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담쓰담 글쓰기 '음식'
오늘은 음식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전주 음식이다. 내 고향은 전주다. 맛의 고장 전주. 들어가기에 앞서 전주 사람들은 비빔밥 잘 안 먹는다. 사실 나는 전주를 떠나온 지 10년도 더 넘었다. 그럼에도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것은 전주가 가진 또 다른 매력 때문이다. 전주는 몇 년이 지나 다시 가도 늘 있던 자리에 그 음식점이 있고, 그때 계시던 사장님이 그대로 있다. 추억을 가지고 전주를 떠나온 사람에게는 정말 선물과도 같은 일이다.
'왱이집'
콩나물 국밥을 파는 곳이다. 왱이집 안으로 들어가면 대문짝만 하게 쓰인 문구가 손님을 반긴다. '우리 가게는 24시간 육수가 끓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왱이집을 검색해 보니 바깥 간판에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캬! 왱이집의 콩나물 국밥을 먹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언제든 진한 육수로 맛을 내어 한 그릇 내어줄 수 있다는 저 당찬 문구를 보라. 주문을 마치면 국밥 한 그릇하고 섞박지 한 접시 그리고 콩나물과 오징어가 양은 냄비에 담겨서 나온다. 수란이라고 해서 거의 익지 않은 계란도 한 그릇 나오는데 이것이 참 별미다. 펄펄 끓는 콩나물 국밥의 국물을 세 숟가락정도 수란에 넣고 김가루를 뿌린 후에 잘 저어서 먹으면 애피타이저로 그만이다. 콩나물 국밥의 간은 새우 젓갈로 한다. 보글보글 끓는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나는 밤이다.
'조점례 남문 피순대'
순대국밥과 피순대를 파는 곳이다. 전주에 남부시장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수십 년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과 같은 곳이다. 상호를 보면 알 수 있듯, 조점례 할머니가 차린 가게이다. 전주는 순대를 초장에 찍어 먹는다. 뚝배기에 담겨 나온 순대국밥은 다진 양념과 새우젓갈로 간을 하고 국밥, 순대, 초장을 얹어서 한 숟갈씩 먹으면 정말 최고의 조합이다. 조점례 남문 피순대에 가면 아침에도 줄을 서서 먹는 진풍경을 볼 수가 있는데,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카메라를 들고 있는 걸로 봐서 여행객들이다. 아! 순대국밥에는 부추를 양껏 넣어야 한다. 이곳에서 순대국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면 덤으로 시장구경 하면서 검은 봉지에 담아주는 간식거리들 오물오물 먹으며 돌아다닐 수가 있다. 조점례 할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상추튀김'
전주에는 상추튀김이 있다. 상추를 튀긴 것이 아니고 튀김을 상추에 싸 먹는 건데 튀김 상추쌈이 생각보다 맛있다. 튀김옷이 주는 약간 기름진 느끼함을 상추가 사악 잡아준다고나 할까. 튀김을 간장에 찍은 다음 상추에 담아 한 입 먹는다. 물론 튀김에는 떡볶이도 어울리고 순대가 빠지면 떡-튀-순이 안 되니 그것들도 함께 시켜서 먹어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하고 돈을 모아서 상추튀김 사 먹으러 갔던 게 갑자기 떠오른다. 애들한테 전화해서 상추튀김 먹으러 가자고 했던 그때가 참 좋았다.
'진미집'
진미집의 메뉴는 단 세 가지. 콩국수와 메밀소바 그리고 냉면이다. 나는 진미집에 가면 망설임 없이 콩국수를 고른다. 콩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흑설탕파와 소금파 두 부류로 나뉜다. 나는 단연 흑설탕 파다. 양은그릇에 진한 콩국물이 담긴 콩국수가 나오면 설탕을 세 숟가락 정도 흩뿌리고 휘리릭 저어서 한 입 가득 먹는다. 콩국물과 단맛이 어우러져서 일품이다. 메밀면을 다 먹고 난 후에 그릇에 남아있는 달달한 콩국물까지 끝내고 나면 한 여름 더위도 잠시 안녕이다.
어렸을 때 더운 여름날, 주말이 되어 진미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주차 때문에 늘 엄마하고 누나와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았었다. 줄을 서서 기다릴 때도 있고, 어쩌다 바로 자리가 나서 앉을 때도 있었다.
옛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뭐 그리 설탕을 많이 넣느냐는 엄마의 사랑스러운 핀잔이 떠오르고, 나와는 달리 꼭 메밀소바를 주문했었던 그때의 누나도, 와이셔츠가 땀으로 다 젖은 채로 주차를 마치고 오셔서는 후루룩 콩국수를 말아 드시던 그때의 아빠도 생각이 난다.
'베테랑 칼국수'
전주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여기를 빼놓고 논할 수가 없다. 베테랑 칼국수. 원래 가지고 있던 칼국수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줄 수 있는 곳이다. 이 칼국수에는 들깨가루와 김가루 그리고 고춧가루가 넉넉히 뿌려져서 나온다. 베테랑 칼국수 맛은 특별히 호불호가 강한 음식인데, 너무 맛있어서 사생팬이 될 수도 있고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이 특이한 칼국수 맛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베테랑 칼국수를 한 그릇 먹고 나서는 그 옆에 한옥마을 구경도 하고, 조금 더 걸어가서 전주의 명소 전동성당(지어지지 100년도 넘은 성당)을 방문할 수도 있다.
오늘의 글감 덕분에 전주 맛집탐방을 하게 되고, 맛집에 얽혀있는 옛 기억들이 주는 아련함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 해지면서 이 밤에 야식이 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