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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May 27. 2023

건들지 마

여러 욕구들

"하이미 꺼야! 하지 마!"


하이미에게서 가끔 듣는 말이다. 하이미는 주로 동생이 자기 물건을 만지려고 할 때나, 자기 의자를 앉으려고 할 때, 자기가 하고 있는 교구를 같이 하려고 시도할 때 이 말을 내뱉는다. 자기 물건을 소중히 하는 모습으로 생각될 때도 있지만, 지나치게 불편해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나는 배려하는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타일러 보기도 한다. 


"하임아. 하성이가 물어보지 않고 만져서 속상했어? 다음에는 이렇게 말해볼까? 하성아. 조금 기다려줄래?"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그때마다 아빠에게서 비슷한 말들을 들어왔으니 하이미도 곧잘 내 말뜻을 이해하고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배려로 물건을 빌려주거나 만지게 해 준다. 동생과 늘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집착과 배려 사이에서 갈등하는 하이미의 모습은 그 이후로도 자주 보게 된다. 다른 측면으로 타일러주면 좋을 것 같아서 이번엔 엄마가 나서본다. 


"하임아. 하임이가 스스로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정말 특별한 마음인데, 물건보다 더 소중한 건 사람이야. 하임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제일 소중한 거야. 알겠지?"


하이미는 엄마 말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이미는 하성이와는 달리 간식을 주면 곧바로 먹지 않고 자기 보관함에 차곡차곡 모아놓고는 나중에 꺼내먹는 아이이다. 엄마아빠가 주는 크고 작은 선물들이나, 다른 사람이 준 선물들도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자기 보관함에 쌓아놓는다. 미술놀이 하면서 색종이로 만든 것들도 모두 모아둔다. 유아기 때에는 지나치게 자기 물건에 대한 집착이 심한 특정시기가 있다고 한다. 근데하이미에게는 그 특정시기가 지나가지 않고 계속되는 걸 보면 분명 단순한 집착이나 배려하지 않는 것과는 결이 다른 마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난 주말 교회에서 아직은 흐릿했던 그 마음이 조금은 선명해지는 일이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교회 옆에 딸린 작은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보고 집에 가곤 한다. 그날은 도서관에 우리 말고도 하영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하영이는 초등학생 언니로 우리 가족과 친하게 지내는 다른 가족의 딸이었다. 친하게 지내다 보니 나하고도 허물없이 장난치고 노는데, 책을 보던 하영이가 내 어깨 위로 무등을 탔다. 그 모습을 보더니 하임이도 질세라 바로 내 어깨에 무등을 탔고, 양 팔로 내 목을 꼭 잡고 가만히 있었다. 하이미 모습은 하영이 언니가 아빠 어깨에 무등 타는 게 재밌어 보여서 자기도 해보려는 그런 게 아니었다. 내 목을 꼭 잡고 있는 하이미 양팔에서 마치 아빠를 꼭 잡고 뺏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날 집으로 가는 길에 도서관에서의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인간에게는 수면욕, 성욕, 성취욕, 식욕 등 여러 욕구들이 있다. 하이미는 인간이 가진 여러 욕구들 중 소유욕이 특별히 강한 사람으로 태어난 게 아닐까. 나는 비로소 하이미가 그간 왜 그런 행동들을 했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아빠에게 배운 '배려'는 머리로는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는데 막상 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이다. 자기 손에 들어온 물건들이 자기가 원하는 상태로 있어야 마음이 편안한 아이이고,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물건들은 보관함에 넣어두어야 안정감을 누리는 아이인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아이에게 단순히 배려를 알려주고, 왜 배려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기전에 하이미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가지고 온 마음들 중 소유욕이라는 마음에 대해서 먼저 알려주고 공감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본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하이미에게 아이가 가진 특별한 마음과 배려 사이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말을 해줄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이미와 동생의 그림 같은 대화가 들려왔다. 


             "하임: 아비(동생)가 주는 선물은 다 좋아. 아비도 누나가 주는 선물 다 좋아?

               동생: 응.

               하임: 아비가 소리 질러도 누나는 하성이를 사랑해. 

               동생: 누나가 소리 질러도 아비는 누나를 사랑해.

               하임: 누나는 언제나 아비를 사랑해.

               동생: 아비도."


내 염려와는 달리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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