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시작하는 글

by 오래된 타자기


지금 제 앞에는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을 가리키는 여덟 장의 지도가 놓여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여 모두 몽생미셸을 향한 것이 마냥 재밌기만 합니다.


첫 번째 지도는 육각형 모양의 프랑스 전도에 노르망디 지방을 푸르고 굵게 원으로 표시한 지도입니다. 지도는 우리말로 ‘수도원 섬’이라 불리는 몽생미셸이 프랑스 대서양 북서쪽 바닷가에 위치해 있음을 일러줍니다.


프랑스는 총 26개의 광역단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광역단체는 프랑스 어로 레지옹(Région)이라 부릅니다. 파리를 포함하여 수도권을 가리키는 일 드 프랑스(Ile de France)를 비롯하여 지중해 섬인 코르스(코르시카)까지 한반도의 2.5배에 이르는 드넓은 국토를 아우르고 있죠. 특이하게도 지도는 노르망디를 높은 쪽 노르망디(Haute Normandie)와 낮은 쪽 노르망디(Basse Normandie)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지도는 한정하여 노르망디 지방만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노르망디는 센 마리팀, 위레, 칼바도스, 오흔느, 망슈 다섯 지역으로 나뉩니다. 지도상에서 몽생미셸은 ‘소맷자락’이란 뜻을 지닌 대서양가 망슈(Manche) 지역 끝단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행정구역 단위는 시(코뮌), 도(데파르트망), 광역단체인 지방(레지옹)으로 분류합니다. 노르망디는 레지옹에 속하고, 망슈는 도, 몽생미셸은 코뮌에 속하죠.


망슈의 도청 소재지는 생로(Saint-Lô)인데. 이웃의 캉(Caen)처럼 제2차 세계대전 시 불바다가 된 아픈 상처를 지닌 도시입니다. 이 지역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은 그렇듯 ‘아픔’입니다.


수없는 전란을 치르고 겪은 지역을 돌아볼 때마다 전쟁의 참상에서 살아남은 교회들과 주민들, 그리고 어느 시대인지 아련하기만 한 옛 건물들에게서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경험하고는 합니다. 비록 여행자의 감회이긴 하나 오래된 정원수나 가로수에게서조차 경외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세 번째 지도는 노르망디 해안에서 이루어진 상륙작전을 간명하게 보여줍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1944년 6월 6일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사건으로 프랑스를 비롯한 미국, 영국, 캐나다가 주축이 되어 꺄부르 해안으로부터 아호망쉬를 거쳐 생 메흐 에글리즈 해안에 이르는 광대한 바닷가에서 펼쳐진 전투를 통째로 아우르는 말입니다. 인근의 캉에 주둔해 있던 독일군 사령부조차 그와 같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고도 놀라운 작전으로 펼쳐진 20세기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이었죠.


프랑스 수도 파리를 탈환하는 일대 쾌거를 이루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서유럽 전선을 반 토막 내는 경이로운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이로써 독일군은 패퇴하기 시작했고, 전쟁의 주범 히틀러는 연합군의 포위 공격 속에 베를린 지하 참호에서 자살함으로써 지긋지긋했던 제2차 세계대전도 막을 고합니다.


그 결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대서양가에 위치한 노르망디 해안을 유타, 오마하, 골드, 쥬노, 스워드 등 영문이름을 딴 유명한 백사장 비치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걸출한 전쟁 영웅들 또한 배출해 냈습니다.


전쟁은 가끔씩 미화되긴 하지만 참혹한 것일 따름입니다. 인간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범죄 가운데 전쟁만 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서양가에서 연합군 독일군 할 것 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마을들이 폭격으로 사라져 갔습니까?


칼바도스 지역의 보석과도 같은 도시 캉(Caen)이나 바이외(Bayeux)를 찾을 때마다 저는 그처럼 무너져 내린 교회 천장과 폐허가 되다시피 한 중세 요새(성채)에서 전쟁의 참상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글의 서두에서 미리 밝혀두는 것이지만, 처음 『몽생미셸 가는 길』이란 글을 구상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도 30년간을 오간 노르망디의 미로 같은 길에서 만난 보석과도 같이 찬란한 마을들 때문이었습니다.


몽생미셸로 가는 길은 그래서 더 아름다웠습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조차 살아남은 마을들, 그리고 마을들을 여태껏 지켜가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글을 쓰고자 했던 것은 제 오래된 염원과도 같았기 때문이죠.


어느 날 몽생미셸 가는 길에 들른 바이외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오르 하천에 걸쳐있는 중세풍의 돌집들, 창틀마다 붉은 제라늄이 피어있는 오솔길을 지나면 바이외의 명소 <자수 박물관>이 나타나고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길이 70미터에 달하는 태피스트리엔 노르망디 왕국을 건설한 정복왕 기욤(영어 표기로 ‘윌리엄’으로 알려진 인물)이 이룬 승리의 대 서사시가 수놓아져 있습니다.


하천너머 시청사 옆에 자리 잡은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대성당 노트르담은 종교개혁 시기에 프로테스탄트들에게, 프랑스 대혁명 시기엔 분노한 백성들에게 성당 곳곳이 파괴되는 참화를 빚었지만, 이후에 이를 지키겠다는 숭고한 뜻을 지닌 많은 이들이 뜻을 모아 대성당을 복원하고 개축하는 바람에 아직도 바이외를 지키는 주교좌성당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는데, 그 엄청난 높이도 높이지만 거대한 둥근 천장을 올려다보노라면 종교적 신비가 무엇인지 짐작되기도 합니다. 저 멀리 고운 바닷가 모래사장엔 바이킹의 거대한 족적마저 감춰져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내내 이런 아련한 추억에 젖어있기를 희망했습니다. 수없이 오간 길이긴 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도 되찾는 기쁨이 배가하기를 또한 염원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오래된 질문으로부터 저 또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제 글이 단순히 여행지에 관한 기록으로만 남지 않을까 적잖이 불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쓸지를 구상하면서 끊임없이 떠올랐던 풍광들은 그저 단순히 찬란한 것들만이 아니었기에, 저는 주저 없이 글을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스쳐 지나간 길들에서 보았던 풀들 하나하나에게나 이름 모를 잡초들에게조차 생명의 숭고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모처럼 교회의 돌기둥 하나둘씩 제게 커다란 상징으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과 마주했던 것이죠.


저는 그 이야기들을 마침내 글로 옮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글이 성공적으로 완성될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30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마주치고 바라보고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꿈꿨던 상징들이 제게 말을 건네는 신비, 자연과 건축의 광대한 울림을 적어나가고자 그토록 고심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