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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Jul 25. 2022

유럽의 공기

다시 유럽으로

13시간 30분의 비행이 끝나자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유럽을 올 때마다 좁은 자리에 앉아 장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그래도 꾸역꾸역 비행기는 결국 나를 유럽에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암스테르담에서 환승 시간이 짧아 정신없이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후 스마트 폰을 켜니 지인으로부터 런던의 공기를 보내달라는 메시지가 와 있다.  


그때서야 여행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일상에 파묻혀 끝없이 이어지는 작은 문제들과 스트레스가 사람을 점점 말라가게 할 무렵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우리들을 단절시키며 자유를 부여한다.


여행을 떠나, 멀리서 내 일상을 들여다보면 왜 그렇게 작은 문제에 집착하며 살까라는 생각이 들며. 그 작은 감옥 안에서 벗어나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공허한 자유를 여행이 선물하는 것을 비로소 실감한다.



공허한 자유는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여행은 자유만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을 부여하며 때로는 여행자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16명을 인솔한 이번 여행에서 새로 단장한 빅벤을 자랑하는 런던에서 픽업차량이 안 와서 발을 동동거리는가 하면 지하철 파업으로 숙소에서 시내로 나가는데 2시간 이상 걸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아름다운 자태로 사람을 매혹하는 에펠탑이 있는 파리에서는 베르사유 예약표가 사라져 입장하는데 힘들었는가 하면 호텔 앞 가게에서 50유로를 내었는데 10유로를 냈다며 모든 흥분과 화를 내며 사기를 치는 아랍인 상인의 모습을 측은하게 지켜봐야 했다.



3년의 모든 답답함과 아픔을 일시에 해결해준 알프스 하이킹이 가장 기억에 남는 스위스에서 예약 마감으로 그토록 소망했던 패러 글라이딩을 못하는가 하면 베니스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여 일행들을 긴장시켰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화려한 트레비 분수 야경으로  여행객을 홀린 로마에서는 호텔에 바뀌고 더위와 소매치기로 고군분투해야 했다.



부다페스트에 와서는 1박 일정과 맞지 않게 2박이 예약되어 있어 결국 다음 장소인 빈과 프라하 열차표를 다시 구매하며 수백만 원의 추가비용을 사용했다.


더위와 피곤함 그리고 여행자의 힘듬을 해결하며 마지막 여행지인 프라하에 도착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는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왔다.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노인은 고래를 밤샘 사투 끝에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에게 모두 물어뜯겨 결국 빈손으로 마을로 돌아온다. 병든 몸으로 몇 날 며칠을 누워 있다가 자신을 방문한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갖은 사고 수습과 긴장감 그리고 더위와 싸우며 유럽을 여행한 결과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결과는 없고 과정과 순간만이 남는다.  


폭염과 갖은 사고 속에 16명의 여행자들과 유럽 곳곳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 속에 자신에 대한 존재감과 사랑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 훌륭한 여행이었음을 알았다.  


여행처럼 삶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살면서 찬란한 성공 속에서 공허한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고통과 좌절속에서 진실된 자신을 만나 위로하기도 한다.


어쩌면 인생에서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이 더 소중할 줄 모른다.


성공은 지나친 우월감으로 자신을 잃게 만들지만 
실패는 삶의 방향을 진실된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고 그로 인해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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