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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Mar 19. 2024

한 건축가가 재건한 도시

몽생미셸 가는 길 153화


르 아브르(Le Havre)는 노르망디 지역에서 캉(Caen)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도시다. 캉이 내륙 안쪽에 자리 잡은 군사적 요충지였다면, 르 아브르는 대서양에 면해 있는 항구 도시로서 역시 군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던 탓이다. 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비껴 나갈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전쟁 기간 동안 르 아브르는 아이러니하게도 아군에 해당하는 영국과 미국의 폭격에 날아갔다. 학교도, 병원도, 교회도, 공공건물도, 기차역도, 심지어는 일반 주민이 사는 주택들도 모두 연 이은 아군의 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한 전무후무한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한 어떠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역사는 이처럼 수정되기가 어렵다. 진실을 파헤치기에는 인류가 저지른 만행은 아이러니하게도 미화되기 일쑤다.


아파트 거실 같은 호텔방에서 희미한 전등 아래 이 글을 쓰는 지금 피카소가 그린 그림 한 점을 떠올린다. 게르니카 마을과도 같은 르 아브르, 도시는 그처럼 아픈 생채기처럼 자꾸만 신경을 건드린다. 그걸 왜곡된 역사라 할 수도 없다. 그걸 운명이라 탓하기도 어설프다. 그렇다고 진상을 파헤치는 일조차 이방인으로서 부적절하다. 이념화된 역사란 모름지기 그림 한 점만도 못한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마드리드 국립박물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드골 장군은 전쟁 후 수립된 프랑스 5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르 아브르가 해방되었을 당시 한 걸음에 달려와 폭격으로 초토화된 도시를 목격한 그는 정부 수반이 되기도 전에 임시정부 하의 재건 및 도시 계획부를 신설하고 전쟁으로 인해 참화를 입은 르 아브르 시를 재건할 프로젝트를 창안했다. 이때 지휘봉을 든 이가 엔지니어로 출발하여 공기업 이사를 거쳐 정치인이 된 라울 도트리(Raoul Dautry)란 인물이다.


해방 후 라울 도트리는 1944년 11월 16일부터 1946년 1월 20일까지 드골 장군의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에서 재건 및 도시 계획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이때 그는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에게 르 아브르 시를 재건하도록 요청했다.


오귀스트 페레는 르 꼬르뷔지에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건축가로서 20세기 탁월한 건축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벨기에 태생의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의 에꼴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한 그는 건축물에 철근 콘크리트를 처음으로 사용한 장본인이다. 할아버지 역시 채석장을 운영하는 석공이었는데, 말이 석공이지 당시에는 돌로 건물을 짓던 시대여서 삼대가 모두 건설회사의 대표(CEO)나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식으로 보자면 경부고속도로를 착공한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쯤에 비견된다.


르 아브르 전후 도시 재건 사업을 도맡은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의 살아생전의 모습.


절대 권력에 힘입은 도시 재개발을 통한 ‘빛나는 도시’ 건설에 목말랐던 르 꼬르뷔지에와 동시대적 건축관을 지닌 페레는 철근 콘크리트라는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이며 꾸밈없는 재료로 당시의 보수주의적 건축관을 지닌 이들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건축물을 개발했다. 이러한 전형적인 예가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 눈에 비친 공항 청사와 테제베(TGV) 역을 포함한 파리 도심과 공항을 잇는 전철(RER)역일 것이다.


이는 페레가 아닌 다른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지만, 전혀 마감되지 않은 듯한 날 것 그대로의 시멘트 철근 콘크리트의 앙상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는 건축물과 맞닥뜨린다. 전기배선이나 상, 하수도마저도 콘크리트 외벽 바깥으로 돌출된 마치 미완성 건물을 보는 듯한 충격은 바로 페로라는 건축가로부터 시작된 건축술이라 할 수 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전철역과 2F 청사.


1945년 봄, 라울 도트리가 장관으로 재직 중인 재건 및 도시 계획부는 오귀스트 페로를 르 아브르의 도시 재건 수석 건축가로 임명했다. 폭격으로 80%가 파괴된 르 아브르는 프랑스에서 전쟁 중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방 자치 단체였다.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의 사업장을 물려받은 페레는 100명의 건축가들과 함께 거의 20년 동안 150헥타르에 달하는 도심 재건을 담당했다.


이로써 장엄한 콘크리트가 탄생하게 되었다.


페레는 르 아브르의 옛 지도에서 영감을 받아 새롭게 보정된 현대 도시를 상상했다. 그가 후술한 것처럼 페레는 ‘새롭고도 합리적인 일’을 꾸미고 싶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가업으로 이어온 채석장에서 싹튼 ‘돌’에 대한 미감이 콘크리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은 원시적이고 고전적이지는 않지만 구성이 다양하고 다양한 공정으로 처리되고 착색되기까지 한다. 빛에 따라 콘크리트 건물은 베이지색에서 황금빛으로 변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페레가 지은 콘크리트 건물은 빛의 양에 따라 색상을 달리한다.


