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44화
[대문 사진] 피에몬테 산 미슐레 성당
또다른 교회들이 프랑스에서 가장 풍요로운 부르고뉴 지방에 들어섰습니다. 이곳에 세워진 교회들을 일별해보면, 중앙 회중석은 베즐레에서와 같이 통 형 천장이 아니라 이번에는 교차 천장으로 이어나간 것이 눈에 띕니다. 앙지 르 뒤크, 구흐동, 이씨레베크에 세워진 교회들이 그와 같습니다.
르 퓌 앙 블래 대성당은 회중석을 더는 확장할 수 없으리만치 높은 천장으로 뒤덮였습니다. 건물을 더 크게 짓고자 한 관계로 동쪽 방향에 빈 공간을 확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12세기 중반에 접어들면 르 퓌 앙 블래 대성당에서 보듯 교회 건축물은 현관이 자리 잡은 토대로부터 두 개의 측랑과 하나의 신랑으로 구성된 회중석들이 길게 뻗어나간 구조로 건물 내부가 완성됩니다. 이는 기복이 심한 땅에 교회 건물이 들어선 불편한 구조를 고려한 벌충 형식으로 고안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계단도 등장합니다. 계단은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 입구로부터 정문 현관으로 진입하여 건물 안쪽 깊숙이 자리잡은 성소, 즉 제단 앞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서로 간격을 띄우고 서있는 기둥 사이의 공간들은 원형 천장으로 덮였으며, 회중석 두 측랑들의 천장은 교차 천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좀 늦은 시기이긴 하지만 바로 뒤를 이어 길게 뻗은 회중석으로 빈 공간을 채운 르 퓌 앙 블래 성당과 같은 방식으로 몽생미셸 수도원교회가 지어집니다. 노르망디 지방 대서양 바닷가에 자리한 이곳 역시 또 하나의 중요한 순례지로 각광받습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에 위치한 성 미카엘 성당 또한 르 퓌 앙 블래와 유사한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지형의 기복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했습니다. 피에몬테 산꼭대기에 들어선 사크라 디 산 미슐레 성당은 르 퓌앙 블래나 바위섬 꼭대기에 위치한 몽생미셀과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르 퓌 앙 블래나 몽생미셀과는 달리 피에몬테의 성 미카엘 성당은 기념비적인 계단을 뛰어올라 들어서는 곳이 신자석에 해당하는 중앙회중석이 아니라 후진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예술사가들은 순례자들이 거쳐 가는 주요한 길목마다 자리 잡은 수많은 대형 성당들 사이에는 서로 간에 건축 양식에 있어서 어떤 확실한 연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와 같은 성당들을 예로 들면, 투르의 생 마흐탱(Saint-Martin de Tours)을 비롯하여 리모쥬의 생 마흐시알(Saint-martial de Limoges), 툴루즈의 생 세흐냉(Saint-Sernin de Toulouse), 꽁끄 마을의 생트 화(Sainte-Foy de Conques),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성당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된 건축적 특징들이 수없이 산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성골함 제식을 치르는 교회 특유의 성스러운 의무는 순례자들이 찾는 교회들을 질적으로 한 차원 더 높이 올라서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성지순례와 성골함 제식이 교회를 발전시킨 가장 근본 요인이었던 셈이죠.
11세기 말까지도 이러한 현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서쪽 정면 부분(파사드)에 정문이 설치되었으며, 문들은 아주 정치하게 제작된 조각들로 뒤덮여있습니다. 서쪽 파사드엔 또한 거대한 두 개의 탑들이 들어섰습니다. 위압적인 높이로 선 두 탑이 서쪽 파사드를 품고 있는 형상이죠.
예외가 있다면, 툴루즈의 생 세흐냉 성당은 원래 두 개의 탑을 설계했으나 완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중앙 회중석 천장은 높이 올라섰고 좌, 우측 나란히 이어진 두 개의 측랑들은 4 등분된 교차 천장으로 마감하였습니다. 회중석의 길이 또한 변화가 심했죠.
측랑들 위로는 특별석이 자리 잡았으며, 회중석을 환히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특별석 뒤쪽 벽면에는 두 짝이 한 쌍을 이룬 창문을 만들어 달았죠. 좌우 날개와 같은 통로는 아주 폭넓은 공간으로 넘쳐나서 북쪽과 남쪽 방향에도 회중석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북쪽과 남쪽 측랑들 역시 특별석 측랑들과 같은 높이를 이룹니다. 정 중앙 회중석과 측랑들이 교차하는 한가운데에는 쿠폴(돔)이라 부르는 원형 천장이 자리했습니다. 그 너머 동쪽으로는 기다란 회랑이 내진과 후진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벽체에 방사상 형태로 자리잡은 소제단들은 회랑을 향해 열려있는 구조입니다.
반원형 순환 회랑에는 길이가 짧은 회랑이 하나 더 들어섰는데, 회랑은 후진과 특별석을 연결하는 통로로 자리 잡았습니다. 빛은 높은 벽면에 설치한 창문들을 통해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특별석과 측랑들 벽면에 창문을 설치함으로써 실내를 한껏 환하게 만들었죠.
바질리크 양식으로 지어진 툴루즈의 생 세흐냉 대성당은 1096년 5월 24일 교황 우르반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봉헌되었습니다. 교황이 툴루즈에까지 올수 있었던 이유는 제1차 십자군 원정을 독려하기 위해 북동부를 제외한 프랑스 남서부, 중부 지역에 자리한 교회들을 순회하던 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때 마침 툴루즈에 들른 교황은 완공된 대성당을 수호성인 세흐냉에게 성대하게 봉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