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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Dec 05. 2021

로마네스크 건축 공사장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42화


건축 공사장에 질적으로 우수한 노동력이 출현하는 시기가 바로 로마네스크 시대입니다.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있었기에 우수한 기능공들이 팀워크를 이뤄 공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건축 장인인 마스터를 가리켜 마지스테흐(magister)라 불렀죠. 마스터가 이끄는 그룹은 돌을 자르고 다듬는 석공들과 돌을 쌓아 건물을 짓는 석수들로 한 팀을 이뤘습니다.


돌은 건물을 짓는데 가장 주요한 재료였습니다. 주로 석회암이 사용되었으나 반암이나 화강암도 건축 재료로 활용되었습니다. 공사장 인근의 채석장에서 캐낸 돌들이 주류를 이룬 반면 로마네스크 시대에 들어와서는 아주 드물긴 하나 벽돌 역시 건축 자재로 활용되었습니다. 벽돌은 플랑드르 지방이나 툴루즈의 미디 지방에서 주된 건축재료였죠.


<건물 짓는 일을 하는 수사들>, 12세기, 꽁끄(Conques) 마을의 성녀 화(Foy) 수도원 교회 기둥머리 장식.


채석장에서 채석꾼들이 캐낸 돌덩어리들을 석공들은 곡괭이와 망치, 정 등을 이용하여 사용하기 좋게 알맞은 크기로 다듬었습니다. 이때 석공은 커다란 돌덩어리가 놓여있는 땅바닥에서 직접 일하거나, 아니면 작은 탁자 크기의 작업대에서 돌을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다듬었습니다.


작업대는 책상다리에 떡갈나무로 된 두꺼운 널빤지를 올려놓은 형태였습니다. 돌을 다듬는 장소를 가리켜 ‘공사장’이라 부른 이유 또한 이 작업대란 용어가 ‘공사장에서 작업하는’이란 표현에서 비롯되었으며, ‘공사장’이란 단어 역시 돌 다듬는 작업을 위한 장소를 가리키는 용어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돌을 깎고 자르는 일을 하는 석공은 해머나 자루가 긴 망치로 자른 돌을 끌이나 정과 같은 연장을 이용하여 다듬는다는 점에서 조각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조각의 돌을 다듬기 위해 석공은 나무로 된 실물 크기의 모형들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이때 나무 조각을 물에 불려 한층 부드러우면서도 느슨해질 수 있도록 모형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돌의 실제 크기보다 약간 넉넉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건축 공사에 필요한 기둥들을 포함하여 모든 건축 자재가 이런 방식으로 제작되었죠. 실물 크기의 모형들은 석공장에 의해 결정되었고 또한 돌을 얼마나 자를 것인지 돌에다 직접 표시를 했습니다. 석공장은 건축 공사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마스터와 아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작업을 수행해 나가곤 했죠.


고대의 건축가들이 마지스테흐 오페리(magister operis)라 부른 아주 유능한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이 인물은 석공이나 석수 나아가 조각가 조직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석공장은 공사장의 마스터라 할 수 있는 건축 장인에 의해 선발되었죠. 거의 대부분은 영주가 천거하였지만, 이따금씩 고위 성직자(수도원장 또는 주교)도 석공장을 선발하는 일에 관여했습니다. 영주나 고위성직자는 한편으로 교회 건축물을 주문하기 전에 전반적인 공사비용을 충당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습니다.


마스터의 주요 필수품은 눈금이 매겨져있는 컴퍼스나 직각(T나 L) 자입니다. 이 도구들은 건축물이나 건축 자재 모형들의 크기나 치수를 재기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스터는 마지막으로 건축도면 초안을 설계하기 위해 건물이 위치하는 지면 위에 석회나 모래를 사용하여 건물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사다리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실측도에 의한 도면이 그려지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사실 실측도에 의한 도면은 고딕 시대나 가서야 완벽하게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먹줄이나 13개의 매듭이 지어진 줄이나 끈을 이용하여 지면에 설계 도면을 그려나가는 방식이었죠.


먹줄이나 끈은 수직선이나 평행선을 긋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치수가 틀릴 때도 있었습니다. 측정이나 조준에 필요한 완벽한 도구가 부재했던 탓으로 마스터는 경험을 통해 터득한 돌 쌓는 기술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경험에 의한 아주 단순한 설계도에 의지하거나 이전에 일하던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작업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마스터는 조수들을 거느렸는데,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라 불린 이 조수들은 마스터의 지시사항들이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설명들을 공사장 인부들에게 아주 간단히 요약해서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입니다.


