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돌아보기(3월 마지막 주)
'적응'
아비(스스로를 부르는 애칭)는 험난한 유치원적응기를 보내고 있다. 기관에 다니지 않고 엄마, 누나하고만 작은 사회를 이루어 살다가 난생처음으로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 저녁에 잘 놀다가도 갑자기 다음날 아침 유치원에 갈 생각이 떠오르면 가기 싫다며 울부짖는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매달려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란다. 엄마는 울며 힘들어하는 아이를 가만히 기다려주기도 하고, 지난날 스스로 성취했던 작은 성공들을 일깨워줘 보고, 잘할 수 있다며 아비가 이해할 수 있는 멋진 단어들로 열심히 격려해 본다. 아비는 유치원 문 앞에서까지 훌쩍이다가 교실로 들어간다. 나중에 선생님 통해서 들어보면, 막상 교실에 가서는 일과에 따라 자기만의 속도로 잘 해내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울며 매달릴 때는 이렇게 힘들어하는 데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게 맞는 건가 싶다가도, 아이 스스로 해내는 내면의 근육들을 키워주고 싶어서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어본다. 어떨 때는 엄마, 아빠하고 잘 떨어져서 유치원생활도 금세 적응해 가는 다른 아이들이 괜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에 대한 아비엄마의 궁금증은 스스로의 양육방식을 탓하게 되는 자책으로 이어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린 아비가 다른 아이들보다 수줍음이 많고, 일상의 여러 변화들을 다소 천천히 받아들이는 게 좋아서, 조금 더 많이 기다려주면 되는 아이라고 아비가 가진 마음의 결들을 이해하려고 애써본다. 오늘 아침에는 여전히 그렇게도 울며 등원하지만, 유치원 하루일과를 해내고 나서는 아주 신나게 봄이 주는 오후햇살을 누리는 아이를 보면서 조금씩 마음속 근육이 생겨나고 있음을 믿게 된다.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나는 매주 수요일 아침 한 권의 그림책을 만나고 있다.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글과 그림 사이의 여백이 참 좋고, 그 여백은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풍부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만나게 해 준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말을 더듬었던 저자(시인)의 어린 시절에 자신을 묵묵히 보듬어주었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쓴 자전적 그림책이다.
말을 더듬는 이 아이는 머리맡에 있는 물건들(얼룩말 인형, 자동차 등)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다. 아이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대신 듣는 감각이 더 예민하게 발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는 다시 소리 없이 고요한 아침을 보내며, 학교 갈 준비를 한다. 학교에서 말하기 수업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교실에서의 기대가 모두 사라져 버린 듯 어둡기만 한 아이가 입은 옷이 아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멀찍이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버지는 응원 섞인 몇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다.
학교를 마친 아들을 데리러 온 아버지는 아이의 얼굴에서 학교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차릴 수가 있다. 학교에서 혹시 발표 수업이라도 있었는지, 그 수업에서 말을 더듬어서 부끄러웠는지, 친구들의 시선은 어땠는지 아버지는 묻고 싶은 것들이 많을 테지만 잠시 강가에 들렀다 가자는 말로 대신한다. 한껏 움츠려든 아들의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이와 아버지는 강가를 걷는다. 아버지는 말을 좀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어떠한 위로의 말도 아껴둔 채 아들의 조금 뒤에서 가만히 걷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 아빠와 단둘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하지만 발표 시간이 자꾸만 떠올라요.
그 많은 눈이 내 입술이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걸 지켜보았어요.
그 많은 입이 키득거리며 나를 비웃었어요.
조용한 강가를 걷다 보니 한껏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지만 이내 학교에서의 일들이 다시 떠오르고 만다.
아빠는 내가 슬퍼하는 걸 보고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어요.
그러고는 강물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나는 강물을 보았어요.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릴 거예요.
잔잔하게 흐르다 가다도 때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물거품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아이는 강물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유려하지 않지만 자기 흐름을 이어가는 강물에게서 아이는 힘을 얻는다. 입안에 나무뿌리가 자라나 소리를 가로막는 것처럼 말을 잘하지 못할 때마다 당당히 흘러가는 강물을 떠올리기로 한다. 아이는 다만 소용돌이치며 말하고 물거품을 일으키며 이야기할 때가 있을 뿐 여전히 자기 마음에 수많은 말들이 여전히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친구'
연년생 남매에게 친구가 생겼다. 뒤늦게 하원하고 나오는 이 아이는 멀리서 남매를 발견하고는 달려와 안긴다. 사랑이 많은 아이는 먼저 손을 잡고 놀러 가자고 한다. 아이들도 아이와의 시간이 좋은 가보다.
'아빠 나○이 집에 우리도 놀러 가고 우리 집에도 오면 좋겠어!'
'아빠! 나○이 엄마가 우리 집에 이사 왔으면 좋겠어'
남매는 이 아이가 자기들 마음에 들어와 있음을 특별한 표현으로 알려준다. 부끄러움이 많은 남매가 집으로 누구를 초대하고 싶다고 말한 게 처음이라 놀랍기도 하고, 이렇게 친구라는 걸 알아가는 것 같아서 감사하기도 하다. 유치원 생활을 하며 교실에서 함께 지내는 다른 아이들의 이름은 여러 번 듣기는 했었지만 그들이 남매에게 친구는 아니었었다. 아이들에게 친구란,
남매만이 알고 있는 소중한 공간인 자기 집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 친구가 지내는 공간이 궁금해져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고, 내가 아는 재미난 놀이를 함께 즐기고 싶은 사람,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엄마가 싸준 도시락에서 내 간식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
한창 놀다가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괜히 조금 더 놀고 싶은 사람,
색종이로 만든 바구니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
이다.
나중에 남매의 친구가 처음으로 집에 놀러 올 때 어떤 간식으로 대접할지 미리 고민하는 것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