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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16. 2021

그때 알았으면 더 좋았을 세비야

삶과 죽음의 길

지상에 실현한 천상의 모습을 간작한 세비야 대성당을 나와 황금의 탑으로 이동하다 보면 구제 병원이 나온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주인공이자 희대의 바람둥이로 나오는 돈 주앙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세비야의 귀족 돈 미겔 마냐라가 지은 성당이다. 그는 젊은 시절 수많은 여인들을 울린 후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에 성공하지만 얼마 후 신부가 죽자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속죄하며 그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이 병원을 지었다.



병원 안에 있는 성당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돈 미겔 마냐라의 속죄를 보여주는 두 개의 작품이 있다.


세비야의 바로크 대가로 알려진 발데스 레알이 그린 두 개의 작품 중 왼쪽에 있는 <눈을 한 번 깜박이면>을 자세히 보면 금으로 된 관을 오른쪽 팔로 매고 있는 해골의 발아래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의 상징물이 보인다.



권력과 부를 나타내는 두 개의 황금 왕관과 황금실이 있는가 하면  지적 성취를 나타내는 종교와 과학에 관한 책들이 보인다. 또한 무기와 갑옷이 반짝거리며 무력의 승리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 이 모든 것을 딛고 선 해골이 죽음과 더불어 세속적 영광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작품 전체적으로 극단적인 명암과 대담하면서 세심한 붓 터치로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옆에 보이는 <세상 영광의 끝>에서도 역시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품의 하단에 당시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주교와 기사의 복장을 한 두 구의 주검이 보이며 그 위로 심판의 저울이 있다. 저울 왼쪽에는 <더 이상 행하지 말라>라는 글이 적혀 있으며 그 위로 자만을 나타내는 공작 깃털 부채와 화를 상징하는 개와 탐욕을 상징하는 염소가 보인다. 또한 탐식과 색욕을 나타내는 돼지와 원숭이 등 7대 죄악을 상징하는 모든 것들이 모여 있다.


 

<계속해서 행하라>라고 적혀 있는 저울의 오른쪽에는 성실함과 소박한 삶을 상장하는 일과 기도서 그리고 한 덩어리의 빵이 보인다.


극단적인 작품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사제석 옆의 벽면에 삶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무리요의 작품이 경직된 여행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싼다.



성경에서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고기로 수 백 명을 먹여 살리신 예수님의 기적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동정심과 최선의 봉사만이 구원과 사랑에 이를 수 있다는 기독교의 따뜻한 정신세계가 느껴진다.


재해가 심해 굶주린 사람들이 속출하던 시대에 무리요는 종교단체가 이들에게 헌신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시대적 책임감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구제 병원에서 나와 이전의 왕궁이었던 알카사르로 이동하면 유대인의 거주지였던 산타크루즈 지구가 나타난다.


당시 가톨릭 왕과 귀족들은 장사와 거래를 잘하는 유대인을 곁에 두고 자신의 부를 창출하고 권력을 높였다.



산타크루즈 입구를 지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정원이다. 파티오라고 불렸던 정원의 중앙에 우물이 보이고 그 주위로 오렌지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이곳을 지배했던 이슬람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가져온 오렌지 나무를 심으며 이곳을 천국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사막에 살았던 이슬람 인들에게 물과 나무만 있으면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천국은 소박했다.


천국의 정원을 거닐다가 정원을 가로지르면 하얀 집들과  조그만 골목들이 나타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길의 이름의 생명의 길이다. 그리고 그 옆에 죽음의 길도 보인다.


이 골목들의 이름이 생명과 죽음으로 정해진 이유는 궁전에서 심판을 받고 나와 이 두 길로 들어서면 그들의 생사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죽음의 길 이름이 후에 수소나 길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다음의 이야기에 유래한다.


한창 유대인을 핍박하던 마녀재판이 진행되었던 세비야의 이곳에 유대인의 딸 수소나가 살았는데 그녀는 가톨릭 백작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톨릭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유태인들은 무장봉기 계획을 잡는다. 이를 안 수소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이 다칠까 봐 그에게 이 사실을 미리 알려준다. 그리고 그날 밤 가톨릭 군대가 쳐들어와 수소나의 부모님은 물론 대부분의 유대인을 죽인다. 겨우 살아남은 수소나는 수도원으로 도망쳐 평생 속죄하며 살았으며 그녀가 죽자 그녀의 유언대로 그녀의 해골을 그녀의 집 테라스에 걸었다. 이후로 이 길은 수소나의 길이 되었다.


산타크루즈를 나와 콜럼버스 기념탑을 지나 트램을 타면 10분 만에 메트로폴 파라솔에 도착한다.  



메트로폴 파라솔은 옛날 재래시장이 있었던 곳을 허물고

새로 건물을 지은 후 그 위에 파라솔을 올려 1층은 시장으로 사용하고 2층은 휴식과 공연을 할 수 있는 광장으로 만든 곳이다. 특이한 것은 주위의 환경과 어울리게 버섯처럼 생긴 거대한 파라솔을 종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공사 중 땅 밑에 고대 로마시대 유물이 쏟아져 지하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파라솔 위에 있는 옥상 정원에 오르면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이곳에 올라 길을 따라 전망대로 가다 보면 수천년 동안 이곳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을 품은 세비야의 멋진 전경위로  아름다운 노을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눈이 시리도록 붉게 저물어가는 노을을 감상하고 아래로 내려오면 동화 같은 파라솔 야경이 여행자의 마음을 깊고 아름답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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