벽들을 쌓아 올릴 때는 석수들은 공사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에 맞춰 설치된 나무로 만든 비계들 위에서 작업하였습니다.


먹줄을 사용하여 실측하는 모습.

[그림 왼쪽] 13개의 매듭이 지어진 끈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치수를 재기 위해 활용되었습니다. 끈의 길이는 12개의 꾸데[1]들에 해당하며, 13개의 매듭으로 표시된 12개의 똑같은 간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림 오른쪽] 13개의 매듭지어진 끈은 직각을 얻기 위하여 자연수인 5, 4, 3에 근거한 피타고라스 정리 역수를 활용하였습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술에 있어서 돌 쌓기 공사는 서로 평행한 두 개의 돌벽들을 쌓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이때 돌벽 표면 미장공사도 함께 진행합니다. 돌벽 표면 미장 공사는 돌과 돌 사이의 빈틈이 없도록 틈을 메우거나 벽과 벽 사이의 틈을 메우는 공법으로 진행됩니다. 이때 돌벽의 틈에 끼워 넣기 위해서 따로 준비한 돌이나 회반죽 재료가 사용되죠.


돌벽 표면 미장 공사는 먼저 회반죽을 바른 상태에서 수평으로 돌들을 가지런히 쌓아 올린 뒤, 그 위에 다시 회반죽을 바르고 돌을 겹쳐 쌓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회반죽은 석회와 모래를 적당히 섞어 만든 것이죠. 석수는 삽으로 회반죽을 떠서 흙손으로 바릅니다. 그다음엔 이를 다지기 위하여 커다란 돌덩어리를 그 위에 올려놓습니다. 실에 납을 매단 건축용 진자는 돌들이 제대로 수평을 이루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또한 다양한 계기들과 눈금이 새겨진 자들이 길이를 재기 위하여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바벨탑 공사>, 1100년경, 생 사뱅 쉬흐 갸흐탕프(Saint-Savin-sur-Gartempe) 수도원 내진의 둥근 천장에 그려진 벽화.


돌로 반원형 천장이나 둥근 천장을 이을 때는 미리 설치한 아치를 지탱하고 있는 홍예틀과 목수가 제작한 나무틀 위에 홍예 머릿돌과 홍예석을 조립해서 짓습니다. 목수들과 목공들은 커다란 도끼들이나 손도끼들, 기다란 톱들을 사용하여 떡갈나무와 밤나무 그리고 진이 나는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나무틀을 제작하였습니다.


비계들이나 기중기들 역시 공사장에서 쓰이는 요긴한 것들입니다. 건축물 둥근 천장의 활처럼 휜 바깥 둘레 위쪽으로 지붕을 잇기 위해 미리 정해진 골재를 세워 올립니다. 이 골재 위에 기와공은 남쪽은 오목한 기와로 북쪽은 평탄한 기와를 올리죠. 이때 기와 대신 석반석들이나 지붕널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나무로 만든 기와는 견고하고도 가벼워서 숲이 우거진 지역에서 즐겨 사용했습니다.


공사장에는 대장장이들도 작업에 참여했는데, 주로 쇠로 만든 연장들을 제조하고 수리하는 일에 동원되었습니다. 끝으로 유리 제조공들은 색유리창(스테인드 글라스)을 제작하여 설치하는 작업을 도맡았죠. 또한 화가들 역시 공사장에 투입되어 무늬 장식을 그려 넣거나 내벽과 외벽에 프레스코 화를 제작하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실상 합각머리들이나 기둥들 그리고 건물 바깥정면에 설치한 기둥머리들은 색을 입힌 상태였습니다. 교회 외벽들도 거의 대개가 색이 칠해졌는데, 벽면에 똑같은 크기의 돌들을 규칙적으로 배열한 듯한 그림을 눈속임 수법으로 덧칠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로마네스크 건축에 있어서 돌 쌓기 공법의 결점을 감추기 위한 덧칠에 불과한 것입니다.


로마네스크 벽 구조.




[1] 꾸데(coudée)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써 약 50센티미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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