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장
코로나가 오고 나서 생활패턴이 바뀌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출근해서 여행 글을 쓰다 보면 점심시간이 오는데 회사 근처에 혼자서 밥 먹을만한 곳이 없다. 그러면 몇 군데 식당을 둘러보다가 산을 오른다. 두 시간 남짓한 등산을 하다 보면 배고픔과 허약한 멘탈이 씻은듯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날은 글에 푹 빠져 4시간 이상 무아지경에 글을 쓰다 보면 상상 이상의 정신적 허기를 느낀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배고픔과 함께 술고픔이 온다. 그런 날이면 아예 사무실부터 걷기 시작해 산을 오른다. 신호등을 건너고 언덕을 올라 산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늦가을이면 그 맑은 색감에 흠뻑 빠진다.
그날도 그랬다. 글이 주는 영혼의 허기를 없애려 길을 건너 산으로 갔다. 마스크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안경을 적시는 가운데 100m도 안 되는 영주 시장을 지나고 있었다. 채소와 과일을 파는 가게를 지나고 횟집을 지났다. 그리고 칼국수와 김밥집을 지나자 구석진 곳에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국밥집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5개밖에 안 되는 국밥집에 나이 드신 부부가 국밥 국물을 손질하고 표도 나지 않는 식당 청소를 하고 계신다. 손님도 없는데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구석진 곳에서 장사를 하는 모습에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렇게 국밥집을 스쳐 지나가는데 국밥집의 텅 빈 공간과 소주 생각이 나를 멈추어 세웠다. 혼잡한 점심시간에 한적한 식당에서 국밥과 소주 한잔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밥집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자 생각한 대로 메뉴는 시장스러웠다. 국밥 한 그릇에 5천 원, 큰 것은 6천 원이다. 국밥과 소주를 시키고 TV에서 나오는 코로나 뉴스를 보고 있는데 갓 토렴을 한 국밥이 나왔다. 기대 없이 소주부터 한잔을 하고 국밥을 한 숟가락 먹었는데 깜짝 놀랐다.
나는 돼지 국밥의 고장 부산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면서 부산에 맛있다는 국밥은 대부분 먹어보았다. 그래서 날씨가 흐려지거나 추워지면 어떤 국밥집이 맛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약간 비릿하지만 온갖 머리고기를 넣어주는 부평동 돼지국밥을 찾고 추운 겨울이면 깔끔하고 고소한 영도 돼지국밥집을 찾는다. 또한 심란하고 어지러운 날이면 국물색은 검지만 진한 깊이를 주는 창선 국밥집을 찾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항정살로 수육을 주는 남포동돼지국밥집을 찾는다. 그래도 가장 맛있는 돼지국밥은 유럽 출장을 다녀와서 먹는 국밥이다. 귀국해서 비행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돼지국밥집이다. 국밥을 한 그릇 먹고 나면 신이 내린 음식이라고 혼자서 히죽거리며 여행의 피로를 푼다.
그런데 부산의 구석진 시장에 우연히 들러 맛보는 국밥에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깔끔하고 고소한 맛에 깜짝 놀랐다.
설렁탕처럼 잡냄새 하나 없는 고소한 국물과 잘 익은 수육이 김치와 함께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신의 음식인 암브로시아가 부럽지 않았다. 여기에 소주 한잔을 마시자 세상을 다 가진 듯 여유로웠다. 더욱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생계를 위하여 매일 국밥을 만들며 지금까지 묵묵히 돼지국밥을 지켜온 사장님의 세월과 정성이 느껴져 약간 울컥했다. 국밥이 바닥을 드러내고 소주 몇 잔의 취기가 올라오자 허허거리며 국밥집을 나와 산을 올랐다. 그날따라 산은 따뜻하면서 아름다웠다.
그 이후로 기회가 있으면 그 집을 찾았다. 며칠 전에도 점심시간을 넘겨서 그 집을 찾았는데 역시 손님이 없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몇 번 왔다고 사장님이 저 멀리서 이야기를 건네신다. 자세히 들어보니 코로나로 손님이 없다는 이야기다. 몇 년을 하셨는지 물으니 이 자리에서만 30년을 하셨다고 한다. 그날도 코로나로 적는 방문자 노트에는 6명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여전히 허리를 굽힌 채 국물에 고기를 토렴 하면서 국밥을 말았다. 그 뒷 모습을 보면서 연로하신 사장님이 국밥을 직접 말아 주시는 시간이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그 시간을 더욱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도 국밥집을 찾았다. 식당에 어르신 한 분이 수백을 드시고 계신다. 나 역시 주문한 국밥이 나와서 먹고 있는데 근처 젊은 직장인 남녀가 들어와서 아무렇게나 외친다.
어무니 두 그릇
얼마 후 잘 말은 국밥 두 그릇이 나왔다. 그 젊은 친구들은 단골이라 따로국밥인지 수백인지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국밥이 나왔다.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으로 8천원을 계산하고 나오는데 취기 때문인지 오늘은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