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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Dec 04. 2021

신성 로마 제국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41화


카페왕조에 의해 서쪽에 세워진 프랑스 왕국(Francia Occidentalis)과는 대조적으로 지리상으로 동쪽에 자리한 신성 로마 제국은 색슨 계통의 오토 가문에 의해 919년에 세워진 왕국으로 1024년 그 운명을 다할 때까지 유럽에 세력을 떨친 제국입니다.


신성 로마 제국 역시 카롤링거 왕조를 계승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을 일별 해보면, 신성 로마 제국이 얼마나 원대한 확장을 꾀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들과의 연계 선상에 놓인 오토 왕조시대에 들어선 건축물들은 그 규모면에 있어서 전대의 건축물들과 확연히 구별됩니다. 거대한 크기의 위풍당당하며 장엄하기까지 한 교회 건축물들은 오토 왕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중석은 셋으로 갈렸으며, 작은 기둥들과 큰 기둥들이 갈마들 듯 번갈아 일렬로 세워진 형태를 취하면서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버팀기둥들은 수직으로 서있는 커다란 벽들 위로 높이 솟아올라 있죠. 둥근 천장이 기다란 벽들을 무겁게 누르지 않도록 고안한 것이 건물의 뼈대에 해당하는 골조들입니다. 이 골조들은 건물의 몸체를 더 넓게 확장시켜줄 뿐만 아니라 벽에 거대한 창을 설치하는 것마저 용이하게 해 줍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동시에 출현하여 교회 건축물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버팀목 구실을 하는 지주들 사이에 생겨난 공간들 역시 기존의 방식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오토 왕조의 교회 건축물의 정수는 아무래도 로마 바질르크 양식에 따른 거대하고도 널찍한 교회 내부공간들일 것입니다. 오직 한 방향만을 향해 쏠린 듯한 내부 공간들은 이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에 일괄적으로 적용된 공통분모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장식에 이르기까지 고대인들이 즐겨 다룬 주제에 입각해 고대 로마 제국의 양식을 풍부하게 활용한 점 역시 돋보입니다.


오토 왕조시대의 건축이 양 극점에 자리한 동, 서양 건축이 서로 만나는 접합점을 발견했다는 것은 결국 이 시대의 건축 역시 카롤링거 교회들을 계승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25년 리끼에르 드 센툴라(리카리우스)가 창설한 베네딕트 수도원에 앙질베르가 생 리끼에르 왕실 성당을 지었는데, 그가 다름 아닌 샤를마뉴 대제의 사위였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샤를마뉴 대제의 사위인 앙질베르가 지은 생 리끼에르(Saint-Riquier) 왕실 성당의 모습.


왕실 성당은 8세기 말에 들어섰으며 이후로 모든 교회의 전형을 이뤘습니다. 1022년에 축성된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은 오토 왕조시대의 교회 건축물에 끌어들인 카롤링거 왕조시대의 바질르크가 진화한 결과에 따른 거의 결정체와 같은 건축물입니다.


1022년에 완공된 힐데스하임(Hildesheim)의 성 미카엘 수도원 교회의 현재 모습.


제단 양쪽으로 난 2개의 거대한 회랑들은 건물을 완벽하게 지탱해주고 있으며, 회랑 위층에는 특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별석 귀퉁이마다 망루들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바깥쪽을 향해 구석구석 틀어박혀있기도 합니다.


망루로 오르는 계단 역시 설치되었습니다. 계단들은 중앙에 높이 솟은 탑까지 이어지고 두 개의 좌, 우측 회랑 사이에 들어선 길이가 짧은 회중석은 삼등분되었습니다. 내진 안쪽 끝 동쪽 방향으로는 주 후진이 들어섰으며, 서쪽 방향으로는 부 후진이 자리합니다. 이 후진들은 이 시대에 최고조에 달한 서구에서 제일 큰 크기와 규모를 자랑하는 베스트베르크(Westwerk)를 구성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슈파이어(Speyer) 대성당 지하교회(크립트).[1]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완성된 슈파이어 대성당의 지하교회는 지상층의 본당 내진과 좌, 우측 회랑 바로 밑 지하에 들어섰습니다. 천장은 둥근 형태이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6.5미터에 이릅니다. 당시 알프스 북쪽에 들어선 건축물 가운데 가장 거대한 크기입니다. 지하교회는 프랑크 족의 일파인 살라 족이 세운 살라 왕조 시기에 황제를 위한 지하묘지(네오크로폴)로 사용되었습니다.


11세기 초반에 신성 로마 제국의 또 다른 건축물을 특징짓는 새로운 건축술이 출현합니다. 새 방식으로 지어진 교회들은 간혹 띠 장식과 벽감들을 한데 통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진 교회 장식에 영향받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어디까지나 장식에 한정된 것일 뿐 지역마다 전해져 오는 건축술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건축가들은 교회 건축물이 지닌 양극성, 즉 동·서양을 종합한 건축적 특징에 충실했지만, 서양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건축적 특징이 우세를 보인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슈파이어 대성당과 림부르크 대성당의 경우에서처럼 벽 귀퉁이에 설치한 반원형 아치들 위에 올린 원형 천장 기술이나 좌우 회랑들이 교차하는 곳에 빛을 끌어들인 기술은 로마네스크 초기 건축술에 입각한 유럽 남방 교회들을 지을 때 이미 활용한 기술들입니다.


독일 라인란트 팔츠 지방에 들어선 슈파이어(Speyer) 대성당은 11세기 로마네스크 시기에 완성된 성당들 가운데 제일 큰 규모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지하교회의 모습입니다.
도시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림부르크(Limburg) 대성당 모습.


원형 천장은 프랑스에서처럼 후진의 회랑들이 층층이 들어선 곳을 향해 내진이 십자형으로 교차하는 지점, 그 중심에 우뚝 들어선 커다란 탑 위에 얹힌 형태와는 사뭇 다릅니다. 후진들이나 회랑 네 귀퉁이에 자리 잡은 망루들 역시 신성 로마 제국의 교회 건축물에서만 발견되는 징후들입니다. 이 시기의 건축가들은 또한 내진을 설계함에 있어서 서양식으로 엄청나게 육중한 수직으로 뻗어 올라간 건축물에 집착합니다. 트리어 바질리크 대성당은 이를 여실히 예증해 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트리어(Trier) 대성당.
동쪽에서 바라본 슈파이어(Speyer) 대성당 모습, 11-12세기.[2]


콘라트 2세(1039년 사망) 황제 치하에 공사가 시작된 슈파이어 대성당은 그가 사망한 뒤인 1061년에 마침내 완공을 봅니다. 황제 하인리히 4세(1106년 사망) 치하에서는 개축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죠. 대성당은 라인 강 연안의 로마네스크 예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교회 건축물은 카롤링거 왕조시대의 건축술과 오토 왕조시대의 건축술을 한데 융합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여기에 롬바르디아 왕조의 로마네스크 예술까지 더해졌습니다.




독일 라인란트 팔츠 지역에 위치한 슈파이어(Speyer)는 11세기 로마네스크 시기에 지은 교회 건축물 가운데 그 규모가 제일 큰 대성당을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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