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호텔에서 맛있는 조식을 먹은 후 구시가지를 거쳐 도심 중앙에 있는 그라나다 대성당으로 이동한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그라나다 대성당은 1521년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8세기에 와서야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대성당은 돔형 지붕을 비롯하여 넓은 실내공간 등 르네상스 양식으로 마무리되었으며 말발굽 모양의 아치에서 이슬람 영향을 받은 무데하르 양식도 볼 수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 중 하나인 대성당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돔형 천정 아래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신약성서의 내용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대성당 동쪽 편에는 가톨릭 군주인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건립한 왕실 예배당이 있다. 이 두 군주는 예배당 주변 대리석 기념물 아래의 지하 납골실 납관 속에 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왕실예배당에서 페르난도의 검과 이사벨의 홀 그리고 은제 왕관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대성당을 나와 차길을 건너면 그라나다의 대표적인 먹자 골목이 나온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앙트레 브라스 식당을 들러 타파스로 점심을 즐기자.
그라나다의 타파스 문화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맥주나 샹그리라 등 음료를 시키면 작지 않은 양의 타파스를 무료로 내어준다. 이 곳의 타파스는 이베리코 돼지 구이로 그 맛이 뛰어나 항상 현지인들로 붐빈다. 음료와 별개로 음식을 시키면 푸짐한 양의 고기가 접시에 담아 나오는데 맛과 가격면에서 유럽 최고라 할 수 있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쳤다면 그라나다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알람브라 궁전을 관람할 차례이다. 식당에서 나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알람브라 궁전으로 이동한다.
이슬람교가 태동한 사우디의 메카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향하던 이슬람 문화가 주변 문화를 수용하여 최고의 절정을 이룬 것이 17세기 무굴 제국의 타지마할이라고 하면 서쪽으로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그리고 스페인의 문화를 집대성하여 꽃을 피운 것이 15세기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이다.
붉은 성이라는 뜻의 알람브라 궁전에 입장하면 네모 형으로 디자인된 알카사바 요새가 나온다. 스페인에서 급속히 세력을 넓혀가던 아프리카계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은 토착 기독교 세력보다 언제나 숫자 면에서 적었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를 점령하면 지배력을 강화하고 무력갈등을 저지하기 위해 알카사바를 만들었다. 알카사바는 궁전을 경비하고 보호하기 위해 성벽 길을 모두 연결시켰으며 주위가 한눈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알카사바의 입구를 지나면 곡물저장소와 지하 감옥소로 사용했던 27미터 높이의 벨라의 탑이 우뚝 서 있다. 탑 위로 오르면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시에나 네바다 산맥의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 오밀조밀한 그라나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알카사바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절경을 즐겼다면 알람브라 궁전의 하이라이트인 코마레스 궁전과 아라야네스 정원으로 이동하자.
이슬람 왕국의 7대 술탄인 유스프의 아들 무하마드 5세에 완성한 코마레스 궁전은 이슬람 건축물의 이정표가 될 정도로 훌륭하게 장식되어 있다. 먼저 궁전의 외벽을 장식하는 섬세한 줄무늬 모양의 황금색 장식들은 절대적인 왕권과 천상 낙원을 표현한다. 또한 코마레스 궁의 현관에 새겨진 비문 메시지는 코란에서 가져온 것으로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그의 왕위는 하늘과 땅을 넘어 뻗어 간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데 지치지 않는다. 그는 가장 높고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사의 방으로도 알려진 코마레스 궁전으로 들어가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빛이 방 중앙에 있은 왕좌를 비춘다. 당시 어두운 방에서 빛으로 둘러싸인 술탄을 보며 각국의 대사들은 절로 경외심을 가졌을 것이다.
궁전 내부 역시 신성한 술탄의 권위와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벽이나 천장을 타일과 석공 공예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먼저 방의 하단을 두르는 타일에 새겨진 식물들의 문양은 궁전의 이미지를 낙원으로 변모시켜 놓고 있다.
삼나무는 슬픔과 사후의 영원성을, 대추야자나무와 코코넛 나무는 축복과 충족을, 작약은 부를, 연꽃은 가문의 영광을 나타낸다. 이슬람교에서는 알라신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성인의 조각이나 그림 대신 알라신이 만든 자연이나 코란의 글귀를 가져와 끝없는 반복과 대칭 구도로 된 장식을 사용한다.
타일 위로 방을 장식하는 아라베스크 문양을 살펴보면 말굽 모양의 아치 문양과 연속적인 반원 무늬 그리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무한히 반복하며 방안의 모든 것은 이미 이 세상을 초월해 신에게 다가가고 있다. 아라베스크 문양 중간에는 비문으로 가득 차 있는데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절이 새겨져 있다.
나는 축복과 번영 그리고 행복의 입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희를 환영한다. 나는 변장하지 않고 영광과 탁월함으로 나를 장식하였으며 신은 나를 제국의 왕으로 만드셨다.
8,017개의 목재 패널로 만들어진 방의 천장은 7개의 하늘을 상징한다. 이슬람교에 의하면 알라신 앞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일곱 하늘을 거쳐야 한다고 되어있다. 하나님은 천장 중앙의 점으로 상징되고 그 아래 네 면의 경계선들은 천국의 나무들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슬람에서 숫자 7은 인간의 영혼이 신에게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며 숫자 4는 하늘과 천국을 나누는 영역을, 숫자 1은 모든 것이 알라신을 위한 것임을 상징한다.
