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담쓰담 글쓰기 '내 엄지 이야기'
오늘은, 내 엄지손가락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나는 특이한 모양의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있다. 뱀 손가락이라고도 한다. 짧고 뭉툭한 것이 발가락 같이 생겨서 어릴 때 친구들로부터 발가락이 12개라고 놀림받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이 엄지손가락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엄마하고 처음 다방에 갔을 적에 특이하게 생긴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감추고 싶어서 커피잔 손잡이를 잡은 집게손가락 밑으로 엄지를 숨겼다고 한다. 어렸을 때 내 엄지손가락은 친구들하고 왜 다르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더 특별한 엄지라고 답해주셨었다. 뭉툭한 엄지손가락으로 옛날 폴더폰의 자판을 누르면 버튼 두 개가 동시에 눌려서 불편한 적도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길고 잘생긴 엄지손가락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저 사람들처럼 잘생긴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싶어서 막 손톱을 열심히 밀어내고 손톱 안쪽의 살도 손톱 마디 쪽으로 보내보곤 하는데 역시나 잘 안 된다. 때로는 엄지손톱을 깎을 때 최대한 이쁜 손톱 모양을 내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모양내서 깎아보지만 역시 그 손톱이 될 뿐이다. (성인이 돼서 알게 된 사실인데 누나도 사실 나랑 똑같은 엄지인데 어렸을 때부터 살을 밀어내서 지금은 안 특이하게 생긴 엄지가 되었다고 했다. 왜 나는 안 알려준 거지?) 그렇게 엄지에 관심을 가지고 다듬고 할 때면 길을 가다가도, TV를 볼 때도, 친구를 만나도 그의 엄지만 보였다. 가장 뻘쭘한 순간이 있는데, 나랑 같은 모양의 엄지손가락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이다. 나랑 비슷하다는 건 단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가 검지 밑으로 엄지를 숨기고 약간의 주먹을 쥐고 있으면 거의 100% 나랑 비슷한 동족이다. 사실 서로 알아차렸지만 각자 숨길 때도 있고, '어? 나랑 비슷한 손가락이네?'하고 한마디 던지고 나서 서로 뻘쭘하게 있을 때도 있다. 아직은 한 번도 서로가 가진 엄지 스토리를 나눠본 적은 없다. 이 글을 쓰다가 보니 나중에는 한번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엄지 이야기를 나눠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같은 동족이니까.
그렇게 엄지를 바라보다가 '내가 이 엄지손가락을 부끄러워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이 흐른다. 이것도 손가락이고 손톱이 있고, 때에 따라 손톱도 잘 자라는데 왜 나는 이 손가락을 부끄러워하는 거지? 조금 특이하게 생겨서일까? 그럼 왜 특이하다고 여겨지는 걸까? 그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 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 내 손가락은 오히려 평범해지고 좀 길고 이쁘게 생긴 손가락은 특이하다고 평가받는 날이 올까? 나는 내 엄지손가락을 좋아할 수 있을까?
만약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엄지가 특이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내 손가락이 막 엄청 소중하게 여겨질까? 괜히 내 엄지가 좋아서 한 번 더 쳐다보고, 엄지를 들고 자랑하듯이 다녀보고 할까?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평범하게 생긴 엄지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엄지를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는 건 아니니까. 손가락은 그냥 손가락이니까. 손가락이 특이하게 생겨서 숨기는 것도 이상하고, 반대로 뭉툭한 엄지가 주는 장점들을 나열하면서 애써 좋아해 보려고 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손가락은 손가락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억지로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억지스러운 것도 없는 것 같다. 때로는 싫어하지도 말고 좋아하는 척도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나을 때도 있다. 그게 내 엄지를 존중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