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256화
[대문 사진] 생트 메흐 에글리즈 성당
나는 내게 마련된 이 작은 공간을 좋아한다. 아내가 선택한 삶을 존중한다. 아내가 고른 이 작은 아파트에서, 밖으로 커다랗게 나 있는 유리창 앞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 역시 애호한다.
이 숨 막히는 고요의 순간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비도, 쏟아지는 눈발도, 작은 공간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드는 햇빛도, 저녁마다 드리워지는 그림자까지도 소중하다. 귀한 자연의 은총과 축복에 몸 서리 처지는 전율, 영혼의 날개 없는 인기척 소리는 어느 정처 없는 곳을 떠돌다 가도 다시 소중한 기억의 책상 앞에 놓인 등불이 되어 어둠을 밝힌다.
언제까지일지를 모르는 순간까지도 되풀이될 운명의 시간은 거침없이 의식밖을 떠돌지만, 기억 한 줌 재로 변한 순간에 내 모든 것이 온전히 부활할 것을 의심치 않는 이 엄중한 깨달음의 찰나, 기억은 다시 천천히 2019년의 유월로 되돌려진다.
거기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거닐던 뜨락이 있고, 바라보던 집들이 있고, 다정히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아 점심을 들던 간이식당이 있고, 무릎 꿇고 기도하던 교회가, 벽마다 뚫려 있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빛이 만들어 낸 색유리창이, 눈부신 유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거닐던 풀밭이 펼쳐져 있다.
올려다보는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초여름의 눈 시린 햇살에 전쟁터에서 숨져 어느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까지도 천사의 합창 속에 천국으로 향하는 눈부신 행렬이 이어지고, 전쟁은 마을의 모든 집들을 불태웠지만 살아남은 성당의 지붕 너머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 천상의 음조를 띤 성가 합창에 공명하는 허공을 가득 채운 풍금 소리는 저 들판의 쓰러져 누운 풀들마저 일으키고, 계절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잘 여문 기억의 한 자락이 펼쳐져 있다.
생트 메흐 에글리즈는 코탕탱 반도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할리우드의 영화 한 편 덕분이다. <가장 긴 하루(The Longest Day)>라는 영화 한 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알리는 데 일조한 실존 인물인 함 미군 병사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마을이다. 주민수가 2,500명이 조금 넘는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1944년 6월 5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하루 앞둔 긴박함과 초조함을 잘 설명해 주는 그런 곳이다.
존 스틸(John Steele)이란 미군 병사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디데이(D-Day) 하루 전 날인 1944년 6월 5일 공수부대 요원으로 참전해 상륙 지점의 안전한 확보를 위해 적의 후방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생트 메흐 에글리즈 마을 상공으로 공중 낙하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교회 종탑에 낙하산이 걸려 꼬박 2시간 동안을 낙하산 줄에 매달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금이 저리도록 발치 아래에서 낙하한 미 공수대원들과 독일군과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는 상황을 본의 아니게 지켜보게 되었다.
이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바로 <가장 긴 하루>다. 1964년에 제작한 영화는 엄청난 관객을 끌어모으고 프랑스에서는 요즘도 심심찮게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전쟁의 명장면을 담은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영화를 위하여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시나리오를 고쳐 썼으며, 실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전했던 많은 군인들이 영화를 위해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 한 편보다도 미 공수부대 요원 한 사람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만들어 낸 전쟁의 에피소드는 이 마을의 문장에까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장엔 교회가 있고, 교회 종탑 끝부분에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수탉이 자리하고 있으며, 교회 아랫부분엔 알파(A)요 오메가(Ω)가, 교회 지붕 좌, 우측으로는 별과 함께 낙하산 2개가 펼쳐져 있다. 이 모두를 노르망디를 상징하는 황금 사자가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의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수없이 접한 마을을 돌아볼 작정으로 일부러 차의 방향을 틀었다. 유타 비치와 가까운 이곳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라이언 일병이 낙하한 지점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유타 비치 해안의 후방을 평정시켜야만이 안전하게 해안에 상륙할 수 있었던 미군은 디데이(D-Day) 전날 밤, 달빛 밝은 밤, 이곳 생트 마리 에글리즈 마을 주변 지역에 낙하산 투하를 결정했다. 마침내 그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생트 메흐 에글리즈 마을은 미 공수부대원들에 의해 최초로 해방된 프랑스 마을이 되었다.
