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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Dec 10. 2021

동방 교회들로부터의 영향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47화


서양은 늘 부러움의 상탄과 경멸이 한데 뒤섞인 감정으로 동양 쪽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습니다. 유럽에서 로마네스크 예술이 개화했을 당시 동방 세계와의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상업 활동과 군사 종교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사실은 그리스-비잔틴 예술이 이탈리아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는 점입니다. 6세기에서 8세기에 이르는 기나긴 시기에 걸쳐 이탈리아 반도에 비잔틴 예술이 출현하고 라벤나가 동로마 제국의 태수가 관할하는 지역으로 바뀌던 11세기가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까지 푸글리아와 칼라브리아와 같은 몇몇 남쪽 지역에 동방 문화가 전해졌다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동방 세계와의 교역을 하던 베네치아는 지리상으로 아주 가깝다는 이점만이 아니라 동방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해상 공화국으로 막강한 부를 축적해가던 베네치아는 산 마르코 성당을 바질리크 양식으로 새롭게 개축하고자 시도했으며, 이를 위해 건축 명인 마스터는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진 거대한 <성 사도 성당>을 모델로 채택하였습니다.


왼쪽은 기록으로 전해오는 콘스탄티노플의 성 사도 성당이며, 오른쪽은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입니다.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위치한 카노사 디 푸글리아 대성당과 트라파니의 산 프란치스코 성당, 또한 칼레나의 산타 마리아 성당 등은 이처럼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들에 해당합니다.


시칠리아는 노르망디 출신의 국왕이 그리스와 콘스탄티노플에서 돌아올 때 아예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을 대동하고 와서는 시칠리아의 모든 교회들을 모자이크로 새롭게 장식했습니다.


프랑스라 해서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십자군 원정을 통하여 비잔틴 양식으로 지은 건축물들에 영향을 받은 결과 프랑스의 남서부 지역에 원형 천장 아래 줄줄이 길이가 짧은 회중석이 들어섰습니다.


물론 의문은 남습니다. 르 퓌 앙 블래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보듯, 8 각형 펜던트 형 원형 천장이 리용에 지어진 애내 성당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꼭 비잔틴 영향을 받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면 리용의 애내 성당은 동방 건축양식이라기보다는 고대 서로마 제국의 건축적 전통을 충실히 따라서 지은 교회 건축물이기 때문입니다.


비잔틴의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서로마제국의 건축 양식에 충실한 리용의 애내(Ainay) 생 마흐탱(Saint Martin) 대성당, 프랑스.


그렇기는 하지만 뻬히괴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생 프롱의 대성당에서 콘스탄티노플 성사도들 성당과 같은 5개의 원형 천장과 그리스 십자가 형태의 내부 설계에 따른 전통적인 동방 건축술을 도입했다는 점으로 말미암아 이들과의 관련성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성 사도 성당과 비견되는 뻬히괴(Périgueux) 생 프롱(Saint-Front) 대성당은 파리 몽마르트르에 세워진 사크레 쾨르(성심성당)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캬오흐 대성당이나 쑤이약(Souillac) 수도원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교회는 동방 건축의 전형적인 모델에 영향받은 결과 펜던트 형 원형 천장이 널찍하면서도 길이가 짧은 회중석들을 덮고 있죠.


캬호흐(Cahors) 성 스테파노 대성당 외관 및 팬던트 형 원형 천장, 프랑스.
쑤이약(Souillac) 성모 마리아 수도원 교회 후부 및 팬던트 형 원형 천장을 한 중앙회중석, 프랑스.


그러나 서로마 제국시대의 건축적 특징이 남아있는 교회 건축물들도 많은데, 건물 전체의 기본적 설계와 교회 후진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교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원형 천장 구조와는 대조적인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몬레알레(Monreale) 대성당 후진의 둥근 천장 모자이크, 1175-1190년경, 이탈리아 시칠리아.


