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담쓰담 글쓰기 'Y 이야기'
Y와 나는 캠퍼스에서 하늘 보는 걸 좋아했다. 우리는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서 보는 파란 하늘, 학교 주변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보는 구름 많은 하늘, 학교 운동장 옆 벤치에 앉아서 뻥튀기 위에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얹어 먹으면서 바라보는 서늘 서늘한 하늘을 모두 좋아했다. 캠퍼스 하늘을 함께 누린 건 두 어달 정도였다. 나는 대학교를 늦게 입학했기 때문에 나보다 선배였던 Y가 먼저 졸업을 했다. 그렇게 Y는 사회인이 되었고,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다. Y는 종종 그날의 ‘날씨’를 내게 물었고, 날이 좋으면 나는 우리가 좋아했던 캠퍼스의 하늘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건 내게 Y가 캠퍼스에는 떠나고 없었지만 가끔씩 찾아와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좋아했던 그 하늘을 함께 보고 있는 거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의 하늘은 늘 ‘맑음’ 일리 없는 날씨였고, 다만 계절이 달랐다.
Y의 시간대는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의 봄을 지나 열매를 향해 달려가는 여름의 계절이었던 반면 나는 아직 겨울을 조금씩 지나고 있었다. 불안함을 재료 삼아 사는 학생신분의 나는 졸업까지 2년이나 남았었고, 군대는 아직 다녀오지 않았으며, 아직 어느 것도 결정된 것 없는 그런 때였다.
Y의 부모님을 만났던 날. 내가 가진 제일 좋은 옷과 어색한 넥타이까지 매고 그 자리에 갔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두 분의 질문에 카페에 비치된 3통의 물통을 모두 비워내며 겨우 답했다. 땀으로 흥건한 내 손을 가만히 Y가 잡아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둘씩 건너야 하는 관계의 징검다리들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현듯 내 안에 불안이 찾아왔지만, Y와 함께하는 시간이 주는 행복감으로 애써 그걸 지우려 했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누가 얼마큼 잘못을 했는지 따질 필요도 없었다. 그냥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Y는 그곳에 조금 더 가까이 있었고 나는 그보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 날 Y에게서 전화도 문자도 아닌 메일이 왔다.
'우리 멈췄으면 해요. 더 이상 연락하기 힘들 것 같아요. 많은 말을 남기지 못해 미안해요...'
너무도 담백한 Y의 메일에 한참 동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소용없는 내 행동들(전화, 문자, 메일)은 우리 사이가 정말로 멈추게 되었음을 다시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Y의 아버님께 메일을 보냈다.
"혹시 허락해 주신다면 Y 하고 마지막 인사라도 해도 될까요?"
간신히 짜낸 지푸라기 같은 희망은 더 큰 절망으로 변해버렸다.
"마지막인데, 인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여전히 내가 있던 캠퍼스 위에 하늘은 새파랗게 떠있었고, 서늘한 가을바람을 느끼면서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들, 운동장 옆 벤치에서 뻥튀기에 아이스크림을 발라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 괜히 맴돌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어떻게 깊이 패어버린 마음을 다독이는지, 어떻게 하면 실패한 나를 스스로 용납해 줄 수 있는지,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몰랐었다. 그리 바쁘지 않은 일상은 오히려 내게 울적한 마음을 선물했고, 그 울적한 마음은 원망으로, 자책으로 쉽게 쉽게 변했다.
나를 사랑해 주던 한 사람이 사라지니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