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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Jan 27. 2023

실수

응가가 나와버렸어!

4살 하성이는 스스로 배변 활동을 할 줄 아는 녀석이다. 물론 응가를 한 후에는 닦아줘야 한다.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가끔 소변을 참다가 바지가 젖어버릴 때가 있긴 하지만, 변기에 앉아서 응가는 곧잘 해왔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바지에 응가 실수를 했다. 처음 몇 번의 실수야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 내며 하성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놀 때 쉬를 참는 것처럼 응가를 참다가 해버린 거겠지.’

‘응가하러 가기가 너무 멀어서 그만 실수한 거겠지.’

응가실수를 해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데 점차 응가 실수가 잦아지다 보니, 공감하려는 내 생각은 하성이의 행동을 판단하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왜 변기에 앉아서 하지 못 하는 거지?’

‘응가가 마려우려고 하면 바로 변기에 가서 앉아야지.’

‘조금씩 응가를 하는 게 아니라 한번 변기에 앉았을 때 다 눠야지.’

실수를 짚어주고 싶었고, 다음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싶어졌다. 거기엔 공감보다는 판단이 더 앞섰다. 이때까지도 다행히 판단은 속으로만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말을 내뱉기 직전에 듣는 하성이 말 때문이었다.


“아빠! 괜찮아~해봐. 괜찮다고 말해봐!”


앞서 실수했을 때 그저 수용해 주었던 아빠를 떠올리고 그때처럼 용납받고 싶었나 보다. 사실 판단하는 내 시선에는 유아기 배변 퇴행에 대한 염려보다 뒤처리를 감당하는 내 수고로움과 귀찮음이 더 컸다. 응가가 나온 상태에서 바지하고 팬티를 벗기다가 응가가 온 다리에 묻을까 봐 어렵고, 응가가 잔뜩 묻은 바지를 빨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판단은 속으로만 했고 겉으로는 다음에 잘해보자며 담담하게 말했으니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여전히 내 시선은 응가와 응가가 묻은 바지에만 향해있었다. 어떻게 하면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지에만 집중했다.      

또다시 응가 실수를 하게 된 하성이 앞에서 이번엔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자기도 알아 괜히 멋쩍게 웃고 있는 아이 앞에서 말이다. 나는 내 품에 안겨 화장실로 향하는 아이에게서 엄마하고 누나한테 말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들었고, 더 참아내지 못하고 표현해 버린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그래. 하성아. 실수해서 너도 부끄럽구나. 조그맣지만 어엿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누나하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지 않구나.’


조용히 도와주면서 실수한 뒤에 외쳤던 하성이 말이 다시 떠올랐다.

“아빠~바지에 응가가 나왔어”

‘그랬구나. 하성아. 네가 바지에 응가를 한 게 아니고, 응가가 나와버렸구나.’

자기가 속해있는 가족공동체에서 부끄러운 걸 감추고 싶은 아이의 마음과 자기도 모르게 실수해 버려 당황스러운 마음마저 느껴졌다.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니, 응가가 묻은 엉덩이를 닦아주던 화장실에서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하성이의 시선은 응가를 바라보는 내 표정에 가 있고, 응가를 닦아주는 내 손길에, 빨래하는 내 몸짓에 가 있었다는 것은 뒤늦게야 깨달았다. 처음 실수했을 때 괜찮다고 말해주었던 아빠의 말과 용납해 주었던 표정, 닦아줄 때의 부드러운 손길이 모두 하성이를 향한 말들이었다. 변기에 앉아서 응가를 해야 하는 걸 잘 아는 데도 실수한 것처럼,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올바른지 알면서도 나는 실수했다. 한숨을 쉬었던 응가 이후에도 아이의 실수는 계속 이어졌고, 그때마다 하성이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어쩌면 하성이가 자신을 판단했던 아빠를 용납해 준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한숨을 쉬어버린 아빠의 실수를 금세 잊고 다음에는 더 잘 반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던 것일까.


아직까지 실수한 것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다만, 응가가 나와버려 도움을 요청한 하성이에게 괜찮다는 아빠의 음성과 용납해 주는 표정과 부드러운 손길로 ‘말’해 주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나하고 엄마에게 비밀로 하는 것도 잊지 않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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