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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Feb 25. 2021

알프스를 걷다.

알프스 트레킹

아침 일찍 일어나 두터운 옷을 준비한 후 인터라켄 서역으로 이동한다. 매표소에서 융프라우 왕복 티켓을 구입한 후 라우터브루넨 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3454m의 융프라우에 오르기 위해서는 라우터브루넨과 클라이네 샤이데거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아침의 시원한 공기와 설렘을 안고 인터라켄을 출발한 열차는 푸른 하늘과 빽빽한 숲 그리고 빙하가 녹아서 내려오는 시퍼런 강물을 지나 라우터브루넨에 도착한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있어 울려 퍼지는 샘이라는 뜻을 가진 라우터브루넨은 융프라우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역에서 내려 조그만 올라가면 교회와 목장 그리고 절벽으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절경을 자랑하는 전망대가 나온다. 이 곳은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자를 위한 융프라우 캠핑장으로 유명하다.



라우터 부르넨을  출발한 열차는 목에 종을 달고 유유히 풀을 뜯는 소와 빨간 지붕에 나무로 만든 집 그리고 푸른 하늘 아래 끝이 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을 지나 클라이네 샤이데거로 향한다.



클라이네 샤이데거에 도착한 열차는 융프라우를 등정할 여행자를 말없이 쏟아내고 출발지점으로 다시 내려간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눈이 쌓인 얼음산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클라이네 샤이데거는 알프스 트레킹을 위한 사람들의 성지로 만년설인 융프라우를 머리에 이고 푸른 산을 아래에 둔 채 눈부신 풍경을 자랑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클라이네 샤이데거를 출발한 열차는 급격한 경사로를 지나 융프라우 정상을 향해 달린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기차가 쉬지 않고 오르지만 열차 안은 3천 미터가 넘는 고산병에 시달리는 여행자들로 고요하다.


바위산을 뚫고 마침내 열차가 융프라우 정상에 도착한다.  



어지러운 기운을 느끼며 융프라우 역을 나서면 카페가 나온다. 이곳에서 티켓에 포함되어 있는 쿠폰으로 컵라면을 받을 수 있다. 3시간 넘게 기차 안에서의 추위와 허기진 배를 컵라면으로 달래니 그 맛은 꿀맛이다.


라면을 다 먹고 역 안에 있는 우체국으로 가서 연인이나 친구에게 엽서를 보내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우체국에서 보낸 엽서를 일주일 후에 수취인이 한국에서 받게 된다.



역 안에 있는 투어 표지판을 따라 걸어가면 승강기가 나오고 승강기를 타고 오르면 고도 3571m에 자리한 스핑크스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를 빠져나가는 순간 고산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빙하가 뿜어내는 눈부신 아우라에 여행자는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마침내 알프스의 정상에 올랐다는 벅찬 감정으로 온몸에 전율이 돋는다.



전망대를 내려와 에델바이스 조명으로 신비로운  알프스 산간 마을을 보여주는 대형 스노볼을 지나면 융프라우의 하이라이트인 스노 펀이 나온다.



스노 펀은 여름에도 스키와 눈썰매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단단한 외줄에 의지해 빙하 위를 짜릿하게 내달리는 티롤리안을 타지 않는다면 융프라우를 제대로 경험했다고 말할 수 없다.


스노펀에서 알프스 빙하를 충분히 즐겼다면 자연 그대로의 알레치 빙하를 다듬어 만든 얼음 궁전으로 이동한다.



미로 같은 얼음 궁전을 누비다 보면 수천 년 동안 겹겹이 쌓인 빙하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얼음궁전을 나와 바로 옆에 보이는 길을 따라가면 융프라우의 정취를 그대로 담을 수 있는 핫 플레이스가 나온다.



입구를 나와 만년설 위로 하얗게 펼쳐진 설원을 지나면 빨간 스위스 깃발이 펄럭인다. 이곳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한컷의 사진을 찍으면 웅장한 융프라우를 정복한 나를 영원히 기억할 증명서가 완성된다.


다시 융프라우 역으로 돌아와 열차를 타고 클리이네 샤이데거 한 정거장 전인 아이거글랫처 역에서 내려 1시간 남짓한 트레킹을 시작한다.




어린아이도 걸을 정도로 편안한 트레킹 길을 걷다 보면 내딛는 걸음마다 짜릿함과 행복감이 솟구친다. 만년설로 뒤덮여 영적인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융프라우와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 그리고 한 없이 이어지는 들꽃들을 마주하면 불안에 싸여있는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웅장한 알프스의 트레킹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미움을 티끌처럼 작아지게 만든다.



바로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클라이네 샤이데거에 도착한다.  



클라이네 샤이데거에서 열차를 타고 처음 올라왔던 반대방향인 그린덴 발트역으로 출발하면 알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잠시 들러보고 열차에 몸을 실으면  처음 출발한 인터라켄 역으로 돌아온다. 열차에 내린 여행자는 몸은 고단하지만 알프스를 걸었다는 충만감으로 가득하다.


호텔에 도착하여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날을 보냈다는 사실에 온 몸에 기분좋은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목욕 후 어제 사두었던 시원한 샴페인으로 하루를 마감하면 꿀맛같은 잠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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