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스크 양식의 기념비적 조각품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66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폐허로 변한 로데스 산 페레 수도원


새로운 예술이 길어 올린 혁신성과 활력은 11세기 유럽의 종교 건축물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건물의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 장식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혁신성은 곳곳에 스며들었고 활력을 띠어갔습니다. 건축물들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장식적 요소를 도외시하기는 어려웠기에 오히려 더 공들여 제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여러 곳에서 거의 동시에 다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징후



로마네스크 조각에 있어서 첫 징후에 해당하는 작품들의 연대기를 작성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건립 연도가 확실히 밝혀진 경우는 1019-1020년에 후씨용(Roussillon) 지역 인근의 생 제니 데 퐁텐느(Saint Génis des Fontaines)의 상인방(上引枋)[1]을 건립한 것이 고작입니다.


이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후씨용 지역에서 또 다른 상인방과 건물 정면 부분 장식이 이루어졌는데, 생 앙드레 드 소레드(Saint André de Sorède)의 파사드가 완성된 것이 이를 입증해 줍니다.


이전시기에는 이미 성화들과 함께 로마네스크 양식에 근접한 장식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1046년을 전후해서는 아흘르 쉬흐 테크(Arles sur Tech) 성당의 정면 합각벽(팀파늄) 조각 장식이 완성되었죠.


<네 형상들에 둘러싸인 영광의 그리스도>, 아흘르 쉬흐 테크 수도원 교회. 네 형상은 천사(마태오), 사자(마르코), 황소(루가), 독수리(요한) 4복음사가를 상징합니다.


11세기 초반에 후씨용 만의 조각술을 이어간 진정한 유파가 존재했는데, 이 유파는 고대 로마 제국 말기부터 나르본 변방에서 이루어진 대리석으로 조각을 해온 오래된 전통에 기반한 이들이었습니다. 이 유파는 10세기 때 미사용 제단을 제작하는 상당한 수준의 공방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공방에서 활동하던 장인 예술가들은 11세기 초에 이르러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죠. 이유는 미사 전례에 따른 집기들을 같은 테마로 계속 반복해서 제작해 온 기술이 이미 상당히 축적된 데에 따른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교회 건축물들의 정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장식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장식 속에 그들만의 장식 술에 근거한 조각품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 제니 데 퐁텐느의 상인방 조각 역시 과감한 혁신을 보여주는 예에 속합니다. 사람의 형상을 한 조각들이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이러한 혁신성은 아케이드 형상을 한 견고한 틀 속에 인물들이 한 명씩 자리하고 있는 데서 발견됩니다.


그리스도 양 옆으로 아케이드 안에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은 세상의 종말을 앞둔 순간에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1019-1020년에 완성된 생 제니 데 퐁텐느의 성 미카엘 성당의 상인방(上引枋) 조각. 로마네스크 건축 조각 장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이러한 후씨용 만의 독창성은 로마네스크 건축 조각 장식의 큰 흐름으로 이어지는 시초이자 발단을 이룹니다. 이를 견인했던 탁월한 창조적 예술가들 역시 늘 새로운 건축술을 개발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지난 세기의 판에 박힌 작품 제작에 골몰하던 예술가들의 그늘에 가려있었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생 제니 데 퐁텐느의 성 미카엘 성당의 상인방 조각 이후의 시기에 제작된 생 앙드레 드 소레드 파사드 조각장식. 앞의 상인방과 아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시기에 첫 번째로 등장한 조각품들은 어느 것이나 할 것 없이 기둥머리 장식과 연관되었습니다.


11세기 초반에 등장한 생 마흐탱 뒤 꺄니구의 회중석 기둥머리 장식이나 이보다 조금 늦게 출현한 남부 프랑스 랑그도크 지방의 꼰느 미네르부아 성당의 후진 기둥머리 장식 또한 그 규모가 대단할 뿐만 아니라, 종려나무 잎사귀 모양의 장식이나 꽃 장식에서 보듯 식물의 모티프에서 따온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기둥머리장식들은 제각기 따로 제작되었으며, 둥글게 깎은 기둥머리는 상아 세공인들의 장식 술을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11세기 초반 피레네 인근에 세워진 꺄니구(Canigou)의 생 마흐탱(Saint Martin) 수도원 및 기둥머리 조각장식.


