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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Oct 19. 2020

아바나 헤밍웨이 투어

파멸당할지리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체 게바라 다음으로 쿠바를 상징하는 인물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이다.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겼던 <노인과 바다>는 작품 속 주인공인 노인이 청새치가 벌이는 사투를 마치 옆에서 지켜보듯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노인과 바다>는  아바나에서 자신의 낚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헤밍웨이는 1932 년 여름 2주 동안 청새치 낚시를 하러 이곳에 왔다가 쿠바의 매력에 빠져 여행을 2개월 연장하였으며 결국 1939년에 아바나에 정착하여 20년 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1960년대에 사회주의 물결이 쿠바를 뒤덮자 아바나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다가 1961년 7월 2일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쿠바는 그에게 영혼의 터전이자 전부였다.


지금도 아바나 곳곳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의 흔적을 따라 가보면 그가 느꼈던 쿠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애주가인 헤밍웨이는 특히 쿠바의 술집과 칵테일에 큰 명성을 안겨주었는데 그 대표적인 술이 플로리디타의 다이키리와 보데기타의 모히토이다. 원래 칵테일은 쿠바의 발명품이 아니지만 20세기 초 미국인들에 의해 소개되면서부터 순식간에 쿠바 전역을 휩쓸었다. 아열대 기후에 다양한 과일과 세계 최고의 럼주를 생산하는 쿠바가 칵테일 강국이 된 것은 자연스럽다.




초기 칵테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쿠바 리브레는 콜라가 쿠바에 수입되면서 여기에 럼주와 레몬을 섞어 만든 것으로 당시 오랜 스페인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이던 쿠바인들은 이 시원하고 새로운 맛 음료수에 <자유 쿠바>라는 뜻의 쿠바 리브레라는 이름을 붙였다.




설탕과 레몬즙 그리고 화이트 럼에 대패질한 얼음을 섞어 만드는 다이키리는 쿠바 동부 산티아고 데 쿠바 지역에 있는 다이키리 근처의 광산에서 일하던 한 남성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1940년대에 칵테일 기술이 더욱 섬세하고 세련미를 더해 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오늘날 쿠바의 상징인 모히토이다. 박하잎과 럼주 그리고 설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모히토는 시원하면서도 단맛과 알코올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 오늘날까지도 단연 최고의 칵테일로 사랑받는다.




헤밍웨이가 앉은자리에서 다이키리를 13잔을 마신 곳으로 유명한 플로리디타를 방문하면 헤밍웨이의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작은 플로리다>라는 뜻이 플로리디타는 사방 벽면은 헤밍웨이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진은 헤밍웨이와 피델 카스트로가 함께 찍은 것이다. 시가와 칵테일을 입에 달고 살았던 헤밍웨이는 이곳에 앉아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사르트르와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그리고 영화배우 게리 쿠퍼 등 세계적인 명사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2003년 설치된 헤밍웨이의 실물 크기 동상이 자리 잡은 술집 구석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그와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모습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플로리디타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보데기타가 나온다. <거리 중간쯤의 작은 술집>이라는 뜻의 이 집에는 벽마다 낙서가 가득하다. 모히토를 시키자 허브와 설탕 그리고 레몬주스 등을 담아 준비해 둔 잔에 럼과 탄산수 그리고 얼음을 부어 만든 모히토 한 잔을 준다. 아바나 3년 산 럼주의 씁쓸한 맛과 민트가 섞인 허브의 맛이 어우러진 모히토는 한 여름밤의 묘약과 같이 달콤하다.


플로리디타와 달리 작은 공간이 많은 보데기타에는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내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라는 문장과 그 아래 헤밍웨이의 서명이 적힌 종이를 끼워둔 액자가 보인다.




보데기타를 나와 다시 10분 정도 걸으면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호텔 암보스 문도스가 나온다. 지금도 호텔로 사용되는 이 곳에 헤밍웨이가 묵었던 511호 방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려 복도를 따라 방으로 가면 그가 사용했던 타자기를 비롯하여 그의 손때가 묻은 연필과 배 모형을 감상할 수 있다. 깨끗한 욕실과 침실이 있는 방 의자에 앉아도 창밖으로는 아바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헤밍웨이의 방을 나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 테라스로 가면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과 함께 시원한 음료 그리고 쿠바에서 무엇보다도 귀한 와이파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아바나에서 한 시간 가량 이동하면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작은 어촌마을 코히마르가 나온다. 마을에 들어서면 헤밍웨이의 흉상이 있는 조그만 광장이 있고 그곳에서 조금 걸으면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던 바인 라 테라스가 나온다.





이곳에서 그는 20여 년을 낚시를 즐기며 <노인과 바다>라는 역작을 만들어냈다. 별 특별한 것 없는 시골마을이지만 마을길을 천천히 걸으면 금방이라도 저 쪽 길 끝 방파제에서 노인이 그물을 들고 나타날 것만 같다.


<노인과 바다>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작은 어촌 마을에 산티아고라는 노인이 매일 바닷가에 나갔지만 84일째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하고 세월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청새치를 잡는다. 이틀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고기를 낚은 노인은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밤중까지 상어 떼와 싸웠지만 청새치는 뼈만 남았다. 노인은 몸뚱이가 뜯겨 성하지 않게 되어버린 청새치를 바라보며 자신의 물고기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물고기를 습격한 상어를 죽였다고 자부하며 다음과 같이 혼잣말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배가 항구로 돌아온 후 노인은 오막살이 침대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헤밍웨이 투어의 마지막은 그가 살았던 집을 개조한 헤밍웨이 박물관이다. 그는 1939년부터 아바나 근처 샌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의 울창한 열대 숲에 자리 잡은 소박한 시골집 핀카 비히아에 살며 집필활동을 했다.




집안 입장이 금지되어 있어서 넓은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9천 권의 책이 있는 서재와 타자기 그리고 사진들이 있으며 집 안에 있는 욕실에서 내다보는 전망이 가장 좋아 보인다.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항구 너머로 아바나와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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