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진짜 얼굴
아바나에 위치한 혁명 박물관은 1920년까지 대통령 마리오 가르시아 메노칼부터 풀헨시오 바티스타까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59년 쿠바 혁명 후 박물관으로 개편되었다. 특히 쿠바 혁명의 역사를 전시한 이곳은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에 대한 자료가 많다.
콜롬버스에 의해 1492년 발견된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로서 남미로 가는 스페인의 관문이자 카리브해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러나 멕시코와 남미가 식민지로 개발되면서 점차 소외되었으며 1776년 미국의 독립과 1804년 아이티의 독립을 시작으로 아메리카 각국이 독립해 나갈 때에도 최후까지 에스파냐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1868년부터 78년까지 벌어진 독립전쟁으로 자치령임을 인정받았으나 처우는 나아진 게 없었고 결국 호세 마르티를 중심으로 1895년에 2차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1898년 제국주의에 눈뜬 미국이 쿠바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사태는 미국과 스페인 전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쿠바 독립당이 쿠바의 반 이상을 수복하자 스페인은 물러가지만 미국의 통제 아래 들게 된다. 1902년 미국은 쿠바를 독립시켰으며 그 대가로 관타나모 인근의 땅을 사들여 미국의 군사기지로 삼았다. 이후 1959년까지 쿠바는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존재했다.
1933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바티스타 군사정권이 미국의 비호아래 쿠바를 장악했으나 무능과 부패 그리고 폭정으로 국민들의 저항의식은 고조되었다. 1952년 7월 26일 변호사이던 피델 카스트로도 참여한 산티아고 게 쿠바에 있는 몬카다 병영에서 봉기가 일어나지만 실패한다. 당시 바티스타는 카스트로를 그저 25살 애송이로만 보았는지 1년후 특사로 석방했고 멕시코로 탈출한 카스트로는 그곳에서 많은 반 바티스타 동지들을 규합했다. 체 게바라를 만난 것도 이때이다.
이들은 1955년 요트 그람마 호를 타고 쿠바에 몰래 잠입하지만 이를 눈치 챈 바티스타 군대의 공격에 82명의 동지 중 70명이 죽고 12명만으로 역경 끝에 동부 산간지방에서 저항을 개시했다. 이 시기에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카스트로의 공산 게릴라군은 대민봉사활동을 하며 지역 거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글자도 가르쳐주고 하는 식이었다. 의학도이던 체 게바라는 의료 대민봉사활동을 주로 했고 이게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갔다. 대민봉사활동을 통해 확고한 지역 거점을 세운 공산 게릴라군은 산간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로 정부군에 매우 효율적인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59년 1월 카스트로는 쿠바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호응을 받아 쿠바혁명을 성공시켜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추방하고 쿠바의 권력을 장악했다.
혁명박물관은 1953년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의 어용정권이던 바티스타 정권을 습격하면서 시작된 쿠바 혁명을 기념하고 혁명 이후 21세기 까지의 쿠바 근대사의 변화된 모습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전시관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베네수엘라의 독립운동가이자 스페인으로부터 남아메리카 6개국을 독립시킨 시몬 볼리바르와 쿠바의 독립전쟁을 이끌며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독립시킨 호세 마르티의 흉상이 있다.
연회장으로 사용하였던 첫번째 방의 천장에는 천사가 쿠바의 깃발을 들고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쿠바의 독립과 번영을 상징한다.
다음 방은 대통령의 집무실과 각료 회의실이다. 두 군데 모두 아담하지만 기품이 느껴진다.
두 곳을 거쳐 안쪽으로 들어가면 쿠바 혁명 당시의 자료들이 소장된 전시관이 나온다. 전시관은 대부분이 사진과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신문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외 시대를 상징하는 물건과 혁명 당시에 쓰였던 무기 등이 있다. 신문 기사에는 혁명 성공 후 카스트로가 주장한 경제개혁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혁명정부는 당시 3개월 내에 5만 명의 신규 노동자를 고용하는 산업화와 농업과 관세의 개혁등을 주장하였지만 미국의 경제 제재로 실패했으며 이후 고립된 채 소련의 원조에 의지하게 되었다.
다음 신문 기사는 1960년 미국을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는 연설을 보여준다. 연설문의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 세상에서 무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싸우는 인간의 윤리가 그 어떤 무기들 보다도 중요하다.