코마레스 궁 앞으로 탁 트인 아라야네스 정원은 아랍 타일과 천국의 꽃인 아라얀 나무 그리고 사각형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다. 코마레스 궁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탄성을 자아내는 아라야네스 연못은 생명과 천상 낙원을 상징하는 물 위에 궁전을 그대로 반사하여 깊고 웅장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 곳에 비친 궁전의 모습은 알람브라 궁전을 알리는 모든 엽서와 사진 그리고 팸플릿에 사용된다. 궁전의 연못은 궁전의 온도 조절과 통풍을 도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아라야네스 정원을 나오면 기둥머리를 아치로 연결한 아름다운 사자 궁전이 나온다. 정교한 석회 세공이 빼곡한 이 궁전은 유스프의 아들 무하마드 5세가 나자리 왕국의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짓기 시작한 코마레스 궁전을 완성하고 그 옆으로 지은 궁전이다.
사자 궁의 정원에는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줄지어 서 있고 중앙에 12마리의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다. 사자상 12개는 그라나다에 살던 유대인들의 12 부족장이 나자르 왕조의 술탄에게 우호의 증진을 위해 보낸 선물이었다. 술탄의 권력을 보호하는 상징적 존재인 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생명과 모든 사물의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 또한 분수로부터 흘러나오는 4개의 좁은 수로들은 이슬람교가 믿는 천국의 4대 강인 유프라테스 강과 나일 강 그리고 시란 강과 지란 강을 상징한다.
사자 분수대 주위의 열쇠 구멍 모양의 궁전 창문은 열쇠가 구멍을 만날 때 알라가 오신다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자궁은 하렘으로 평상시 왕 이외의 남성은 출입할 수 없었다.
사자 궁의 하이라이트는 아벤세라헤스의 방과 두 자매의 방이다. 사자 궁의 남쪽에 위치한 아벤세라헤스의 방은 옛날 연회장으로 사용되었으며 15세기 왕의 명령으로 당시 가장 권력이 강했던 명문 가문인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가족을 암살시켰다는 옛 소문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사각형의 중앙실과 양 옆의 구석방으로 구성된 아벤세라헤스의 방의 중앙에는 12 각형의 대리석 분수가 있고 천장 윗부분에 있는 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분수를 비추고 있다. 방 천장은 8 각형의 별 모양으로 우주를 상징하고 바닥의 사각형은 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아벤세라헤스의 방 맞은편에 있는 두 자매의 방은 주거공간으로 왕실 사람들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바닥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대리석 묘비에서 두 자매의 방이라 불리는 이방은 역시 중앙방과 양 옆으로 조그만 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에는 작은 분수가 있고 둥근 천장에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적용시킨 팔각형의 별 모양이 수 없이 많은 접선으로 이루어져 깊이 있는 공간을 연출한다.
특히 돔 천장은 하루를 지나는 동안 16개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모카라베 장식들을 비춤에 따라 광활한 우주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하늘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궁전 관람의 마지막 코스인 헤네랄리페 정원은 사이프러스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1층 정원에 있는 술탄의 방들은 전원적인 주위 환경에 맞게 디자인되었으며 그 후계자들에 의해 개조되면서 알람브라와 함께 아름다운 전원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물과 푸른 나무들은 술탄의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게 하는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하였다.
사막인들의 물에 대한 동경은 남다르다. 물은 그들에게 생명의 근원이다. 이러한 사막 인들이 물이 풍부한 스페인과 만났으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정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왕의 거처를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 정원에 왕비의 거처가 나온다. 왕비의 거처 중앙에는 ㄷ 자 형태의 작은 연못이 놓여 있다.
이곳 연못에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밑에서 당시 최고의 귀족 가문 출신인 아벤세라헤스 귀족과 왕비가 연애를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왕이 왕비와 귀족을 그 자리에서 죽이고 아벤세라헤스 가문을 멸족하였다. 그리고 연못에 있던 사이프러스 나무는 뽑아서 박제를 하여 경고용으로 전시하였는데 지금도 그 박제된 나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후에 밝혀진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위의 이야기와 차이가 있다. 당시 아벤세라헤스 가문은 술탄의 자리에 오른 아버지와 왕권 다툼을 하던 젊은 왕자 보압딜을 지지했다가 정치보복을 당한 것으로 계략에 의해 밀애로 둔갑시켜 놓았다고 한다.
매년 6,000만 명이 방문하는 알람브라는 무어식 궁전의 결정판으로 1831년 최후의 무어왕 보압딜이 알람브라 궁전을 내주고 떠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궁전을 내려와 누에바 광장을 지나면 이슬람 시장 골목이 나온다. 시장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언덕을 오르다 보면 알람브라 궁전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니콜라스 전망대가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니콜라스 전망대에 서면 붉게 물든 노을과 함께 더욱 붉어지는 붉은 성의 모습에 누구든 압도당할 수 밖에 없다.
노을 지는 알람브라 궁전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싶다면 니콜라스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산 니콜라스 식당을 추천한다. 테이블이 많지 않은 2층 식당에 들어서면 활짝 열어놓은 창 밖으로 알람브라 궁전의 모습이 들어와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식당 안은 능숙한 기타리스트의 라이브 연주로 슬프면서 매혹적인 <알람브라의 추억> 의 음악이 흐른다.
식당에서 직접 슬라이스 해주는 이베리코 하몽과 포도주로 감미로운 식사가 마칠 즈음 알람브라 궁전 위로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붉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바라보는 붉은 노을과 붉은 성의 모습은 무아지경이다.
시뻘건 노을이 점점 붉은 성 뒤로 내려앉고 캄캄한 밤이 찾아오면 어둠 속에서 금빛의 궁전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어둠 속에 빛나는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있으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황홀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