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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May 02. 2023

성격

나는 아동기 때 ADHD 성향이 있었을까?

유치원 때의 일이었다. 나는 다소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넘치는 에너지를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였었나보다. 한 번은 엄마가 학부모 상담을 위해 유치원에 방문을 했었다. 상담 중에 내 담임교사였던 분은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선생님에게는 힘든 아이였었나보다.


"어머니. 아이가 아무래도 불안장애나 ADHD 성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엄마는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며,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걸 너무도 싫어하는 분이었다. 아들에 대한 다른 이의 평가가 엄마에게는 적지 않게 충격이었나 보다. 그 뒤로 나는 전학을 갔다. 전원이라고 해야 하나. 옮겨간 유치원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선교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 기질을 품어줄 수 있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자라면서 엄마가 늘 이야기해 주시던 분, 어쩌다 가족 앨범을 펴서 추억여행을 떠날 때면 까먹지 않고 만나게 되는 그런 분이었다. 유치원 졸업식 날 그분은 나를 보내며 많이 우셨다고 했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 그분은 선교사로 파송받으셨다고 했다. 역시 마음의 크기가 남다른 분이었었다.


초등학생 때 식당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던 나는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었었나 보다. 두 살 터울 누나하고의 장난은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엄마는 가만히 내 허벅지 안쪽의 연하디 연한 살을 꼬집으시며 나를 진정시키셨다. 엄마는 한동안 우울증을 심하게 앓으셨다. 어쩌다가 엄마에게 우울증이 찾아오게 된 건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존경하는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 크게 흔들리는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어린 나도 느껴지는 무거운 기운이 집안에 가득했다. 엄마는 안방에 누워계셨다. 어린 내가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프면 안 되니까. 그래서인지 지금도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각 사람들의 성향이나 분위기를 금방 알아채고, 그 자리에서 내 위치를 쉽게 정하는 편이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덩치도 있었으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내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중-고등학교 때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친구들하고 몰려다녔다. 학교를 갈 때도,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늘 애들과 같이 있었다. 그때의 철없던 우리를 묶어주던 의리는 지금도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게 화근이 된 걸까, 중간고사를 앞두고 수업 쉬는 시간에 친구가 내 답안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나는 답안지를 보여주기로 했고, 어설픈 커닝 실력은 금방 들통이 나고 말았다.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렸던 날 밤, 내 뺨은 빨갛게 부어올랐다. 처음으로 엄마가 채찍을 들었다. 정직하지 못한 걸 싫어하던 엄마에게 내 고백은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을 진학하기 전 갑자기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름의 이유는 명확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이름들이 곧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교회오빠, 동아리 회장, 새내기 섬김이, 누군가의 아들, 그 외에도 나를 이루고 있던 그 이름들로 더는 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내가 있던 곳은 아주 시골이었다. 그냥 화장실 세면대의 물을 받아 마셔도 괜찮은 그런 곳이었다. 회색의 건물들보다 녹색의 자연이 가득했던 그곳에서 나는 혼자 있는 법을 늦게서야 배웠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걷고, 혼자 질문을 던져보는 그 시간에 온전히 나는 나로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를 쉬게 해 주는 방법으로 혼자 있음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유쾌하지만 때로 진지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며, 냉정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아주 가끔은 차갑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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