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여름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파리 샹드마르스 공원 <평화의 벽>



지겹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때로는 최고라 생각한 만남도 있었습니다.


지치도록 무언가에 빠져 살았습니다.

때로는 최상의 맛이라 여겼던 음식도 있었습니다.


애꾸눈에 한쪽 다리 절름발이 되어

물구나무 서듯 살아온 시간들이

격랑조차 알 수 없는 물살이 되어

바다로 흘러만 갔습니다.


무성한 세월의 상처가 남긴

아픔의 이파리들마저 시들해진

어느 여름날 오후

슈퍼를 가다 들른

카페에서 만난 여든한 살


아르고 전투에서 부상당한

어느 이름 모를 상이용사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힘겨운 손가락엔

뺄 수 없는 반지만이 홀로 햇빛에 반짝입니다.


노르망디가 좋아 디에프서

근사한 레스토랑 셰프로 일한 적 있는

81살 내 이웃 다정한 미셸 할아버지

집 뜨락에 정성껏 키우는

수국꽃들과 마주할 때마다


한쪽 다리 절룩거리는 세상

망나니 칼 휘두르는 난장.


세상 가진 것 없어도 풍요를 만끽하며 사는

리베르만 유태인 부부처럼

처음 이사 오던 날

우편함 명패를 갈아끼워준 따뜻함처럼

서로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세상

아직도 깨우쳐야 할 것도 많은 세상


함께 죽자 달겨드는 난장 한복판의

진창 속을 서둘러 빠져나옵니다.

누가 등덜미를 잡을 것만 같은 패착의 성난

초조와 불안 죽음의 그림자마저 털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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