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56화
[대문 사진] 아브빌의 고딕 대성당
화창한 가을날 디에프 앞바다에서 잠시 끊어졌다가 평원에서 새로 시작된 925번 도로로 다시 들어선다. 이번엔 샤토 유[1]를 향한 길이다. 노르망디 공국과 영국을 함께 지배했던 정복왕 기욤을 알고 난 뒤, 제일 가 보고 싶었던 곳이 샤토 유(Eu)다.
센마리팀 지방의 조용한 마을이자 꼬 지역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지닌 도시, 길을 떠나기 전에 파리 아파트 유리창 앞에 서서 샤토 유를 그려보곤 했다.
파리에서 피카르디 지방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타면 깔레에 도달하기 전에 아브빌[2]이라는 도시가 나타난다.
아브빌에서 다시 30여 킬로미터를 달리면 샤토 유에 이르지만 솔직히 정복왕 기욤이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기 전에는 샤토 유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30년 동안의 여행은 수박 겉핥기였고 그야말로 탐식으로 점철된 소바쥬(sauvage : ‘야만’이란 뜻) 자체였다. 하다 보니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으며, 여행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정신고양에 어떤 도움이 되었겠느냐마는 나는 그것을 여행이랍시고 오지랖 넓게 자화자찬하고 다닌 꼴이었다.
길을 가다 보면 길의 아름다움에 눈이 팔리면서도 내게 대한 가혹한 반성을 멈출 수 없었던 길이 925번 도로였고 샤토 유를 향한 길이었다. 목표도 목적의식조차도 없던 여행, 그것을 나무란 사람은 오직 아내 한 사람뿐이었다.
가끔은 각박한 현실에서의 탈출과도 같은 단순한 떠남에 대해 침묵했으며, 길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길을 떠나길 잘했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아내는 목적 없는 여행의 되풀이에 질려갔고 나중에는 불만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예감이 적중했던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이었다. 나는 우연히 이 길에 들어섰고 우연히 이 길을 자주 오갔으며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 노르망디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야 참으로 우연히 내가 걸어간 길들을 기억 속에 다시 꺼내든 것이었다.
모든 것이 우연이 만들어 낸 산물이 분명하지만 그 우연이 우연을 더해 필연이 된다는 사실, 나는 그것을 깨닫고 내 모든 에너지를 운전대를 잡은 손으로 쏠리게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가끔씩 쓰고 있는 글을 아내에게 들려주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내게 화답하기를 말하는 모습보다 글 쓰는 모습이 나아 보인다고 평을 달아주곤 했다. 말주변보다는 글주변이 낫다는 뜻이 아니라 흥분하여 떠드는 모습보다는 차분히 글 쓰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뜻이었다.
자위감이 드는 표현이었다. 야고보나 요한도 그러했지만, 이야기할 때마다 열정에 가득 차 흥분하곤 하던 남편에게서 아내는 차라리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글 쓰는 남편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때 감히 사도 바울처럼 대중을 감동시킬만한 울림을 지닌 ‘말씀’을 전하는 성도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허황된 꿈을 접은 이유는 짧은 지식을 남발하다 보면 대중을 선동하다 못해 호도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나 자신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자들의 삶은 순례자의 길 위의 삶과 같았고, 설법을 통한 말씀에 있었다. 오죽하면 시라는 것이 말로 절을 짓겠다는 뜻이겠는가. 말씀 언(言) 변에 절 사(寺) 자야말로 이 땅에 글로 절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일인지(不立文字[3]) 동시에 세상에 잠언과도 같은 아포리즘을 던지는 행위가 아니라면 시란 대체 무엇이어야 한단 말인가?
말을 잘하고 못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가 그래서 중요할 따름이다. 애매모호한 입장이나 표현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혼란만 부추길 수도 있다.
모든 설법은 명쾌했고 구체적이었으며 암시적이었다. 아니 그 자체가 상징을 내포한 언사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무한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러한 설법들을 통해 인류는 차츰 세상의 진리를 깨우쳐갔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길은 꼬 평원을 지나 어둔 숲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몇 차례 반복하더니 어느새 샤토 유를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 나타났다. 잠시 미루나무 터널에서 차를 세우고는 심호흡을 하고 싶었지만, 지방도로라 갓길도 폭이 좁은지라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뒤따라오면서 뒤로 길게 늘어선 탓에 계속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요즘도 프랑스 티브이(TV) 토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지방도로에서의 시속 70킬로미터 정속주행은 하루일과가 바쁜 사람들에게는 무리일 수도 있었다. 나 역시 그런 교통법규가 마냥 못마땅했다.
안전하다 싶은 곳에서는 속력을 내고 위험하다 싶은 구간에서는 속도를 줄이는 것이 내 고치지 못한 운전습관이었다. 그러나 질서나 규칙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 마련된 것 아니겠는가?