쿠바 혁명이후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선택한 쿠바 를 전복시키기 위해 미국 CIA는 여러 공작을 꾸몄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피그스 만 침공이다. 1961년 4월 미국이 훈련시킨 1400 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카스트로 체제의 전복을 위해 은밀히 쿠바로 상륙했다. 그러나 이들 침략군은 쿠바 정규군에게 사흘만에 격퇴되고 100 여명의 사망자와 1천명이 넘는 포로가 생포되었다. 카스트로 정부는 1961년 12월 이들의 몸값으로 5300 만 달러를 받은 후 사로잡은 1113명을 풀어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의 위신은 크게 떨어졌고 강대국 미국에 맞서는 쿠바의 세계에서의 위상은 매우 높아졌다.
쿠바의 스포츠 분야를 설명하는 전시관에서는 특이하게도 카스트로가 시타를 치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야구선수 출신으로 대학생 시절에는 대학팀 대표로 미국을 방문해서 메이저리그 팀에 입단하고자 뉴욕 양키스의 입단심사에 참가했지만 입단에 실패했다고 한다.
피델의 열정적인 야구사랑에 힘입어 쿠바 국내 리그와 야구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쿠바가 오늘날 최고의 야구국가로 서게되었다.
다음 방은 혁명 후 쿠바 의료시설이 향상되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당시 병상의 증가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보면 1958년 28,536 개이던 병상 숫자는 1990년 63,205 개로 늘어난다.
특히 세계 정상급을 자랑하던 쿠바 의료 기술은 소련의 원조가 끊기고 약품과 의료기기의 만성적인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혁명당시 산악지방을 누비며 게릴라 활동을 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밀납인형이 보인다. 혁명이 성공하고 체 게 바라는 쿠바의 2인자로 순회대사와 중앙은행장 그리고 산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하지만 피델과의 혁명전의 약속대로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로 가서 계속적인 혁명활동을 하가가 볼리비아 정규군에게 체포되어 3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계속해서 쿠바혁명 게릴라 전을 이끈 영웅 세 영웅인 카밀로 세인푸에고스와 체의 그리고 카스트로의 조각상을 감상한다. 체는 그의 상징인 검은색 베레모와 크리스토발 카빈 경기관총을 가지고 있으며 중절모자의 시엔푸에고스는 M-1 카빈 총을 들고 있다.
다음은 혁명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관에는 혁명 당시 체게바라가 입었던 군복이 전시되어 있다. 의학도이자 쿠바의 제 2인자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체 게바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남미와 아프리카의 해방을 위해 온 몸으로 실천하다가 사망하였다. 그래서 그의 유품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쿠바에서 체 게바라는 혁명의 아이콘이자 영웅으로 수 많은 관광 상품에서 사용되고 있다. 쿠바 관광 가이드는 말에 의하면 체는 모든 세대에게 존경받으며 잘 생긴 외모덕분애 체가 없는 관광 상품은 없다고 말한다.
혁명 박물관을 나오는데 마지막 출입구 근처에는 <바보들의 코너>라는 벽화가 있다. 여기에는 바티스타 전 쿠바 대통령과 로날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그리고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그려져 있으며 각각의 인물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바티스타에게 우리의 혁명을 성공하게 해준 바보,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오.
레이건에게 우리의 혁명을 더욱 강하게 해 준 바보,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오.
아버지 부시에게 우리의 혁명을 더욱 공고하게 해 준 바보,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오.
아들 부시에게 우리의 혁명을 돌이킬 수 없게 도와준 바보,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오.
쿠바 혁명 박물관은 쿠바 혁명시기까지는 대체적으로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혁명 이후부터는 정부에 대한 찬양과 미국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일관한다.
박물관 내부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 뒤쪽에 있는 야외 전시으로 가면 혁명 때 주로 사용하였던 각종 전투기와 군용 차량 그리고 탱크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몇몇 군인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이 곳을 지키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카스트로와 체가 혁명 당시 타고 온 요트인 <그람마>호이다. 거대한 전용 전시관 안에 통째로 보관하고 있는 배는 실물 크기로 너무 커서 사진에 다 담을 수도 없을 정도이다. 혁명 박물관은 멋과 매력이 넘치는 아바나의 집과 골목 그리고 올드카들이 달리는 영화 촬영지 같은 쿠바가 아닌 진짜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의 민낯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