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38화
[대문 사진] 11세기에 지어진 산 빈첸스 카르도나
1930년경에 카탈루냐의 저명한 고고학자 호세 푸이그 이 카다할슈(Josep Puig i Cadafalch)는 서기 1000년 이후에 유럽에 출현한 건축물들에게는 어떤 일관된 흐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저 이탈리아 북부에서 출발하여 프랑스 남부 지역을 아우르면서 카탈루냐 지방에 이르는 드넓은 유럽 남쪽 지역에서 발견되는 건축상의 일관된 흐름을 밝히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직감은 아쉽게도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독일의 고고학자들 역시 같은 시대에 독일 지역에 출현했던 예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면밀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들은 950년에서 1050년에 이르는 약 백 년 동안 전개된 오토 왕조 예술에 있어서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시기는 오토 제국이 성립된 시기와 일치하며, 이른바 오토 왕조와 맥을 같이한 건축 예술이 꽃피던 시기입니다.
이런 노력 끝에 앙리 호시용(1943 사망)이 새로운 천 년의 여명에 창조적인 건축물을 선도한 프랑스 카페 왕조의 예술을 조명함으로써 로마네스크 예술은 마침내 빛을 보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예술은 오직 유일한 기법에 따른 어떤 결정체가 아니라 방법론상으로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종합한 결과로 빚어진 산물이란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호세 푸이그 이 카다할슈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건축물들을 조사하면서 어떤 일관된 흐름을 지닌 공통점을 발견하였습니다. 11세기 초에 지중해 연안에 걸쳐있는 지역에 자리한 건축물들에게는 어떤 공통된 특징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거죠.
가장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벽을 쌓기 위해 망치와 정으로 자른 일정한 크기의 잘게 쪼갠 돌들을 질서 정연하게 배열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공법은 이탈리아의 포(Pô) 계곡에 위치한 건축물들에게서 공통되게 발견되는 벽돌 쌓기 공법을 가리킵니다.
돌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쌓아 올리는 공법은 알프스 피에몬테 지방에서 시작하여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아라곤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데, 건물을 보다 아름답고 튼튼하게 지으려 했던 중세 건축가들에 의해 채택된 새로운 건축술임에 틀림없습니다.
이탈리아 건축술에 기반한 또다른 공법은 롬바르디아 인들이 활용한 기술로 폭이 좁은 벽기둥 공법을 들 수 있습니다. 가느다란 벽기둥들은 건물 벽면에 불쑥 튀어나오게 덧붙였습니다. 벽면을 훨씬 멋지게 장식하고자 한 기법에 착안한 장식용 기둥들입니다.
이지역 건축물들은 대개가 로마네스크 형태의 후진을 갖추고 있습니다. 후진은 건물의 가장자리에 자리합니다. 또한 후진은 활대 모양의 둥그런 공간으로 채워졌는데, 이 둥그런 공간은 다시 작은 공간들로 나뉩니다. 이는 일찍이 동로마 제국에서 활용했던 칸막이벽 공법에 해당합니다. 이 같은 후진을 라벤나의 갈라 플라시디아(Galla Placidia)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건축물들에게서 일련의 작은 반원형 지붕들이 발견되는 것 역시 또 다른 특징입니다. 단, 이 작은 반원형 지붕들은 오직 하나로만 되어있습니다. 교회 외벽을 살펴보면 벽에 움푹 파인 공간이 있음을 어쩌다가 발견하기도 하는데, 이는 벽감으로서 지붕 바로 밑자리를 차지합니다.