운전자 스스로의 판단처럼 위험천만한 것도 없다. 스스로는 안전운행을 하고 있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처럼 위험한 행동도 없다. 하지만 질서나 규칙이 삶을 지배하는 규범일 수 있다는 생각엔 아직도 판단을 유보하고 싶을 따름이다.
하루 일과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가족에게는 따뜻한 정을 베풀고 주일마다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참회하면서 열심히 저축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뤄가는 일이야말로 21세기 신앙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모범적 삶일 것임은 마땅하지만, 중세인들이 기적을 바라면서 순례를 떠난 건 인생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갑작스레 병에 걸렸거나, 가족을 잃었거나, 삶이 파괴되는 상황에 처했거나, 또는 인생이 파탄 난 경우도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순례가 여행을 대신하던 시대에는 교회를 찾아 성 유물을 찾아 성지를 찾아 헤매는 도보 순례자의 시대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심취하여 온전히 자기 계발을 목적으로 삼던 여행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떤 기적에 목마른 자들이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묵상하면서 미사에 참례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도보 순례가 여행으로 전환된 것은 마차와 철도, 자동차와 선박, 그리고 비행기로의 점진적인 교통수단의 발달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나는 지난여름 그와 같은 예를 실제 목격할 수 있었다. 지중해가의 유서 깊은 도시 막세이에서 뜬 눈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호텔 바로 앞 생샤를르 테제베(TGV) 기차역 뒤편에 위치한 시외버스(Gare routière ; 역과 역을 잇는 교통수단) 승차장에서 무스티에 생트 마리(Moustiers Sainte Marie)[4] 행 67번 시외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38도의 더위로 이른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물을 마신 끝에 여행용 가방을 간신히 끌고 기차역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터라 거의 만신창이 수준이었다. 더울 때는 집 밖에 나서면 안 되고 더욱 움직이면 안 된다! 그건 진리에 가까운 스스로의 외침이었다.
마침 정차해 있는 버스 기사에게 행선지를 확인한 뒤, 그늘에 서서 땀을 식히던 중 걸스카우트 단원들과 마주쳤다. 나는 곧 한국에서 개최될 세계 잼버리 대회가 떠올라 팀을 인솔하고 있는 리더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행선지가 나와 같았던 걸스카우트 대원들! 그녀들은 시외버스를 타고 우선 리에즈(Riez)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목적지인 무스티에 생트 마리로 가야만 하는데, 리에 즈에서부터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스티에 생트 마리까지 9킬로미터를 걸어서 목적지에 닿는 것이었다. 여남은 명의 걸스카우트 대원들이 마치 도보 순례자들처럼, 외인부대 대원들처럼 38도의 땡볕에 도보로 산길을 타고 목적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 멀고 험한 길을 23년 전에 자동차로 향했었다. 귀국해서 교수생활을 하는 친구가 지금도 가끔 고통스레 떠올리는 베르동 협곡을 향한 그 험한 길을 지금 이 걸스카우트 대원들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간다는 거였다. 그것도 땡볕이 쨍쨍 내리쬐는 산길을 타고…
이런 경우는 행군이 여행이 되고 순례가 된다. 천 년 간의 도보 순례가 21세기 여행과 한 몸이 되는 순간이다. 그녀들은 여행의 역사를 몸소 실천하고 체현하는 21세기 도보 여행자인 셈이다.
글을 쓴다는 것 역시 결국은 순례나 여행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되돌아봄일 확률이 높다. 미처 자각하지 못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일 수 있으며,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나선 일종의 여행이면서 새로운 자아를 확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인 자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1] 샤토 유(Château d’Eu ; 정식 발음은 연음하여 ‘샤토 듀’)는 노르망디 센 마리팀 지방에 위치한 유(Eu) 마을의 성채를 가리킨다. Eu는 물을 뜻하는 eau에서 파생하였다. 르 트레포 항구로 흘러가는 강물에서 마을이름이 유래했다.
[2] Abbé는 사제를 뜻하고 ville은 도시란 뜻이니 아브빌(Abbeville)은 ‘사제의 도시’란 뜻이다.
[3] 불립문자(不立文字)란 불가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란 뜻이다.
[4] 무스티에 생트 마리(Moustiers Sainte Marie) 마을은 인구가 700명도 채 안 되는 고산지대에 속한 산골마을이다. 730미터에 달하는 마을 언덕 꼭대기에 서있는 노트르담 보부아르 성당은 일찍부터 가톨릭 신자들의 성소로 자리 잡은 곳이다. 마을 이름 Moustiers는 중세시대에 라틴어로 수도원을 가리키는 Monasterio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무스티에 생트 마리 마을 명칭의 정확한 뜻은 ‘성모 마리아 수도원’ 마을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