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의 삶
3월의 법인결산이 있어 최근에 가보지 않았던 우체국부터 하나은행까지 6개 은행을 다니면서 천원도 안 되는 잔액 증명서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잔금 69원은 물론 100원도 안 되는 잔액 증명서를 챙겨주시는 바쁜 은행원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은행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다 보니 고 2 담임 선생님이자 미술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기생충 검사로 변검사를 했는데 제출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 반이 가장 많다며 내가 너희들 똥 때문에 이렇게 욕을 들어야 하냐며 호통치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무척 인자하신 분이었습니다.
사회에 나와보니 유명 지역신문에 그분의 칼럼이 정기적으로 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과의 지루한 싸움 속에서도 그분은 예술가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칼럼을 보면서 말년에 무엇하나 이룬 것도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로 나아간 고흐와 고야가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인류사에 기록된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그들 역시 인생의 말년에 온갖 비난과 자책 감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살아생전에 자신이 구축한 세상을 모른 채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습니다.
천명관의 <고래>가 인생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는 후배가 언젠가 추천해서 읽었던 모옌의 <개구리>에 나오는 한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소설 속 인물이 개울이 있는 시골길을 걷는데 수천 마리의 개구리들이 울부짖습니다..수 없이 많은 아픔과 절망 그리고 희망과 간절함이 담긴 울음이 밤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 길을 주인공이 걸어갑니다.
터져 나오는 생명력과 고통 그리고 비애가 담긴 수천 마리의 울음 속에 주인공은 무너진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걸어갑니다.
그 길 끝에 집이 있어서 조그만 안식과 평화가 그에게 주어지기를 소망하면서 책장을 덮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