건물 뒷부분 여기저기에서는 일관성 없는 임의적으로 설치한 벽감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성당들로 카탈루냐 지방에 위치한 산 페레 데 카세레스(Casserres)나 산 빈첸스 데 카르도나(Cardona)가 이에 해당합니다. 더불어 산 하우메 데 프론타냐(Frontanyà) 성당에서 확인되듯, 원형 지붕을 한 교회 건축물도 있습니다. 지붕 아래로는 빗물받이 홈통들이 설치되어있죠. 허지만 이러한 장식 요소들이 모든 건축물들에게 체계적인 방식에 의해 일괄적으로 적용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 건물 내부로 시선을 돌려보면, 작은 크기의 안쪽이 막힌 아케이드들이 후진의 벽감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아케이드들은 모두 장식용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벽감 안벽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특히 장식용 조각마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벽면엔 벽화들이 그려져 있죠.
벽에 난 창문들은 초기 기독교 건축물에 설치된 폭이 넓은 창문들과의 연계성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대신 폭은 좁으며 채광을 위해 안쪽과 바깥쪽 모두 창 옆의 벽을 물매 지게 깎았습니다.
반원형 천장 한복판에 쐐기돌을 끼우는 방식은 장식 용도로 설치한 두 번째 천장 위에 돌들을 늘어놓고, 그 한 중심에 박아 끼우는 공법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장식 용도로 설치한 두 번째 천장에 사용된 돌들은 서로 다른 색상을 띠고 있어서 장식 효과를 보다 선명하게 돕고 있습니다.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은 십자형 교회 내부의 좌우로 나있는 회랑이 있건 없건 간에 초기 기독교 건축이었던 바질리크 양식에 충실했습니다. 그에 더해 중앙집중식 설계 방식을 따랐죠. 실상 상당히 많은 숫자의 건축물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지어졌는데, 주로 시골의 작은 성당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오직 하나로 된 회중석과 동쪽으로 둥그렇게 자리한 후진을 갖춘 모양새입니다
후진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간혹 정사각형으로 설계되기도 하고 사다리꼴 모양의 형태로 들어서기도 합니다. 이러한 설계는 전기 로마네스크 시대에 속한 건축물들에게서 일괄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으로 주로 랑그도크나 카탈루냐에 소재한 교회 건축물들에게서 발견됩니다.
11세기에 지어진 산 하우메 데 프론타냐 성당은 롬바르디아 방식의 아케이드 형태와 띠를 두른 듯한 장식으로 건물 뒷부분에 해당하는 후진과 후진 둘레에 설치한 제단들을 수수하면서도 간결하게 마감 짓고 있습니다. 지붕 아래로는 벽기둥들이 벽면에 설치되었죠. 좌우 측면에 나있는 회랑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트란셉트) 한가운데에는 채광탑이 들어섰습니다.
둥근 천장 설계 방식은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물에 일관되게 적용된 특징의 하나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로마네스크의 상당수 교회 건축물들은 엘느(Elne)의 건축물에서 보듯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아주 소박하게 지어졌으며, 나무로 된 골조를 사용한 초창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2세기에 와서 교회건물들을 둥근 지붕으로 설계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각진 지붕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갈빗대 모양의 뼈대로 이루어진 아치들과 부벽에 의해 건물이 지탱되는 구조입니다.
둥근 지붕을 올리는 공법은 기둥 사이의 적절한 간격으로 자리한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기둥 사이의 간격에 따라 생겨난 공간은 관절 마디와 같은 지주들에 의해 이뤄진 똑같은 크기로 회중석을 분할하죠. 이 나뉜 공간을 지탱하고 있는 요소들이 아치와 대들보인데, 역시 간격마다 동일합니다.
십자형을 이루는 지주들은 부가적으로 설치한 벽에 파묻힌 기둥들과 함께 건물을 더욱 튼튼하게 지탱해줍니다. 기둥 사이의 간격에 의해 나누어진 공간 역시 상당히 독립적인 형태를 띠는 듯이 보이지만, 공간 본래의 설계에 따른 것입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회중석은 필요에 따라 중앙 회중석과 양측에 위치하는 측랑들의 형태로 더 늘어날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조화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 내로 한정됩니다. 이러한 공간 분할은 로마네스크 건축 스타일을 확실하게 정의해주는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1] 릴레(Lill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