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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 Oct 14. 2017

콩 심은 데 콩 나지

내미 학교에서 예술제를 개최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부터 구성지게 민요 한 자락을 흥얼대고 ‘얼쑤’ 하는 동작을 선보인다 했더니, 역시나 그거였다. 워낙 무대 경험이 있는 아이였기에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아이 마음은 또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침 일찍 깨우면서 ‘오늘 9시부터 예술제 하잖니’란 말을 던졌더니 평소와 달리 벌떡 일어나 앉는 것이었다. 먹는 둥마는 둥 정신없이 준비하더니 후다닥 나섰다. 긴장이 역력한 표정 뒤에 조그맣게 입을 벌려 ‘이따 봐’하곤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 뒷모습이 왠지 짠했지만 신경 쓸 여력조차 없었다. 둘째 밥 먹이고 어린이 집 갈 채비를 하면서 하다못해 세수라도 해야 했으니까. 꾀부리는 아이를 다그치고 집안을 똥 수세미로 만든 후에야 겨우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침 친한 엄마가 자리를 맡아놓은 바람에 비교적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앉으면서,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찾아온 꽃 파는 아줌마가 교문 앞에 있어준 덕분에 조잡한 꽃다발 하나 살 수 있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엄마들에겐, 공연이 끝난 후 아이에게 그것을 전달하고 사진 찍을 수 있을까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공연은 학년별로 진행되는 거라 이번 타임에는 총 7개의 반이 참여했다. 한 반 당 얼추 5~8분 소요되므로 한 시간 반을 알차게 사용할 요량으로 앙코르까지 감안해서 두 번씩 이루어졌다. 앞이었던 딸네 반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무대에 올랐다. 탈을 머리에 얹고 팔에 긴 천을 두른 아이들이 삼삼오오 줄을 지어 열심히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탈춤을 췄다. 맨 앞줄이었던 딸은 다행히 잘 보이는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생각보다 집중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었다. 팔을 뻗었다가 안쪽으로 구부리면서 앉았다가 일어나는 동작에선 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니었다. 잔뜩 긴장해서 얼음처럼 굳어버린 얼굴에 보는 이가 안쓰러워질 지경이었다. 동선이 바뀌어 맨 뒤로 갔을 때 그나마 나았지만,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꼭꼭 숨어버려 머리 윗부분만 간신히 찍었다. 사람들 많은 게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아니면 컨디션이 안 좋은 건지, 슬쩍 걱정이 됐다. 아이가 무대 밖으로 나가고 더 이상 보이지 않고서야 맥이 탁 풀렸다. 그 뒤론 무대에 오르는 아이들과 사진을 찍으려는 학부모의 동선이 얽히면서 갈수록 산만하고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흥미마저 잃어버렸다. 대신 아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시선이 쏠렸다. 워낙 앞에 앉은 탓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걸 보니 가만히 있는 모양이었다. 



에게 다가가니 역시나 쥐 죽은 듯 앉아있다. 다른 아이들은 떠드느라 정신이 없는데도,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다. 가끔씩 고개를 돌려 기웃거렸는데 아마 나를 찾았던 것 같다. 눈이 마주치고 내가 웃는 얼굴로 손짓을 했는데, 금세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섰다. 아이가 좋아하는 눈이 왕방울 만한 인형이 달린 꽃다발을 건넸는데 겸연쩍어했다. 옆 자리로 데리고 가 꽃다발을 들고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포즈를 취하면서도 옆 아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왜?’라고 물었는데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얼른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상황과 태도에 대해선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남들 앞에서 사진 찍히는 게 수줍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어떻게 비췰지 걱정하는 걸까? 설마 자기는 엄마가 와서 찍어주는데 다른 아이들은 그러지 못해서 미안한 기분 탓에 그런 건 아니겠지? 잠시 후, 선생님의 인솔 하에 교실로 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니 착잡했다. 이해하고 달래줄 수 있음에도, 그러지 말라고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다그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엄마란 존재는, 그런 순간에 후자와 타협하고 만다.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 아이에 대해서는 이성보다는 감정적인 게 앞서는 법이다. 



