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스위스로
파리 리용 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5시간이 넘어서야 바젤을 거쳐 슈피에츠에 도착한다. 슈피에츠는 인터라켄으로 가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작은 마을로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큰 호수를 끼고 있어 그 절경만으로도 여행자의 감탄을 자아낸다. 슈피에츠 기차역에서 푸른 풀밭을 지나 20분 정도 걸으면 유람선 선착장이 나온다.
슈피에츠를 출발한 유람선은 알프스 산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집들과 싱그러운 호수를 횡단한다.
엽서에서나 보던 환상적인 풍경들이 갑자기 내 눈앞에 펼쳐지자 사람들이 왜 유럽여행애서 스위스를 최고로 손꼽는지 그 이유를 온몸으로 느낀다. 지난 일주일간 여행했던 런던과 파리의 매력이 순간 삭제되며 더 이상 이보다 아름다운 곳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함마저 든다.
여행의 피로를 한 번에 날려준 유람선이 1시간이 넘는 항해 끝에 인터라켄에 도착하자 여행자는 아쉬운 마음으로 유람선에서 내려 역 바로 앞에 있는 호텔로 이동한다.
미리 예약한 메르퀴르 호텔은 인터라켄 서역과 대형 슈퍼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본 시설도 깨끗하다. 무엇보다 방에서 보이는 알프스 정상의 전경이 좋다.
3천미터가 넘는 알프스의 정상 융프라우가 있는 인터라켄의 호텔을 성수기인 여름시즌에 잡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이다. 그래서 보통의 여행자들은 인근에 있는 바젤이나 취리히에 숙소를 잡고 이곳을 드나든다.
숙소에 짐을 풀고 인터라켄 산책을 한다. 인터라켄의 인터는 사이라는 뜻이며 라켄은 호수라는 뜻으로 바다와 같은 툰 호수와 브린엔저 호수 사이에 있어 이 마을을 인터라켄이라 부른다.
인터라켄의 서역 뒤편으로 가면 알프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강이 아기자기한 집들과 다리 사이를 흐르고 있다. 강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유람하듯 천천히 걸으면 푸르면서 시퍼런 강의 기운이 알록달록 예쁜 집들과 함께 여행자의 마음을 맑고 순수하게 한다.
강 끝에서 올라와 평화로운 마을로 접어들면 길가로 늘어선 나무집들이 보이고 집 베란다에 놓인 빨간 꽃들이 스위스 사람들의 여유와 낭만을 보여준다.
일 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인 융프라우를 배경으로 절경을 자랑하는 인터라켄의 산책은 인터라켄 동역 맞은편에 있는 대형 슈퍼의 장보기로 이어진다.
스위스는 물가가 비싸고 꼭 먹어보아야 할 음식이 많이 없어 대부분의 여행자는 슈퍼에서 구입한 식품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특히 마시는 요구르트와 훈제 소시지는 많은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품목이다. 최고의 낙농 국가답게 스위스의 요구르트는 품질과 맛 그리고 가성비가 좋아 반드시 맛보아야 할 음료이다. 훈제 소시지 또한 웬만한 고급햄보다 식감이나 풍미가 뛰어나다. 단 소시지는 비닐을 벗겨서 호텔에 있는 커피포터에 한 번 끊여먹어야 한다.
슈퍼에서 한 끼 식사 대용으로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로스트 치킨이다. 놀라울 만큼 저렴한 가격에 겉은 바싹하고 안은 촉촉한 그 맛으로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다.
후식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를 자랑하는 린츠 초콜릿과 달콤한 과일향이 도는 샴페인 카페 드 파리를 구입하여 식후에 즐긴다면 웬만한 식당의 한 끼 식사보다 만족스럽다.
슈퍼에서 만족스러운 먹거리를 구입하였다면 숙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페러 글라이딩을 즐길 시간이다.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호텔을 나서면 예약해 둔 패러 회사에서 보내온 픽업차량이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다. 차를 타면 패러의 출발지가 있는 높은 산으로 30분 쯤 이동한다.
패러글라이딩은 건장하면서도 매력적인 젊은 조교들과 함께 탄다. 페러글라이딩을 즐기기 위해서 유의할 점은 단 한 가지이다. 패러를 매고 언덕을 뛰어 몸이 공중에 뜰 때까지 계속 발을 굴려야 한다.
조교와 함께 패러를 매고 푸른 들판을 뛰기 시작하면 급경사인 언덕 끝에서 어느새 몸이 붕 뜨는 기분에 오금이 저려오고 두려움이 찾아온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고 내려올 때 밑이 빠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조금 지나 여유를 찾게 되면 발아래 아름다운 알프스의 산과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알프스를 날고 있다는 그 짜릿한 기분에 여행자는 말할 수 없는 흥분감에 휩싸인다.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익숙해지면 세상의 고요가 느껴진다. 사람들이 높은 산에 오르고 깊은 바다에 가는 이유는 고요함 그 절대적인 매력 때문이다.
착륙할 지점이 보이기 시작하자 조교가 일부러 빙글빙글 돌며 아찔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하지만 온몸이 뒤틀리는 불안감은 오히려 여행자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게 하는 힐링의 순간을 선사한다. 아쉽지만 비행시간은 15분밖에 되지 않는다.
패러를 끝내고 저녁으로 스위스 퐁뒤를 즐기기 위하여 패러 착륙장 바로 옆에 있는 슈 식당으로 간다.
실내장식이 매우 고급스러운 슈 식당을 들어서면 친절한 종업원이 메뉴판을 건넨다. 메뉴판을 보고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스위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퐁뒤 세트와 스위스 화이트 와인을 주문한다. 주문을 하고 조금 지나자 퐁뒤를 따뜻하게 데울 버너와 치즈 퐁뒤가 나온다.
슈 식당의 매력은 치즈 퐁뒤에 있다. 이 곳의 치즈는 슈 식당의 사장님과 결혼한 한국인 사모님이 선택한 것으로 치즈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으며 달고 고소하다. 곁들여 나오는 고추 역시 치즈에 찍어 먹으면 매우면서 고소하다. 고추와 치즈가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을 수 있으나 다음 음식을 생각해 절제하면서 치즈 퐁뒤를 즐겨야 한다.
두 번째 음식으로 소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칠면조로 구성된 미트 퐁뒤가 나온다. 미트 퐁듀는 칠리와 버터 그리고 땅콩 등 4가지 소스와 함께 감자튀김이 제공된다. 끓는 육수에 얇게 썰은 고기를 넣어 익힌 후 입에 넣으면 쫀득쫀득한 육질과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넘친다. 칠면조는 부드럽고 돼지고기는 풍미가 넘치며 소고기는 달다. 또한 4가지 소스는 고기의 느끼함을 없애면서 입맛을 돋우고 사이드 음식인 피클은 입안을 깨끗하게 한다.
두 가지 퐁뒤와 감자튀김으로 슬슬 배가 부를 무렵 마지막 코스인 초콜릿 퐁뒤가 제공된다. 슈 식당은 초콜릿 가게를 겸하고 있어서 직접 만든 수제 초콜릿을 녹여서 싱싱한 과일과 함께 초콜릿 퐁뒤를 내어주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스위스에 도착하여 반나절만에 그 매력에 배부른 여행자는 이번 유럽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알프스 정상을 오르는 내일을 약속하며 숙소로 돌아와 맑은 알프스의 공기와 함께 기분 좋은 잠에 빠져 든다. 숙소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들이 총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