페레는 르 아브르 시의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위해 6.24미터(철근 콘크리트 빔의 최적 스팬 길이)의 기준에 따라 건물을 표준화하고 주민들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수많은 창문, 양쪽 모두를 향한 이중 방향, 긴 발코니 그리고 높은 천장을 구상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르 아브르의 바둑판 평면은 입구의 균일화, 통풍이 잘되고 빛나는 직선 레이아웃, 합리적인 공간 구성을 가능하게 해 준다.


페레를 도와 도시 재건 사업에 뛰어든 자크 투르낭(Jacques Tournant)은 페레에 대해 르 아브르 “도시는 건축가에게 프로젝트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돈과 건물을 지을 땅을 주었고, 건축가는 도시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라고 극찬했다.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다. 페레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오랫동안 비난을 받아왔다. 그가 지은 건축물들이 인정받기까지엔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필요로 했다. 르 아브르 시 재건 사업을 도맡아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세우면서 르 아브르가 건축 예술의 장으로 거듭나게 만든 공헌 이외에도 페레는 파리의 몽테뉴 가(Avenue Montaigne)에 테아트르 데 샹젤리제(Théâtre des Champs-Élysées) 극장을 비롯하여 파리 인근의 위성도시 랭시(Raincy)에 위로의 성모 마리아 성당(Notre-Dame-de-la-Consolation)을 지었으며, 파리 남서쪽에 위치한 오흘리(Orly) 공항을 설계하기도 했다.


파리의 생 샤펠 성당에 비견되는 벽면이 온통 색유리창(스테인드글라스)으로 채워진 랭시 노트르담 성당. 성당 천장엔 세 척의 배가 엎어진 형태로 덮여 있다.


이 밖에도 영국, 알제리, 터키에도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남긴 페레는 르 아브르 도시 재건 사업 프로젝트가 완료되기 전인 1954년 2월 25일 80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사후 반세기가 지난 2005년 유네스코(UNESCO)는 그가 재건한 르 아브르 도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생타드레스(Sainte-Adresse)에서 바라본 르 아브르.


르 아브르의 시청 건물은 페레가 지은 상징적인 건물로 총 길이가 72미터에 달하는 18층 높이의 타워로 도심의 심장부가 되었다. 1946년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 ISAI는 건축가의 노하우를 잘 예증해 주고 있으며, 장 조레 길(Avenue Jean Jaurès)에 들어선 건물들은 분홍색과 주황색 콘크리트 외관이 뛰어나다. 성 요셉 교회(Église Saint Joseph)는 건축가의 예술적 감각이 읽히는 전대미문의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6,500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107미터 높이의 채광탑은 페레만의 건축술이 빚은 예술품이다. 이 밖에도 페레가 지은 일반 아파트를 박물관으로 꾸며 개방하고 있는데, 인테리어 가구 및 장식을 통해 1950년대 복고적 취향을 더해주고 있다. 당시로서는 독창적이면서 돌발적인 현대성을 갖춘 충격적인 아파트였다.


사진 왼쪽부터 성 요셉 성당 외관, 일반 아파트 내부, 성 요셉 성당 색유리창으로 채워진 채광탑, 시청사, 아파트 단지 ISAI 및 장 조레 거리의 알록달록한 집들.


자! 이제 날이 밝으면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가 길을 낸 바다로 향한 거리로 나설 참이다. 길을 걸어가면서 그가 지은 건물들을 찬찬히 올려다보며 건축가의 장인 정신이 깃든 독창적인 작품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건축이란 종교에 독창적이고도 돌발적인 건축술이란 영성을 더해 그가 창조해 낸 르 아브르 도심은 그야말로 건축의 실험장이자 화려하게 꽃 핀 건축 예술의 장이었다.


이쯤에서 생각을 고쳐야 하는 건,


영성으로 지은 종교 건축물은 모두 아름답다.


저 구원의 성 요셉 성당 품에 안긴 순례자의 영혼처럼 채광탑의 색유리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장엄한 축제에 온전히 영혼을 맡기리라. 하여 아무런 저항 없이, 낮은 자세로 가장 겸손한 모습을 갖추고 기도하듯 내 소박한 건축에 대한 믿음에 한 건축가의 정신을 더하리라.  예술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빈 화폭에 무언가를 담아내는 것은 빈 공간에 건물을 채워 넣는 일과 유사한 행위다. 그 지점에서 건축가는 예술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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