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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Apr 11. 2023

벚꽃을 담다

우리 아이는 과잉애착일까?

엄마하고 힘들게 떨어지고서 벚꽃이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불균형 시기'와 '안정기'가 있다고 한다. 6세가 겪는 불균형 시기란 몸이 커지면서, 보고 듣는 것들이 많아지며 새로운 감정들을 배우게 되는데 아직 마음의 근육이 그걸 받아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잘만 지내던 아이가 갑자기 이유 모를 짜증을 내거나,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 과하게 속상해하고, 자기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불균형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양육자인 내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아이가 보이는 불균형의 반응들(짜증, 울음, 인상 쓰기)에 쉽게 흔들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아이도 나도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히게 되어, 나는 아이를 제대로 돕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아이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기분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기를 구해줄 사람, 불안한 자기 마음을 받아줄 사람을 찾는데 그 존재가 바로 '엄마'다. 


불균형 시기를 겪는 하미(큰 아이를 부르는 애칭)가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엄마하고 떨어지는 걸 유독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하미는 일하러 가야 하는 엄마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달래주는 말을 해가며 아이를 안고 가려고 하면 더 큰 난리가 난다. 엄마는 아이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려고 하지만, 폭풍처럼 올라온 아이의 감정은 쉽게 가라앉혀지지 않고 아까운 시간만 점점 흐를 뿐이다. 정해진 일과가 주는 압박감 때문에 엄마도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기가 힘들어진다. 

벚꽃이 잔뜩 피어있던 어느 날, 유치원을 마치고 나온 하미는 그날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봄이 주는 따스한 오후 햇살도, 햇살이 만든 벚꽃나무들도, 봄이 주는 어떤 선물도 아이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어렵게 엄마하고 떨어진 아이는 울먹이면서 자기 카메라로 벚꽃 사진을 하나 둘 찍었다. 비워진 마음을 벚꽃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하미는 유치원을 다니기 전에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낸 편이다. 우린 하미가 엄마하고 보내온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애착이 형성되어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하미가 보이는 반응들은 그 시간이 오히려 아이를 과잉애착으로 만든 건 아닌지 괜히 염려하게 된다. 


유치원에 등원할 때에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집으로 나서면서부터 조금씩 울음이 나기 시작하고, 유치원 현관에서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지 못한다. 원장선생님하고 아침인사를 하면서 씩씩하게 들어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치원에 처음 가는 것도 아닌데, 7살이 되어 가는 유치원은 아이에게 또 새로운 곳이 된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자기 눈에 들어온 변화들을 놓치지 않고 나에게 물어본다. 

"아빠, 그으런데.. 종일반 선생님 원래 안경을 썼는데 왜 오늘은 안 쓴 거야..?"

나중에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들어보면, 막상 교실에 들어가서는 선생님께 오롯이 집중하면서 유치원 생활을 잘해나간다고 한다. 


하미가 울부짖는 외침은 어쩌면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그 감정에서 자신을 구해달라는 호소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커다란 감정덩어리가 자기에게 찾아와서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 있을 때, 아빠로서 나는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그 감정이 아이에게서 끝이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아빠! 이상한 감정이 나한테 왔어! 뭔지 몰라서 눈물이 나.'

'하미야. 너에게 지금 너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찾아왔나 보구나! 아빠가 거기서 꺼내줄게!'


이렇게 관점을 달리 생각해 보니, 아이의 짜증과 울부짖음이 더 이상 힘들지가 않고, 아이와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이의 내면을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감각적으로 예민한 아이의 등원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데서 오는 여러 정보들이 아직 소화되지 않은 채로 내면에 남아 있어서 그다음 행동을 하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컴컴한 밤 동안 엄마하고 한 침대에 있다가 환한 아침이 되어 유치원에 가는 것,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것, 아직은 낯선 교실에 가는 것, 종일반 선생님이 안경을 쓰다가 안 쓴 그날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 것 모두 아이에게는 소화가 필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더 기다려주기로 해본다. 다른 아이들보다 느린 게 아니라 조금은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아이가 가진 마음의 결을 조금 더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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