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v Jan 27. 2023

기다려주는 일

아이가 요구할 때와 기다림을 알려주어야 할 때


주말이 되면 아이들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줄지 늘 즐거운 고민을 한다. 이제 곧 유치원 방학이 시작된다. 3주 동안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방학 기간은 오롯이 엄마하고 아빠가 그 시간을 아이와 함께한다. 한편으로 도전이기도 하고, 또 아이와 함께할 기회이기도 하다.    

  

교회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방학 대비 새로운 교구로 채워 줄 물건을 사러 다이소로 향했다. 아빠 엄마에게는 값이 저렴하고 가성비가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한 곳이 다이소였고,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물건들이 왕창 있는 곳, 문구점과는 또 다른 장난감들과 인형, 필기류가 있는 곳이 다이소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이소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오래간만에 갔기 때문에, 잔뜩 기대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사고 싶은 물건을 하나씩 사도록 했다. 꼭 장난감이 아니어도 된다고 일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 살 둘째 아이는 역시나 포크레인을 집어 들었다. 첫째는 신중한 성격이라 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을 때때로 어려워하고 시간도 제법 걸린다. 오래 걸릴 누나를 기다리는 게 힘이 들 것 같아, 둘째가 집어 든 포크레인을 미리 계산하고 가지고 놀도록 해주었다. 손에 쥐어보고, 버튼을 눌러서 소리도 내보고 이리저리 놀다 보니, 문득 친할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신다고 약속한 커다란 소방차가 생각이 났나 보다. 할머니 하고 전화할 때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 커다란 소방차 이야기를 늘 해왔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는 기대와 기다림이 있었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그 소방차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지금 하고 싶다고 찡찡대기 시작했다. 선물을 크리스마스 때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든 아들은, 당장 가지고 싶은 걸 기다려야 하는 감정이 잘 조절이 안 되어 울음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해결해 달라고 외쳐댔다. 동시에 나는 아이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이가 알아듣기를 바라면서 내 딴에는 차분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기다리는 게 힘들지’라고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 주다가,

“기다리면, 받을 수 있는 거야.”

“떼쓴다고 해결되지 않아.”

“기다리기 힘들면 다른 자동차를 가지고 놀면 되는 거야.”

라며 나름의 질서를 주는 말들도 덧붙였다. 아이를 향해 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러 말들을 해주었지만 역시나 감정 조절이 안 되고 그때부터 연신 안아달라고 했다. 그렇게 다이소에서도, 다이소에서 나와서도 뒤죽박죽이 된 자기감정을 통제하는 게 어려워 보였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감정을 공감해 주며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바랐을까? 아니면 칭얼대는 아이가 그저 멈추고 그 상황이 단지 빨리 끝나기를 바랐을까. 아이에게 향했던 차분한 내 말들에는 어떤 감정이 실려있었을까. 아이도 나도 잠시 멈추기로 했다. 아이가 이해하길 바라는 내 말들을 접어두고 그냥 안아 주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의 등을 토닥이면서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 상황을 해결해 주기보다, 감정을 기다려주는 걸 택했다. 20분이 흘렀을까,

“아빠, 아비 이제 진정 됐어!”(아비는 둘째 아이가 스스로를 부르는 애칭이다.)


이제 진정됐다는 아들의 음성이 평온하게 들렸다. 아빠에게 내려 달라고 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차놀이를 시작했다. 자기도 주체하기 힘든 감정들이 마구 생겨날 때, 아이는 그 감정들이 자기를 넘보는 걸 멈추도록 하는 게 아직 미숙했다.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소방차를 기다리는 걸 연습해야 했다. 그런데 어쩌면 기다리는 일은 나에게도 필요했을까. 아이의 감정을 기다리고, 숱하게 올라오는 아이를 향한 내 말들을 아직 기다리고, 마구 올라오는 감정들이 가지런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연습이 나에게도 필요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