몬레알레(Monreale) 마을은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 서쪽으로 약 8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마을 이름은 처음 이 마을에 대성당을 창건한 시칠리아의 국왕 기욤 2세가 붙인 ‘몽 화이얄(Mont Royal: ‘황실의 언덕’이란 뜻)’이란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몬레알레 수도원은 1183년부터 주교좌에 속했던 곳이죠. 비잔틴 양식에 따라 장식된 모자이크 천장 한가운데에 자리한 그리스도는 한 손에 활짝 펼쳐진 성서를 들고 있는데, 왼쪽은 라틴어로 오른쪽은 그리스 어로 적혀있습니다. 적혀있는 성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8장 12절).


로마네스크 장식예술에 있어서 이슬람 예술의 영향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시칠리아와 스페인은 항상 그에 대한 중개를 자처한 지역이었습니다. 이미 모사라베 예술에 나타난 현상이었기는 하지만 코린트 장식에서 처음 등장했던 처마 까치박공들의 지저깨비 형태의 장식들은 조각 예술에 있어서 이슬람 예술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예를 들어 기둥들이 뻗어 올라간 부분에 아치가 사붓이 내려앉은 지점의 버팀돌을 지저깨비 스타일로 장식한 것은 시토회 수도원인 산테스 크레우스(Santes Creus)에 처음 등장합니다.


산테스 크레우스(Santes Creus) 시토회 수도원, 스페인.


프랑스의 블래나 오베르뉴 교회들에게서 나타나는 서로 갈마들 듯 장식된 홍예 머릿돌을 다색으로 장식한 것 역시 이탈리아의 특출한 미장 공법에 따른 홍예 머릿돌을 서로 번갈아 가며 여러 색깔들로 장식한 것과 일치합니다.


여기서 전기 로마네스크 시기에 다시 등장한 고대 장식적 특징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서쪽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과 블래 교회에게서 발견되는 여러 형태의 꽃잎 장식들을 한 아치들은 이슬람 장식 예술의 영향을 받은 에스파냐 건축 장식술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퓌 앙 블래(Puy en Velay) 인근 애길레(Aiguilhe) 성 미카엘 성당과 이슬람 건축에서 영향 받은 장미꽃잎 문양 아치, 프랑스.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부활교회(Anastasis)의 콘스탄티노플 복사판이라 할 수 있는 원형 천장과 기둥으로 된 건축물은 서로마 제국과 전기 로마네스크 건축물에서 빈번하게 차용된 모델입니다. 12세기에만 서양에 50여 개가 넘는 교회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지어졌는데, 이름이 모두 ‘예수의 무덤’을 뜻하는 성묘(Saint Sépulcre) 성당이라는 이름을 채택하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루살렘 성지순례에서 귀환한 뒤에 지어진 건축물들입니다.


서유럽에 성묘 성당(Saint Sépulcre)이란 이름을 지닌 교회 건축물의 효시가 된 예루살렘 <성묘(聖墓) 성당> 오늘날 모습.


일례를 들면 프랑스 앵드르 지방에 위치한 뇌비 생 세퓔슈흐 성당은 1042년에 외드 드 데올이 성지에서 돌아온 뒤에 지은 교회입니다. 파더보른의 마인베르크 주교는 비노 수도원장을 예루살렘에 보냈는데, 이는 예루살렘의 성묘 교회와 똑같은 방식으로 본뜬 교회를 부스도르프에 완공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11세기 앵드르(Indre) 지방의 뇌비 생 세퓔슈흐(Neuvy Saint Sépulchre)에 세워진 수도원 성당 원형 천장, 프랑스.


같은 시기에 예루살렘의 생 세퓔크르 교회와 유사한 건축물이 트루아에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의 복사판에 가장 근접한 건축물은 브린디시에 지어진 교회일 것입니다.


브린디시(Brindisi) 산 지오반니 알 세폴크로(San Giovanni al Sepolcro), 이탈리아.


역시 예루살렘의 건축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교회 건축물로 볼로냐에 있는 산토 스테파노 성당을 들 수 있습니다.


