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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May 09. 2023

아빠 진정 좀 할게

아이가 보는 세상



# 아빠 진정 좀 할게

하이미가 교회에서 혼자 다니는 친구를 보고 신기했는지 어떻게 혼자 다닐 수 있느냐며 물어왔다. 늘 엄마 아빠와 동행하는 하이미에게는 혼자 이곳저곳을 다니는 또래 친구의 모습이 신기하게 보일 법도 했다. 그 친구는 교회 근처에서 살았고 평일이나 주말에 언제든 교회를 놀이터 삼아 노는 아이였으니 혼자 있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언제쯤 하이미도 자기가 사는 동네를 혼자서 누빌까 생각하다가 하이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의담이는 혼자 있을 수가 있어. 왜 그러냐면..."


내가 다른 생각을 하던 중 답을 해서인지 말을 끝마치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아빠의 말이 이어지지 않으니 답답했던 아이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나는


"하임아. 아빠 대답이 오래 걸린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아빠 놀랬어. 아빠 마음이 진정이 되려면 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잠시 진정 좀 시킬게."


자기가 낸 큰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리고,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 하임이가 알았으면 했다. 특별히 자기의 행동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불편하다면 다른 사람의 그 불편한 마음을 아이가 공감하기 바랐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빠 미안해.. 소리 질러서.."


나지막이 들리는 아이의 말을 듣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아이는 자기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걸 아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안도의 한숨에는 나도 아이에게 큰 소리(짜증)로 잘못을 알려주지 않아 다행스러운 내 마음도 섞여 있었다. 



# 종이접기

아이가 원하는 대로 색종이를 접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과 손끝의 힘 그리고 공간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 종이를 어떻게 접어야 다음 모양이 되는지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미가 며칠 전부터 색종이 접기에 푹 빠져있다. 유튜브에 업로드되어있는 여러 종이접기 영상들 중에서 자기가 접고 싶은 예쁜 모양의 색종이 접기 영상을 선택하고 영상 속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접기 시작한다. 하이미는 느리지만 정확하게 접으려고 하고, 이해가 안 된 부분이 있으면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다가 접는다. 이때, 나는 아이 옆에서 같이 접거나 아이가 접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된다. 이 시간은 아이가 스스로 주도해 가는 종이접기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색종이 접기를 할 때면 처음 색종이의 틀을 잡아 접는 쉬운 부분에서는 잘 따라오다가 조금 어려줘 지면 이내 아빠의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아빠가 주도하는 종이 접기가 되곤 했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종이 접기가 주는 성취감을 그다지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활동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요즘 유치원에서 스스로 접을 수 있는 종이접기(하트, 비행기 등)를 배우면서 종이 접기의 매력을 느끼고 있고, 집에 와서도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종이접기를 한다. 


"아빠 종이 접기가 너무 재미있어. 종이접기 할 때는 배도 안 고프고, 졸리지도 않아."


아이는 한참 동안의 종이접기 활동을 끝내고 저녁밥을 먹다가 '몰입'이 주는 느낌을 멋지게 표현한다. 아이의 몰입은 종이 접기에 깊이 빠져들어서 배도 고프지 않고 졸리지도 않은 그 느낌이고, 오랜 시간 색종이와 아이 그리고 종이접기 설명만이 존재하는 그 상태이다. 아이의 몰입은 멀찍이서 집중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을 덤으로 선물해 준다. 



# 물고기와 어항의 값

하이미는 어린이날에 갖고 싶은 선물로 물고기를 이야기해 왔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다른 선물들보다 꼭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 물고기를 파는 수족관이 꼭 있었고, 걷다가 그 앞에 멈춰서 물고기들을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요새는 물고기를 파는 수족관을 찾기가 힘들어졌고, 길 가다 보이는 어항은 횟집 앞에 있는 커다랗고 파란 그것이었다.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수족관이 있었다. 물고기들이 잔뜩 있는 수족관에 가는 게 나도 참 오래간만이라 괜히 설레는 마음으로 향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은 나와 아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크기도 다양하고, 생김새도 각기 다른 물고기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아이들은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물고기를, 아내와 나는 적당한 크기의 어항을 골랐다. 사장님은 물고기에 대한 다른 설명들보다 앞서 어항의 가격대를 설명해 주셨다. 물고기를 빼고 어항과 어항 속 수초와 어항을 더 잘 보이게 해주는 조명 그리고 어항 속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필터까지 다 합쳐서 15만 원이었다. 가격대에 놀란 나는 물고기와 어항만을 따로 구입해서 가져가겠다고 하니 그러려면 일주일을 또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건 어항 속에서 물고기가 살 수 있는 물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데려갈 물고기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 앞에서 조금 더 기다리자고 차마 말할 수 없던 나는 값을 지불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물고기의 이름을 지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까운 마음이 조금 달래졌지만 내가 과연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날 밤, 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내 마음속 의문을 완전히 지우고도 남았다. 오늘 내가 지불한 값은 물고기와 어항 그리고 기타 물품의 가격이었고, 그 외에 숨어있는 값이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아이에게 물고기 선물을 해줄 수 있는 기쁨의 값, 아이가 직접 수족관에 가서 집으로 데려갈 물고기를 골라보는 경험의 값, 아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믿음의 값, 앞으로 아이와 물고기가 만들어갈 이야기의 값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빨간 물고기 두 마리, 파아란 물고기 두 마리가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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