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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나 May 24. 2024

내가 회식을 싫어하는 이유

술 마시면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못하는 인간들이 이다지도 많다니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법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주취자의 심신 미약에 따른 감형이었다. 아니 술을 정신 못 차릴 때까지 '쳐' 마신 게 피치 못할 사정도 아니고 가해자의 선택인데 왜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서 맘대로 감형을 해주는 거지?(들리는 풍문엔 오래전 사회의 기득권층 자녀들이 술 먹고 하도 사고를 쳐서 그것을 감형해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던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술 먹고 멍멍이가 되는 에피소드는 널리고 널려서 새로울 게 없지만, 어쨌든 내가 회식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술 먹고 헛소리하는 멍멍이들’ 때문이었다.(관용적 표현이라 그냥 쓰지만 멍멍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나는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 자체가 몸속에 존재하지 않는 건지 대학 입학 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술을 못 마신다. 차라리 먹고 취해서 정신을 놓아버리고 꽐라가 된다면 오기로라도 마시겠는데, 알코올을 포함한 모든 주종을 마시려고 코에 갖다 대는 순간 알코올 냄새에 질리고 억지로 마시면 거의 바로 토해낸다.(알코올 농도 3~4%라는 호로요이도 마시고 토하는 수준) 한창 대학 땐 술도 마시면 는다는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마시고 토하고도 해봤지만 상하는 건 내 몸뿐이었다. 이런 나지만 극 E의 성향을 마구 발휘하여 술자리에선 또 잘 논다. 오죽하면 선배들이 너는 술 마신 애들보다 신나게 논다고 했을까.


  학생시절에도 술자리엔 멍멍이들이 많았고, 그 인간들은 ‘내’가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회식자리는 그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부서배치 후 신입사원(바로 나) 환영회에서 내가 술 마시고 토하는 것을 본 상사들은 역시나 술은 늘리는 것이라며 나에게 좋은 술을 사줘야겠다는 등의 헛소리를 시전 했지만… 본인들의 돈으로 내게 뭘 사줄 리가… 이후 같은 소리를 매 회식 자리에서 적어도 10년은 들었지만 술 한 병 받아본 적 없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회사에 입사할 무렵 음주 관련 사고(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 및 성희롱 등)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던 때라 회사에서 억지로 술 권하는 분위기를 지양시키는 때여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었다는 거다. 하지만 내가 마시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술을 마시고 헛소리를 하는 멍멍이들은 지뢰처럼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펑'하고 터졌으니까.


  그중 하나는 상사 한 명이 나를 술 잘 마시는 비슷한 직급의 여자 동료와 계속 비교를 해댄 사건이었다. 차라리 일이나 성격 등 내가 납득할만한 것에서 비교를 당한다면 그나마 참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술에서 비롯되는 말도 안 되는 비교에 너무나 화가 났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런 때 논리적으로 반박을 해야 하는데 나는 너무나 쉽게 감정적이 되어 침착하게 받아치질 못한다는 것이다.(물론 술 취한 멍멍이에게 통할 것 같지도 않지만) 회식 후 아무리 곱씹어도 이해 불가였던 나는 다음 날부터 그 사람과 일 이외의 인간적인 소통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가 술에 취해서 한 말이라도 나에 대한 모욕을 넘어갈 아량이 내겐 없었다.(이건 지금도 그렇다) 그러자 당연히 그 XX는 슬금슬금 나의 눈치를 보다가 며칠 지나 내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었다. 다행히 그때는 흥분이 가라앉은 상태라 천천히 그날 일에 대해 얘기하며 잘못된 부분에 대해 지적했는데, 당연히 그 사람은 기억나지 않는 척하며 나에게 두루뭉술 사과하며 넘어갔다.(그들만의 리그에 나에 대한 뒷담화가 +1 된 건 안 봐도 뻔한 일)


  그리고 또 생각나는 한 사람은 술 쳐 먹고 전화했던 인간이다.(이것도 너무나 고전적인 지랄) 그 당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박사급 인력과 함께 일하게 되었을 때였다. 문제는 그 사람이 학력과 인격의 불일치(물론 배움=인격이 아니라는 건 진리이지만)가 심하고 열등감에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퇴근하고 쉬고 있는데 그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긴급한 일이 생긴 건가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혀가 잔뜩 꼬부라진 그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내가 일을 하는데 깊이가 없다는 둥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둥의 헛소리를 시전 하기 시작했다.(너무 오래전이고 황당했던 터라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매우 황당했지만 이번에도 술 취한 사람에게 논리 따위 통할 리 없으니 개소리가 무한반복되기 전 전화통화를 마무리했다. 물론 곱씹을수록 너무나 화가 났고 나중엔 사과도 받아냈지만 아직도 그때 그 통화를 녹음하고 회사에 정식으로 신고하지 못한 게 한이다.(물론 내가 회사에 항의했다면 회사는 오히려 나를 가만히 두진 않았을 것 같지만….) 나중에 들으니 그 인간이 나에게 한 행동은 직급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에게 자행되었고 여러 사람들이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도 대기업에선 승승장구하고 잘 먹고 잘 산다.


  이 외에도 더욱 많은 쓰레기 같은 회식 에피소드가 있고,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의 심정으로 연차가 쌓이면서 웬만하면 회식에 참석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심지어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속아준다식의 거짓말까지 하면서. 이런 이유로 아직도 꼰대들이 가진 같이 술 먹어야 친해지고 단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단 0.000…1%도 동의할 수 없다. 그냥 술을 먹고 싶으면 친한 사람들이랑 가서 x드세요. 아… 그럴만한 친구가 없구나… 그리고 회식은 내 돈 내고 먹는 게 아니니까 더 집착하는 건가?(입사 후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랐다) 그렇다면 저는 빠질게요. 그럼 내 몫의 회식비가 고스란히 당신들에게 돌아갈 테니 마시는 공짜술도 늘어나는 거잖아요? 그러니 회식에 빠진다고 눈치 주지 마세요. 즐거움은커녕 불쾌함만 주는 자리를 사양할게요.(덧, 코로나 시기는 괴로웠지만 회식이 없는 건 너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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