노르망디 북쪽에 위치한 베흐네 성당은 각기 하나씩 깎아서 만든 입방체의 기둥머리들을 보여줍니다. 기둥머리에는 이장바르두스라는 서명까지 새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확한 연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11세기가 진행되던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 세워진 베흐네(Bernay) 수도원 기둥머리 조각장식.


프랑스 오흘레앙(Orléans)에 있는 생태낭 지하교회 기둥머리와 파리의 생제르맹 데프레 성당의 회중석 기둥머리 또한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파리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의 기둥머리들은 파리 소재 국립 중세 박물관으로 이전되어 소장 전시되고 있습니다.


생태낭(Saint-Ainan) 성당의 지하교회 기둥머리 조각(사진 왼쪽)과 생 제르맹 데 프레(Saint Germain des Prés) 성당의 기둥머리 조각장식(사진 오른쪽).


1005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029년에 끝난 생브누아 쉬흐 루아르 교회는 고즐랭 수도원장 시절에 지어졌는데, 이때 함께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탑의 기둥머리 장식들을 가리켜 고고학자들은 교회가 완성된 시기보다 한참 뒤에 제작한 것이라는데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입니다.


생 브누아 쉬흐 루아르(Saint Benoît sur Loire) 수도원 성당 탑의 기둥머리 장식.


11세기가 4분의 1이 흘러갈 즈음 피레네 산맥의 산비탈에 세워진 로데스의 산 페레 암푸리아스 수도원은 두 유형의 아주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일련의 조각 문양들이 기둥머리를 장식합니다. 그 첫 번째 유형은 비잔틴 장식 세공을 보여주는 입방체의 기둥머리에 일일이 깎고 다듬어 당초문, 꽃 장식, 엮음 장식을 새겨 넣은 조각 장식들입니다. 또 다른 유형은 코린트 기둥 조각 장식에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한 조각 장식들입니다.


엮음장식을 한 띠 모양의 기둥머리 장식,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자히한 산 페레 데 로데스(Sant Pere de Rodes) 수도원, 10-11세기.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과 어느 정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러한 장식들은 장인 예술가들이 어디에서 기인한 장식술을 사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찌 되었든 모든 기둥머리 장식들은 건축 구조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생 브누아 쉬흐 루아르나, 셀르 쉬흐 셰흐의 노트르담 라 블랑슈나, 볼리유 레 로슈의 삼위일체 성당이나, 쉬농의 생 멕슴므나 모두가 다 같은 시기에 석회석 돌판에 얕은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기둥머리장식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석공이자 조각가였던 이들은 건축 구조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장식물들을 건물 곳곳에 채워 넣은 셈입니다.


「요한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기사들, 현관 탑 기둥머리 장식, 11세기, 흘뢰리(Fleury) 수도원, 생 브누아 쉬흐 루아르(Saint Benoit sur Loire), 프랑스.


기둥머리 장식은 성서의 내용을 조각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자 봉인을 뜯은 두루마기를 펼치고 네 명의 기사들에게 세상의 4분의 1씩 지배하도록 했습니다. 네 명의 기사들은 도리깨를 들고 있죠. 조각가 움베르투스(Umbertus)는 코린트식 기둥머리의 꽃바구니 장식을 4 등분하여 각기 4명의 기사들을 조각했습니다.


네 명의 기사들 가운데 첫 번째 기사는 활을 들고 있는데, 이는 사이비 종교에 의해 세상이 정복되어 가는 것을 상징하며, 두 번째 기사는 전쟁을 상징하는 칼을 들고 있고, 세 번째 기사는 기근으로 굶주림에 처한 상황을 상징하는 저울을 들고 있으며, 네 번째 기사는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한의 묵시록, 제5장에서 6장).





[1] 상인방(linteau)이란 문짝 위에 설치한 대들보를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