을 오르는 입구가 보인다. 13세기에 시작하여 16세기에 지어진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축 되었으나 최근에는 바다로 둘러싼 도시를 감상하기 위해 몰려드는 여행자들로 이전보다 더 바쁘다.


구시가를 둘러싸며 25m 높이에 약 2㎞ 뻗어 있는 성벽 길을 걸으면 붉은 지붕과 조금 덜 붉은 지붕이 교차한다. 붉은 지붕은 전쟁으로 무너져 최근에 지은 것이다.



성벽을 걸으며 바로 내 눈앞에서 보는 두브로부니크의 절경은 생애 처음 느끼는 감동을 선사한다. 하연 건물위의 붉은 지붕이 성벽을 사이에 두고 푸른 아드리아 해와 경쟁하듯이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1시간이 넘는 성벽투어는 바다와 도시가 보여주는 모든 아름다움을 분출하며 여행자의 아까운 시간을 순식간에 삼켜먹는다.


성벽을 내려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지루하지 않는 골목길을 구석구석 다니다 보면 해가 질 무렵이 다가온다. 그러면 여행자는 구시가 끝에 있는 항구로 가서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그 곳에서 아드리아 해의 매혹적인 일몰이 바다와 하늘을 층층이 물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몰이 점점 붉게 늘어져 두브로브니크를 감싸면 도시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처럼 붉게 반짝인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두브로브니크를 보지 않고 천국을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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