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45화
[대문 사진] 순례자의 마을 꽁끄
순례자들을 위한 교회들은 모두 실내를 구조적으로 내진이나 지하교회에 보관 중인 성골함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기 편하도록 환형 구조로 설계하였습니다. 이로써 좌우 측랑이 상당히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성골함에 대한 특별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신자들이 제단 주위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널찍한 공간 또한 마련되었습니다. 더해 특별석은 경우에 따라 밤 동안에 가난한 순례자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건물의 몸체는 건물 전체의 안전성을 고려하여 마디마디 분절된 크기로 균형 있게 자리 잡았죠.
교회 뒷부분에 들어선 후진이 점차적으로 거대한 몸체로 불어나면서 높이 올라간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 같은 경우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원형 천장과 위로 솟은 탑이 내리누르는 힘을 지주나 버팀벽 등이 감당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점이 해결되면서부터였습니다. 즉, 천장과 탑이 내리누르는 힘을 좌우 통로의 십자형 지주들과 이와는 별개의 회중석에 세워진 지주들에게로 분산시킬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되기에 이르렀던 거죠.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에 위치한 꽁끄(Conques) 마을의 성녀 화(Foy) 수도원 교회 후진은 106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겹겹이 3층 구조로 된 건물 외부의 형태는 교회 내부가 순례자들을 위한 구조로 설계되어있음을 반증합니다. 내진은 순환 형 회랑의 중심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회랑에는 방사상으로 다섯 개의 작은 제단들이 들어섰습니다. 부드럽게 다가오는 돌들이 주는 느낌은 1994년에 새로 끼워 넣은 색유리창들의 생경함을 완화해주는 듯합니다.
특별석에 관해 다시 언급하자면, 양측의 특별석은 중앙 회중석의 빗물받이 홈통이 설치된 벽 아주 높은 곳에 들어섬으로써 회중석을 덮고 있는 반원형 둥근 천장이 내리누르는 힘을 일부 분산시키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11세기 말에 접어들면 꽁끄 마을의 성녀 화(Foy) 수도원 교회가 성지순례의 본보기로 자리 잡았으며, 툴루즈의 생 세흐냉 성당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순례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대비되는 아주 소박하고 수수한 형태를 띤 교회 건축물도 등장했습니다. 프랑스 볼리유 쉬흐 도르도뉴(Beaulieur sur Dordogne)의 <성 베드로 성당> 및 <성모 마리아 성당>과 같이 휘제아크(Figeac)의 <성 구세주 성당>, 마흐실락(Marcilhac)의 <성 베드로 성당>, 로데즈(Rodez)의 <생타망(Saint-Amans) 성당>, 알레(Alet)의 <성모 마리아 성당> 등이 이 경우에 속합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 놓이는 스페인 교회 건축물로는 오우렌세와 루고 대성당, 그리고 뚜이 대성당, 또한 꺄르보에이로의 산 로렌조 수도원 교회도 포함됩니다.
오베르뉴 지방의 교회들 역시 소박하고도 수수한 형태가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에서 앞에서 열거한 교회건축물들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유추해 볼 수가 있습니다. 클레르몽에 위치한 노트르담 뒤 포흐 성당과 오흐시발의 생 넥태흐 성당 및 노트르담 대성당, 그리고 생 사튀흐냉 성당, 모자크 성당이 그와 같은 경우에 속합니다.
브리우드의 생 쥴리앙 성당은 앞에서 열거한 성당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데, 교회 후진과 특별석이 측랑들 위에 자리 잡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교회들과 비교됩니다.
4세기 때 순교를 당한 쥴리앙(Saint Julien)은 중세 프랑스 사회에서 마흐탱 성인(Saint Martin)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성인입니다. 성인의 무덤이 안장된 오베르뉴 지방을 대표하는 생 쥴리앙 대성당은 1060년부터 115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단계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색깔을 띤 돌들의 배합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서로 다른 재질에 분홍빛, 붉은빛, 갈색, 노란색과 회색이 한데 뒤엉켜있어 여러 다양한 석재의 눈부신 화판을 보는 듯합니다.
11세기 말에 접어들어 모든 교회 건축물들은 이전의 시기에 로마네스크 예술이 활짝 개화했던 유럽의 각 지역에서 좀 더 진척된 모습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들 또한 그들 본래의 종교적 의무에 따른 성스러운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몰려드는 순례자들을 맞이하기에 바빴죠.
후진은 순환 형 회랑으로 더 복합적인 구조로 자리 잡아갔으며, 프랑스 카페 왕조시대의 초기 로마네스크 시기에 처음으로 등장한 소 제단이 방사상으로 여러 개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좌우 측랑에 위치한 특별석은 초기 기독교 바질리크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 건축물들에 처음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역시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물에 이를 적용하였죠. 예를 들어 밀라노, 피사, 바리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영국 또한 노르망디에 걸친 거대한 영토에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노르망디 왕국의 초기 건축물에도 적용되었습니다. 1049년 완공된 랭스의 생레미 대성당에는 좌우 측랑들에 특별석이 배치되었으며 십자형으로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세 개의 회중석을 갖춘 아주 널찍한 공간이 태어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