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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May 21. 2023

긍게 글지

'그러니까 그렇지'의 전라도 사투리

# 긍게 글지(그러니까 그렇지의 전라도 사투리)

5월의 찬란한 아침 햇살이 참 좋았던 날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 등원하는 길에 햇볕샤워를 하면 좋을 것 같아 킥보드를 타고 가기로 했다. 하이미는 킥보드에 매달려있는 가방에서 껌을 꺼냈고,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뱉을 때 쓰겠다면서 한 손으로 껌종이를 가진 채로 운전했다.


  '한 손 운전을 한다고? 아빠한테 배운 건가..?'


늘 그렇듯 불안한 예감은 틀. 린. 적. 이 없다. 하이미가 넘어지고 말았다. 한 손에 껌종이를 가지고 불안정하게 킥보드를 탔던 게 역시 원인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넘어져서 울 때 크게 다치지 않은 상황이라면 2-3초 정도 기다렸다가 달려간다. 놀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목적도 있고,  호들갑스러운 내 반응이 오히려 아이의 놀란 마음을 더 커다랗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날도 어느 정도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이를 안아주었다. 안 그래도 아침에는 저기압인 아이가, 여전히 긴장되는 유치원 등원을 하려다 넘어지고 말았으니 울음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왜 아빠말을 안 듣고, 껌봉지 가지고 타다가 넘어지고 그러냐..

                                                   긍게 글지..'


나는 순간 유치원 등원시간에 또 늦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덥게만 느껴지는 찬란한 5월의 햇살이, 그 불안한 마음은 사실 가면을 쓴 짜증이라는 걸 증명해 주었다. 나는 아빠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타다가 넘어지게 된 아이를 나무라고 싶었다. 물론, 입을 꾹 다물어서 나무라는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내 품에 안겨 우는 아이를 보면서 두 번째 마음이 들었다.


                           '그거 넘어졌다고 이렇게 울다니? 그렇게 울 정도로 넘어진 건 아닌데..'


나는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우는 아이의 등을 적당히 습관처럼 토닥여주었다. 사실 내 말을 듣지 않은 것 때문에 아이에게 삐졌던 걸까? 자꾸만 마음이 안 좋게만 흘러갔다. 그래도 다행히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아이를 향한 반응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한 것 같은 나름의 어투로 아직 우는 아이에게 말했다.


                 "하임아. 손에 뭐 들고 킥보드 타면 안 되겠다. 그치? 다음에는 손에 뭐 들고 타지 말자~!"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의 여부는 상관없었다. 다음에 아이가 또 넘어지면 안 되니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거창한 생각 덕분에 드디어 첫 말을 뱉었다. 그건 아이의 아픔을 공감해 주는 말도 아니고, 실수해서 부끄러운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말도 아니었다. 사실 그 말은 손에 무얼 들고 탔기 때문에 넘어진 거라고 아이를 나무라는 말이었고, 그 상황을 아이의 탓으로 돌리는 말이었다. 어렵사리 아이가 등원을 하고 나서야 다시 그 상황에서 아이가 진정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지 혼자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는 넘어져서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싶으니까 안아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자기가 실수했을 때, 왜 넘어졌는 지를 알려주는 아빠가 아니라 실수해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는 아빠의 모습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실수를 용납해 주는 아빠의 모습에서 실수를 딛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또 골똘히 생각해 보니 실수한 아이에게 해주는 내 말들 중에 원인을 찾아 알려주는 말들이 꽤나 많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 말들 뒤에는 '실수한 건 네 탓이야. 그러니 아빠는 잘못이 없어.'라는 비겁한 내 마음들이 숨어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럼 그 마음 뒤에는 무엇이 숨어있던 걸까? 어떤 두려움이 내 안에 숨어있었던 걸까? 아직까지 선명하게 무얼 알게 된 것은 없었다. 다만, 어렸을 적 실수를 해버린 나에게 엄마가 해주던 말이 불현듯 생각이 났고, 이젠 내가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해주기로 했다.


                                                "괜찮아..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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