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미국에서 돌아온 후 나는 구직활동(그 당시 말로 취업뽀개기)에 대해 아는 것도, 열심히 알아볼 생각도 별로 없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니...) 그나마 대기업들의 공채 지원이 9월에 시작한다는 것을 주워듣고 몇 개 회사에 지원했다. 7월에 귀국했던 내게 영어시험점수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고(하하하...) 내가 앞으로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따위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그저 회사 타이들만 보고 지원했다. 재미있는 건 서류 지원을 하는 시점에선 그 회사들도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따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거다. 대부분의 회사의 지원서가 비슷했다고 기억하는데, 자기소개는 그렇다 치고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어린 시절, 실패/성공했던 경험 등을 써야 했다.(물론 이를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해 보겠다는 의도였다면 할 말은 없지만... 글쎄...) 학창 시절 작문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적 없던 내가 그리 좋은 글을 썼을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2곳의 서류 전형과 필기시험을 어찌어찌 통과했다.
자 이제 다음 수순은 면접. A사의 면접대기실에는 계열사 호텔의 케이터링이 깔려있었다. ‘역시 대기업이네’라고 생각 따위를 하며 기다리다가 기술면접과 영어면접을 봤다. 기술면접이야 석사과정에서 뭐 했는지 발표하는 것이니 그렇다 치고, 왜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어면접(영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회사에 들어오면 영어로 말할 일이 없다고!)을 하는데 면접관이 모두 한국사람이다.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원래 영어라는 게 네이티브들에게 말하는 것보다 한국사람과 대화하기가 더 어렵다. 알아듣기 어렵다는 게 아니라 서로 어설픈 영어를 주고받는 그 상황자체가 곤혹스러운데 3:1로 그 짓을 하고 있자니…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가 싶고… 어찌어찌 마치고 조를 짜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인솔자 한 명에 10명 정도)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애들 학력이 최소 SKY이상이었다. 임원면접까지 끝내고 나오면서 ‘아,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지는 않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난 그 회사가 어떤 인재를 뽑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면접에 임했으니까.
결국 내가 입사하게 된 B사의 면접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B사의 내가 지원했던 부분의 헤드쿼터가 지방이고 그래서 A사와 지원/합격 인력의 학력 차이가 컸다. 이곳에서도 기술면접을 보고 영어면접을 봤다. 다행히 영어 면접관은 외국인과 네이티브 교포라 좀 더 수월했지만 임원면접에서는 박사과정을 그만둔 것으로 압박면접을 당했다. 돌아보면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면접을 보는 도중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그냥 될 데로 되라는 마음으로 소신발언을 했다.(덤으로 웅얼거리는 임원께 다시 한번 말씀해 달라는 요청까지 하며) 그런데 마지막 토론면접에서 타다~ 어떤 일이 발생하는데…
토론 면접을 함께 할 8명이 대기실에서 모여 스몰 토크를 하면서 암묵적으로 우리 서로 물고 뜯진 맙시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하필 주제가 ‘양심적 병역거부’. 이런 젠장… 군대는 우리나라 최대 터부, 남자들의 뇌관 같은 것이 아니던가… 무슨 얘기를 하든 여자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뭐 어찌어찌 토론 같지 않은 토론이 이어지던 찰나, 막바지에 어떤 남자가 나의 말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근데 이 남자분, 나랑 영어 면접 같이 봤을 때 진짜 안타까웠던 데다 대기실에서 자신이 얼마나 임원면접을 잘 봤는지 떠드시던 분… 원래 성격대로라면 화르르 타오르려던 나는 그날따라 매우 논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모든 면접 끝.
최종적으로 A사는 떨어지고 B사에는 합격했다. 그리고 나중에 자사 연수를 와서 보니 면접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은 그분은 보이지 않았다.(뭐 더 좋은 회사로 갔을 수 있지 암…) 입사 지원부터 합격소식을 듣기까지 불과 3개월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이때는 입사 시험들이 내가 기꺼이 지옥의 문을 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다른 선택을 하진 않았을 것 같다는 게 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