생트 메흐 에글리즈(Sainte Mère Église)는 영어로 달리 표기하자면 ‘세인트 메리 교회’다. ‘어머니’란 뜻의 메흐(Mère)는 마리아(Maria), 즉 성모 마리아를 가리킨다. 그래서인지 생트 메흐 에글리즈 천주교회는 노트르담(Notre-Dame)이다.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성당!
한 편으로 중세 시대에 모두의 영적인 어머니 마리아는 정복왕 기욤(윌리엄)이 이끌던 노르망디 공국의 왕비 마틸드가 지켜야 할 덕목에 대한 상징이었다. 성모 마리아께 호소한 그녀의 노력이 노르망디의 한 작은 마을 이름까지 낳은 것이다. 이처럼 망슈 지역의 코탕탱 반도 구석진 곳에 이르기까지 노르망디 지방의 역사는 바이킹의 후손이었던 기욤과 순수한 프랑스 혈통을 자랑하는 여인이었던 마틸드에게 닿아 있다.
그 두 사람의 아름다운 결합이 빚어낸 서사들은 노르망디 도처를 물들이고 있다. 바이킹의 피가 흐르는 노르만족과 프랑크인들의 화합은 노르망디 왕국을 건설한 힘이었고, 분출하는 에너지였으며, 적어도 1204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오귀스트에 의해 합병되기 전까지는 승승장구 영국 땅까지 정복했던 역사의 분화구를 흘러넘치던 마그마였다.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서 아내와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분주하기만 하다. 도로 표지판을 훑으며, 어느 길로 가야 빠른 지름길로 갈 수 있을까를 고심한다. 차창밖은 구름 한 점 없는 유월, 화창한 날씨 속의 허공을 보여주고 나뭇잎은 더 푸르러진 느낌이다.
가로수들이 들어찬 길에 접어드는 걸 보니 마을에 도착한 모양이다.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인파를 수용하기 위해 급조한 파킹장에 주차를 하고 마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제일 먼저 우리 두 사람을 반기는 건 영화 속의 명소인 생트 메흐 에글리즈의 노트르담 성당, 광장을 가로질러 가까이 가보니 교회 종탑에 정말 낙하산 하나가 매달려 있다. 전쟁 중 교회 종탑에 낙하산이 걸려 2시간 동안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던 존 스틸 미 공수부대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이걸 보기 위해 매년 디데이(D-Day)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마을을 찾아온다. 우리 두 사람 역시 영화 속 장면을 마주한 듯 신기하기만 한 교회 종탑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낙하산과 병사를 올려다본다. 그때 병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전쟁의 상황을 짐작할 길 없는 두 사람은 그저 올려다만 본다.
이어 성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성당 안 벽 쪽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담은 색유리창이 나 있다. 역시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제단화 앞에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이 놓여있다. 노트르담(Notre-Dame)! 클레르보의 아빠스(‘수도원장’이란 뜻) 베르나르도가 그렇게 목청을 높였던 모성(母聖), 어머니의 성스러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한참을 색유리창 앞에 서서 스테인드글라스 속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경배의 합장을 올리며 머리를 수그린 아내를 등뒤에서 지켜본다. 아내의 믿음까지도 지켜본다. 아내의 신앙을, 아내의 소망을 그려본다.
마을을 마저 한 바퀴 둘러보고 때늦은 점심을 들 차례다. 매번 자동차로 옮겨 다니다 보니 번번이 점심때를 놓쳐 요기나 하는 수준이다. 배고픔은 여행지에서의 갈증 탓으로 더 허기지게 만든다. 이 허기가 다시 가보지 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끌고 그곳에서 허기진 배를 맑은 공기로 채우는 순례는 되풀이된다. 이 되풀이를 우리는 여행이라 이름한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기억에 남을 발품으로 여긴다. 그 소중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여행자의 손 끝의 떨림을 통하여 가슴에 응어리진 이야기들이 한 올씩 풀어지는 것일 테다.
다시 차의 시동을 걸 때다. 차 유리창 앞에 놓인 한 장의 벌금 딱지가 때늦은 점심에 취한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파킹 카드를 차 유리창에 끼워 놓는다는 걸 깜빡했던 모양이다. 귀한 장소를 방문한 대가라 여기니 벌금 딱지마저 불쾌하지가 않다. 한낮의 열기에 취해 졸음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주차 카드가 없는 차들만 골라 벌금 딱지를 끼워 넣은 공무원의 노력이 가상하기까지 한 유월 여름 2019년 생트 메흐 에글리즈에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