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봉기 Nov 02. 2020

마추픽추 여행

사라진 잉카의 공중도시

아구아스 칼리안테스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을 오르면 마추픽추이다. 물론 기운이 넘치는 여행자들은  2시간 넘게 걸어서 올라오기도 한다. 한 발 한 발 걸어서 정상에 오른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입장권과 여권을 보여주고 입구를 지나 계단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마추픽추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망지기의 집이 나온다. 과거 외곽의 농지와 외부의 출입 등을 관찰했던 이 곳에 서면 깊고 푸른 안데스 산맥을 배경으로 우리가 늘 보았던 마추픽추의 모습의 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중도시 마추픽추는 일반적인 도시와는 달리 2천 미터 높이에 있어 깊고 험준한 안데스 산맥들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 여행자들은 도시 내의 신전이나 광장 그리고 집을 관람할 때마다 그 뒤로 보이안데스 산맥의 높고 깊은 공간에 경탄한다. 이런 곳에서 살았던 잉카인들의 마음에는 태양과 깊은 고요가 주는 신비로운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안데스의 귀여운 동물 알파카가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망지기의 집에서 내려와 공중도시의 입구인 태양의 문으로 가다 보면 가장 먼저 계단식 밭인 <안데네스>를 만난다. 마추픽추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안데네스>를 걷다 보면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밭을 만들어 자급자족했던 잉카인의 지혜와 노력을 저절로 체감할 수 있다.


잉카인들은 평지가 없고 구릉지로만 되어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비탈길을 빙 둘러가며 돌 축대를 쌓아 농경지로 이용했다. 잉카인들은 주로 옥수수, 감자 그리고 코카를 재배했다. 마추픽추의 계단 농경지의 규모로 보아 대충 1만 명 정도의 인구를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추픽추의 계단식 밭을 지나면 태양의 문이 나온다. 오래전 이 도시로 들어가려면 이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가 있었다. 잉카의 석조 기술로 정교하게 만든 태양의 문을 들어서면 위쪽으로 신전 지역이 나오고 아래쪽으로 주거지역이 보안다. 마추픽추의 신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태양의 신전이다.



태양의 신전은 마추픽추 유적지에 있는 200여 개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탑 모양을 하고 있으며 2개의 창문이 있다. 그중 가운데 동남쪽 창문은 동짓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창문을 통과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태양의 후예라는 잉카인들의 자부심을 엿보게 한다.


태양의 신전은 거대한 자연석을 활용해 특별한 가공 없이 지은 건물로 철제 도구가 전혀 없었던 시대에 잉카의 정교한 석조기술이 녹아있는 건물이다.



잉카인들이 돌을 다룬 기술은 신비롭다. 그들은 20톤이나 되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 수십 ㎞ 떨어진 산 위로 날라와 이 곳에 신전과 집을 지었다. 면도날도 드나들 틈 없이 정교하게 돌을 쌓은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태양의 신전을 지나면 날개를 편 독수리 모양을 한 콘도르 신전을 만난다.



몸무게가 10kg에 달하는 콘도르는 양 날개를 펼치면 3미터가 넘을 정도의 큰 새로 안데스 산맥의 바위산에 서식한다. 전설의 새로 불리는 콘도르를 잉카인들은 신성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콘도르 신전에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의 무덤이 있다. 그들은 사람이 죽어서 콘도르 신전에 묻히면 지하세계로 안 가고 바로 하늘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콘도로 신전을 지나면 마추픽추를 관통하는 수로가 있다.



2천 미터에 위치한 봉우리에 어떻게 물을 끌어왔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농경과 식수에 필요한 마추픽추의 수로는 너무나 정교해서 비가 많이 와도 물웅덩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마추픽추에서는 수로 외 산바람을 이용한 자연 냉장고를 개발해 서양문명보다 500년이나 앞서 식품 저장 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자연 냉장고에 감자를 넣어두면 6년이나 썩지 않았다고 한다.


수로를 지나면 세문을 가진 신전이 나온다.



해가 뜨는 동쪽에 위치해 가장 먼저 해를 받는 장소에 위치한 이 신전은 도시의 최고 계급인 제사장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문의 신전을 지나면 마추픽추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인티와타나가 나타난다.



인티와타나의 중심에는 동서남북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돌이 하나 서 있는데 바로 해시계이다. 잉카인들은 돌의 그림자를 통해 시간을 알았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해시계를 태양을 묶어 놓은 기둥으로 해석하며 태양의  궤적이 바뀌면 큰 재앙이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 성스러운 의식을 지냈다고 한다.


태앙신을 숭배한 잉카인들에게 인티와타나는 가장 신성한 도구로 잉카의 주요 도시의 신전에 인티와타나가 있었다고 한다. 스페인의 기독교 군대는 잉카의 주요 도시를 점령할 때 가장 먼저 인티와타나를 파괴했는데 스페인의 침략을 받지 않은 마추픽추에는 그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마추픽추의 신전 지역의 끝에 제례용 돌이 있다. 젊은 봉우리라는 뜻을 지닌 <와이나픽추>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이 돌은 여러 가지 제를 올렸던 곳으로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의 모양을 그대로 하고 있다.


제례용 돌을 지나 중앙 광장을 지나면 당시 잉카인들이 살았던 주거지가 밀집해 있다.



고대 잉카인들은 계급사회 속에 살았다. 그래서 왕과 귀족들은 주로 햇볕이 잘 드는 남쪽에 거주했으며 서민들은 북쪽에 살았다. 또한 왕과 귀족 그리고 신들을 모셨던 곳은 정교하게 돌을 쌓아 올린 주거지로 되어 있는 반면 평민들이 살았던 주거지는 돌의 짜임새가 고르지 못하고 엉성하게 건축되었다.  


1만 명이나 되는 잉카인들이 살던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인 하이럼 빙엄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폐허의 도시였다. 이곳에 살았던 잉카인들은 스페인 군대들의 침략으로 더욱 깊숙이 숨기 위해 처녀들과 노인들을 마추픽추의 한쪽 묘지에 묻어버리고 제2의 잉카 제국을 찾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18세기 중엽 잉카의 마지막 왕이었던 투팍 아마루 2세는 스페인의 포악한 식민 통치에 대해 무력으로 싸웠다. 그러나 불행이도 그는 스페인 군대에 붙잡혀 지독한 고문과 함께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를 위한 노래  <엘 콘도르 파사>는 죽은 그가 안데스를 상징하는 새인 콘도르로 환생해 안데스 창공을 날아다니며 인디오들을 보호한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달팽이보다 참새가 되고 싶어
네. 할 수만 있다면
못보다는 망치가 되고 싶어
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차라리 멀리 항해하고 싶어.
여기 사라진 백조처럼
남자는 땅에 묶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리를 낸다
가장 슬픈 소리

거리보다는 숲이 되고 싶어
네.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내 발아래 땅을 느끼고
네. 할 수만 있다면


잉카의 후예들은 평생 땅을 기어 다니는 달팽이보다는 하늘을 나는 참새가 되고 싶어 했으며 두들겨 맞기만 하는 못 보다는 망치가 되고 싶어 했다. 또한 그들은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며 콘도르가 되고 싶어 했다.



콘도르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의미한다.



이전 04화 마추픽추로 가는 여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