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한 편의 시

풀은 눕지 않는다

by 오래된 타자기


풀은 눕지 않는다

풀은 쓰러지지 않는다

풀은 흔들릴 뿐이다.


풀은 눕지 않는다

비바람 속에서도

폭풍우 속에서도


풀은 흔들릴 뿐이다.


풀들이 흔들리는 건

풀들이 이리저리 바람결에 서로 몸을 비벼대는 건

눕지 않고 쓰러지지 않기 위함이다.


오늘도 하루 종일 지켜본 늦가을의 뜨락에서

태양빛 점점 시들어가는 저녁

기침을 해대는 일상의 폭력 속에서조차


풀들이 저 스스로 흔들리는 건


성난 바람결에 스러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 결코 죽지 않을 목숨이기에

바람 불 때마다 스스로 지켜내기 위한 몸짓이다.


풀은 눕지 않는다

풀은 쓰러지지도 않는다

풀은 다만 저 스스로 흔들릴 뿐이다.


흔들림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흔들림만이 세상을 이겨내는 법

흔들림만이 세상에 남는 법


이라고 스스로 말하기 위한

언어다 침묵이다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강한 생명력이 쏟아내는

울분이다 눈물이다

아! 그럼에도 무너뜨릴 수 없는 저항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빈집과 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