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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나 May 17. 2024

교육은 오후에나 들어가는 거예요

성실은 미련한 바보들이 가진 덕목인가

  입사 후 꽤 오랫동안 지방에서 근무하며 기숙사 생활을 했다. 기숙사는 아파트형으로 한방에 두 명씩 투룸 또는 쓰리룸에 욕실과 거실 그리고 부엌을 공유하는 형태였다. 주니어 엔지니어 시절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지내는지라 기숙사는 그저 씻고 자는 곳이었고,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아 금요일에 서울로 퇴근해 월요일엔 거의 직출을 했다.


  이전에 기숙사 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 유학생 시절 룸메 언니에게 크게 데인 나는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분란을 만들지 말자 생각했고 따라서 초반 룸메이트와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준비를 하는데 룸메가 여전히 침대에서 미적대고 있었다. 그냥 나가기도 뭐해서 스몰 토크 개념으로 “오늘 연차예요?”라는 나의 물음에 그녀가 “교육이에요. 오후에 갈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당연하게 “교육이 오후부터예요? 좋겠다.”라고 하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원래 교육은 오후부터 들어가는 거예요.” 황당한 이 대답에 “그래도 되는 거예요?’라고 나는 다시 물었고 그녀의 마지막 답변으로 우리의 대화는 막을 내렸다. “선배들도 다 그렇게 해요.”


  그렇다. 계속 얘기하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는 우리나라 최고 대기업 중 한 곳이었다. 어떤 교육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선배들이 알려준 팁이라는 게 오전부터 시작하는 교육을 굳이 다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니. (지금은 교육장도 근태가 다 체크되고, QR코드를 이용해 매시간 출석체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서 꿈도 못 꿀 이야기인데, 이런 시스템이 왜 생겨야 했을지는 너무 자명하다) 이후 종종 이때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그것이 악습들의 빙산의 일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은 답답한 바보로 치부되고, 그에 따라 그런 사람들 자신이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일에 꼼수를 부려 겉만 번지르르 포장한(이때 빠지지 않는 남의 성과 가로채기) 사람들이 상사가 되고, 더 높은 사람들이 그런 암적인 존재들을 도려낼 생각을 하긴커녕 그런 사람들을 감싸고돌면서 실제 몸속의 암세포가 몸 전체로 전이되어 한 사람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듯 큰 조직이 점점 지옥으로 변하는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물론 몸속의 암을 수술로 제거하듯이 조직 또한 암적인 존재를 걷어내려고 개편이란 것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편으로 인해 암적인 존재를 모두 덜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내 주변에 또라이가 없다면 내가 또라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암적인 존재는 계속 새로 태어난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일은 조직이 썩어가는 동안 가장 피해를 보고 나가떨어지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가장 약한 조직이 암덩어리들에 의해 가장 빨리 잠식되는 것처럼 선량한 사람들은 속으로 곪다가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똑같은 암덩어리가 되는 선택을 한다.


  이런 일이 비단 대기업에서만 일어나진 않겠지. 아니 어쩌면 대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한 대기업이기에 다른 곳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처치에 들어갈 수도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선량하고 묵묵한, 최대한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 자괴감에 차라리 남들 다 하는 악습 나도 하자고 변하는 사람들만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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