볼로냐(Bologna) 성 스테파노(Santo Stefano) 대성당, 이탈리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한 길에 만나는 저 유명한 교회 생 레오나르 데 노블라 교회는 고립된 원형 천장과 기둥만으로 세워졌는데, 역시 생 세퓔크르에 봉헌되었습니다.


프랑스 서부 누벨 아끼탠느 지역에 위치한 생 레오나르 데 노블라(Saint Léonard de Noblat) 수도원 교회.


거대한 생 레오나르 수도원 교회는 회중석과 회랑이 북쪽을 향해 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부활교회(Anastasis) 원형 천장의 축소판을 연상시킵니다. 다른 교회들 역시 비록 생 세퓔크르에 봉헌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다 건축상으로 예수부활교회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점만큼은 틀림없습니다.


브르타뉴 지방에 위치한 낑뻬흘레의 성스러운 십자가 수도원 교회의 경우 역시 12세기에 지어진 거대한 둥근 천장과 둥근 기둥들이 목격됩니다.


낑뻬흘레(Quimperlé) 성스러운 십자가 수도원 성당, 프랑스.


마찬가지로 이제는 폐허로 변한 꼬뜨 다모흐의 랑레프교회 또한 이 같은 방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랑레프 교회는 옛날에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교회입니다.


꼬뜨 다모흐(Côte d’Armor)의 랑레프(Lanleff) 교회, 프랑스.


투르 근처의 르 리제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성 요한 성당도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의 성묘에 봉헌된 교회입니다.


리제(Liget)의 성 요한 성당, 프랑스.


이밖에도 로마네스크 시기에 지어진 교회들은 복합적인 건축 형태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둥근 천장을 하고 있어 동방 건축물과의 영향관계에 통합될 수 있는 여지가 높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 디종의 생 베닌느 성당이라든가 샤후(Charroux)의 성구세주 성당이 그러합니다.


디종(Dijon) 생 베닌느(Saint-Bénigne) 대성당, 프랑스.
샤후(Charroux) 성 구세주 수도원 성당, 프랑스.


고고학자이면서 역사가인 피에르 퐁시슈는 쿠사의 산 미구엘(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에서 이러한 영향관계를 확인하였는데, 수도원은 교회뿐만 아니라 안뜰과 삼위일체의 원형 천장과 함께 성묘에서 발굴한 성골들을 보관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쿠사((Cuixà)의 산 미구엘(Sant Miguel) 수도원 교회, 스페인.


상당히 많은 숫자의 교회들 내부가 이렇듯 예수의 무덤을 연상시키는 작은 기도소들로 꾸며졌다는 점에서 동방 교회와의 연계성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특별히 성주간에 행해지던 미사들은 이러한 점을 설명해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같은 경우에 콘스탄츠(Konstantz)와 생 발부르가 아히슈타트(Saint Walburga d’Eichstätt), 게른로데(Gernrode) 장크트 시리아쿠스(Saint Cyriakus), 오브떼흐 쉬흐 드론느(Aubeterre sur Dronne), 라 베라 크루즈 데 세고비아(la Vera Cruz de Ségovia)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콘스탄츠(독일), 생 발부르가 아히슈타트(알자스), 게른로데 장크트 시리아쿠스(독일), 오브떼흐 쉬흐 드론느(프랑스) 교회.
라 베라 크루즈 데 세고비아(La Vera Cruz de Ségovia) 교회, 스페인.[3]


라 베라 크루즈 데 세고비아 교회는 중앙집중식 설계에 따라 지어진 교회로 12개의 벽면을 갖춘 다면의 벽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 안에 들어섰습니다. 1208년에 완성된 건물로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 끌려갈 때 짊어진 십자가 한 조각이 보관되어있죠. 교회 창건은 성묘(Saint Sépulcre) 수도회의 교회 참사회원들이었던 템플 기사단이 도맡았습니다.




 

템플 교회인 라 베라 크루즈 교회는 세고비아(Segovia) 인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묘 성당을 본떠 지은 중앙집중식 내진이 돋보이는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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