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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나 Mar 01. 2024

유산은 누구나 해

feat. 내로남불

  어찌어찌 신입 사원 시절을 보내고 주니어 엔지니어가 되었다. 석사가 2년 경력이 되는지라 입사 2년 후 대리급으로 승진했다. 물론 이 과정도 순탄친 않았는데, 고과권자들의 무지함에 어렵지도 않았던 특진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고 나는 이런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이런 건 소문도 안 난다. 왜냐고? 남이 잘되는 일은 배 아프고 실수한 상사가 나에게 다른 방법으로 보상을 해주면 안 되니까?)


  엿튼 여느 때와 같이 일하고 있던 어느 날 친구 J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는 전화로 필요한 사항만 간단히 나누는 성향인지라 한창 오전 업무 시간인 때에 그녀가 전화를 해온 다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는 심상치 않았고 나는 함께 일하던 선배(직급은 같지만 입사가 빠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하던 일을 멈추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친구와 통화를 이어갔다. 그 당시 그녀는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고 늘 둘째 생각은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임신이 되었고, 계류유산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수화기 뒤에서 울고 있었다. 간절히 바라던 임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한 그녀의 슬픔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어 오죽하면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했을까 하는 짠한 마음도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를 해주었다. 물론 업무 시간인지라 마냥 전화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어서 우선 전화를 마무리하고 업무로 돌아갔다.


  전화를 받기 전 선배와 함께 일(내가 꼭 필요하거나 중요한 일은 아닌 단순 작업이었다)을 하고 있었던지라 예의상 간단하게 통화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선배는 여자였고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지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는데, 나의 이야기에 대한 그녀의 반응에 나는 좀 많이 놀랐다. 더불어 그녀의 대답이 워딩 그대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잖아?’(그 당시 그녀는 기혼자였지만 아이는 없었다) 이 말을 하는 그녀의 말투엔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는데 이성적인 논리로만 따져서 사람마다 성향의 차이가 있으니 그런 반응도 나올 수 있다고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누군가의 슬픔이, 아니 내 친구의 슬픔이 그렇게 폄훼되는 게 가슴 아팠다. 조금(사실 많이) 충격적이었지만 사람의 의견은 다양하니까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그때는……


  그런데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바로 그 선배가 업무 시간 중 함께 일을 하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말했다. 아이를 유산했다고. 그리고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과거에 나에게 전화했던 친구의 상황과 너무나 똑같았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둘째를 가질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진 아이를 잃었던 상황. 아마도 나는 그때 할 말을 잃었던 것 같다. 주마등처럼 예전 그녀의 입에서 나왔던 대사가 떠올랐지만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공감하며 그녀를 위로했다. 이런 일은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가슴 아픈 일이니까.


  위의 이야기는 내가 겪은, 나의 상식과 다른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에피소드 중 단 한 가지에 불과하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와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며 내가 배운 건 요즘 말로 ‘내로남불’은 진리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당하면 불이익이고 남이 당하면 입을 다물거나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 물론 나 또한 수많은 그런 상황 속에 침묵했을 테니 그들을 마냥 비난하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남이 당하면 당연한 일이고 같은 일을 내가 당하면 불이익이라는 생각 하진 않는다. 사람마다 상식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멀리 하는 것이 맞다. 특히 ‘내로남불’이 일상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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