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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Feb 20. 2023

글감 '커피와 차'

쓰담쓰담 글쓰기 Y 이야기 #3

우리에게 특별한 카페가 있었다. 451 cafe. 카페가 위치한 주소 '451로'를 카페명으로 사용한 곳으로 커피와 함께 수제단팥죽을 파는 카페였다. 그리고 그 카페는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장소이기도 했다. 

451 카페 [출처:네이버]


Y를 향한 내 마음을 완전히 단념하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Y 어머님과의 통화였다. 


"메일을 받고 나서 마음이 어렵지 않니..? 네가 한 번씩 보내는 연락이 Y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 같구나. 연락을 멈춰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다음에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웃는 얼굴로 봤으면 좋겠구나.."


Y에게서 나중에 어디에선가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자는 말조차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올라오는 숱한 질문들과 거절감으로 인한 상처들만이 내 일상과 함께 해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새 나는 뒤늦은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졸업과 동시에 장교로 군복무를 할 계획이었다. 몹시도 추웠던 그 해 겨울을 조금씩 지나가던 2월의 어느 날, 여전히 내 안에 Y를 향한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군입대를 하기 전에 손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달하기로 했다. 편지의 수신자는 Y가 아닌 Y의 부모님으로 했다. 편지에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안부를 여쭈었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 나만큼이나 Y의 부모님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내 좌표들(대학교 졸업, 졸업 후 첫 직장, 장교복무 등)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썼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군입대하기 전에 꼭 만나 뵙고 싶다고 적었다. 우표를 붙여서 편지를 부칠까 하다가 직접 들고 가서 Y가 사는 아파트 우편함에 넣기로 했다. 그래야 더 마음이 담긴 편지가 될 것 같아서였다. 며칠 후에 Y의 아버님에게서 휴대폰 문자로 연락이 왔다. 


"주말, 451 카페에서 점심 이후에 만나기로 하세."


처음 만나 뵙던 그날처럼 내가 가진 제일 좋은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1시간 일찍 카페에 갔다. 기다리는 동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했고, Y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상상하기도 했다. 약속된 시간이 다다르니 이 자리에는 Y의 아버님만 나오셨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두 가지를 물어보셨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Y가 많이 생각이 나나..?"


아버님의 질문에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Y가 자리하고 있음을 담담하게 말씀드렸다. 그렇게 아버님을 만난 지 10분 정도나 되었을까, 아직 다하지 못한 대화를 뒤로한 채 교육청에 급히 서류제출 할 일이 있다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아직 커피잔에는 커피가 남아있는데.. 나는 커피로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 안 중앙 테이블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아버님과의 짧은 대화를 곱씹었다. 많이 긴장했던 탓인지 내 커피잔에 남아있던 커피를 미처 다 마시지 못하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번 주말 Y와 함께 우리 다 같이 여유 있게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재회했다. 멀리서 보이는 Y를 보고 나는 빙긋이 웃었고, Y도 함께 미소 지었다. 


Y가 나중에 알려주었는데, 우편함에 놓인 편지를 먼저 발견한 건 Y의 남동생이었다고 한다. 편지를 건네받자마자 Y는 눈물을 쏟아냈고 그날밤 가족 다 같이 모여서 회의를 열었더랬다. 그 자리에 누가 나갈지, Y만 나갈지, 아니면 Y의 부모님이 나갈지 결국 Y의 아버님만 나가기로 했단다. 내가 쓴 편지의 내용을 보고 남자대 남자로 대화하는 게 오히려 나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설명해 주었다. 남자들의 대화는 보통 짧다지만 그날의 대화는 참으로 여백이 많았었다. 아직도 나는 그날의 커피맛이 생각나지 않는다. 


Y 하고 재회했던 주말을 지나 3월 2일, 나는 군입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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