한 엄마가 선약이 있었기에, 그쯤에서 헤어지고 말았다.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인데 혼자 발길을 돌리자니 마음 한 구석이 쓰리고 찜찜했다. 아이가 돌려준 꽃다발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남들 다 가지고 가는데 왜 가져가지 못하고 되돌려주는 건지. 애꿎은 왕눈이 인형은 꽃다발에 안착하지 못하고 삐죽 튀어나온 통에 가뜩이나 볼썽사나웠다. 카카오톡에선 반 엄마들이 찍은 사진을 공유하느라 핸드폰이 쉬지 않고 들썩였다. 그중 한 엄마가 ‘다들 어디 계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다들 파하는 분위기네요’라고 답했다. 만나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그렇다고 얼굴도 모르는 채 단 둘이 보기엔 그랬다. 게다가, 닉네임이라 누구 엄마인지 어떻게 알고. 아무 호응이 없자 그녀도 포기하는 눈치다.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만나요’란 말과 함께. 그제야 다른 엄마들도 명절 잘 보내라는 덕담을 늘어놓았다. 그사이 같은 반 엄마와 마주쳤다. ‘어제 공연에서는 포토 타임이 있었다는데, 오늘은 왜 없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댔다. 그러면서 ‘왜 꽃을 주지 않았냐’는소리를 잊지 않았다. 나는 별말 없이 웃다가 금세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시간 되면 차 한잔 할까요?’란 말을 건네려 하는데, ‘그럼 다음에 봐요’하며 뒤에 따라오던 측근에게 뛰어갔다. 무안해진 나는 큰 운동장의 귀퉁이로 빠져 홀로 걸었다. 모두들 무리를 져서 어디론가 가는 모양이다. 괜히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오면서, 차 한잔 하자고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면서 상대방이 그러 길 바라는 나나, 친구들 눈치를 보며 찍는 딸이나, ‘그게 그거야’란 생각을 했다. 누가 누굴 탓하겠는가? 지금까진 속이 깊어서 하다못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받을까 걱정돼서 이것저것 신경 쓰는 탓에 그런 거라고 생각해 왔다. 무대 위에서 좁게 선 탓에 자신의 동작이 옆의 아이에게 닿을 것 같아서, 혹은 사진 찍는 순간 그것을 바라보는 친구가 부러워할까 괜히 걱정돼서 눈치 보는 거라고. 그게 배려라고 여겼다. 그러나, 배려도 앞서가면 그만큼 남을 의식하느라 자신에게 놓치는 게 많아진다. 내가 종종 논하는 표현 중에 껌 논리라는 게 있다. 늘 껌을 주던 아이가 그날따라 없어서 주지 못하면, 친구들이‘쟤 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안 주던 아이가 한번 마음먹고 주면, ‘쟤 생각보다 착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남에게 주는 게 익숙한 사람이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언제나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도 만족한다면 그뿐인데, 한 번쯤은 받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가끔 그게 억울하고 부당한 것 같아 자책하게 된다. 또, 친구가 내 부탁을 거절한다면 그게 상처로 남는다. 난 안 그랬는데, 쟤는 왜 저럴까? 아, 누구나 내 마음 같지 않구나. 그렇다면, 나도 거절해볼까? 아니면, 화를 내볼까? 아냐, 여태껏 내가 해온 게 있는데,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걸 저버릴 순 없지. 아, 어쩌지? 점점 소심할 수밖에 없다. 아마 아이는 그 배려의 굴레,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모순에 걸린 것 같다. 그건 나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나 역시 그래 왔으니까. 배려와 거절 못함,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리셋되고, 또다시 시작된 뫼비우스의 띠. 그 소심함 때문에, 나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고 누군가 내민 손을 잡아줄 뿐이다. 아마, 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끔씩 그는 나에게 말한다. “나는 안 그런데… 누굴 닮았겠어?” 그래, 내속에서 나온 딸인데 날 닮은 건 자명한 일이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 가시나무에 가시가 나지. 배나무에서 배 열리지 감 열릴지 않지. 왜 하고 많은 성격 중에 나의 그것을 닮았을까? 차라리 직설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아빠를 닮지. “답이 없을까?” “없지, 뭐. 좀 더 활발한 친구를 만나 그들의 에너지를 받고 조금씩 바꿔나가는 수밖에.” 사실 그것도 확실치 않다. 나도 못 고쳤는데, 뭘. 






나는, 눈치 보거나 흉내 내기 이전에 이미 우뚝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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