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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Feb 16. 2022

나는 무시받을 사람이 아니다.

소변기의 혁명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형들조차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나는 내 작품을 들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전문가라고 이야기하는 그들은 서로의 편의를 봐주며 명성과 부를 나누어먹는 사람들이었다

이후 나는 도서관에서 내 밥벌이를 하며 내 작품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뉴욕에서 나를 불렀다. 나의 작품이 새로운 미술을 지향하는 뉴욕에서 조명을 받으며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부푼 희망을 안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어디서나 기득권의 횡포와 아집이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그 때까지 몰랐다.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예술가로 이름 날리는 형들 덕분에 학교를 졸업하고 파리로 왔지만 형들은 그를 무시했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한 일은 신문에 연재되는 풍자만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이 일이 나중에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풍자만화를 그리며 그는 당시 유행하는 피카소의 입체파에 매료되어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을 독립 전시회에 출품했다.



입체파가 한 화면에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보고 옆에서 본 것을 동시에 담는 것이라면 그는 여기에 덧붙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사물을 한 화면에 담았다. 시공간을 한 화면에 담는 혁신적인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존의 권위에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신인을 발굴하겠다는 독립 전시회의 비평가들은 물론 형들조차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


뉴욕에서 콜을 받은 그는 뉴욕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비평가들과 화구상들 역시 그들의 권위와 부를 이용해 미술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작품과 화가는 완전히 무시되었으며 그들의 부와 명예를 위해 철저히 결탁했다.


유럽에서 건너와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 길을 지나다가 그가 우연히 본 소변기를 뉴욕에서 열리는 독립 전시회에 <샘>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했다. 그러나 누구든지 1달러를 내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는 독립 전시회에 그작품은 거절되었다.


이를 미리 짐작한 그는 잡지에 누구나 출품할 수 있는 독립 전시회에 <샘>이 전시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와 풍자가 담긴 글을 기고했다. 화가도 작품도 아닌 기득권을 가진 비평가와 화구상들이 권위와 부를 이용해 미술계를 전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당시 뉴욕의 미술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으며 뉴욕의 저명한 매체에 <샘>이 소개되고 작가가 뒤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소변기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화가는 더 이상 비평가와 화구상들의 권위에서 벗어나 자신의 작품을 창조해야 한다고 뒤샹은 주장했다.


그리고 더 이상 작품을 예술가 자신의 손으로 만들지 않아도 상관없으며 화가의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으면 그 자체로 모든 일상의 사물이 예술이 된다고 주장했다.  


뒤샹의 예혁명적인 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현대 예술의 주인은 화가도 작품도 아닌 그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이며 관람자가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관객이 없는 작품은 아무런 의미와 가치가 없으며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에서 진정한 예술의 본질적 가치가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시인의 고백처럼 사람들과 상호 소통하지 않는 작품은 그 자체로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가 없다.


작품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알고 탐구하게 하는 현대 예술은 더 나아가 자신을 알고 사랑하는 현대 사회의 이념적 지평을 열었다. 이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개인>은 시대정신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상대방 개인 역시 존중받아야 하는 다양성의 사회로 나아갔다.


이후 1,2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주류사회를 이끌던 백인 남성들은  위상을 점차 잃어갔으며 다양한 인종과 여성들이  자리를 차지하며 다양성은 더욱 확대되었다.



개인의 자존감과 다양성은 
시대 정신이 되었다.




<샘>을 보면 작가 이름과 제작연도로  <R. MUTT 1917>라고 적혀 있다.


작가의 이름 MUTT는 소변기 제조업체 <Mott works>에서 가져왔는데 이를 mutt로 바꾼 것은 당시 유행했던 만화영화 <Mutt & Jeff>에서 욕심 많은 땅딸보 머트가 돈만 밝히는 미술 비평가와 화구상과 닮았다 하여 풍자한 것이다. 앞에 R은 프랑스어 Richard의 약자로 벼락부자를 뜻하는 속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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