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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나 Mar 15. 2024

내 가방만 보고 있었어요?

사람의 겉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한 에피소드에서 임수정(극 중 배타미)이 사회초년생 후배와 미팅에 나갔을 때 차림새로 후배에게 무안을 주는 미팅상대에게 일침을 가하고 미팅 후 후배의 에코백을 자신의 명품백과 바꿔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임수정은 “왜 사회초년생들이 돈이 없는데 명품 가방을 드는 줄 알아? 가진 게 많을 때는 감춰야 하고 없을 때는 티를 내야 하거든”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입사하고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소위 명품 가방을 구입했다. 딱히 누군가를 의식하거나 그 명품 가방이 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후에 내 귀에 들려온 많은 말들에서 나와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나 또한 '명품가방 하나쯤은 있어야지'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해 때론 과시용으로 물건을 샀던 경우도 물론 있었을 거다. 나 자신의 만족이라고 포장하면서)


  입사 초기를 제외하면 나에게 회사 생활은 대학원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트레이닝복 수준만 아니라면 가능한 복장(다른 회사보다는 자유로워서 부모님이나 친구가 그러고 회사를 가냐고 심각하게 물었던 적도 있다)과 캠퍼스라 불리는 사업장의 분위기가 한몫했다. 거의 항상 민낯에 편한 옷을 입다 보니 딱히 명품 가방을 들고 회사에 갈 일이 많지 않았다. 명품 가방은 퇴근 후 약속이 있거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만 들고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출근하면 사무실의 내 자리로 직행한 후 겉옷과 가방은 책상 옆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수납되기에 누군가 내가 걸치고 드는 것들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과학으로도 증명된 진리이니까)


  하지만 그 진리가 회사의 나의 주변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나 보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와 대화 중 가방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자세한 내용은 생각이 안 나지만 그녀가 특정 브랜드의 가방을 가지고 싶다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oo님도 oo가방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살짝 소름이 돋았는데, 그녀가 말한 가방은 내가 특히나 손가락에 꼽게 회사에 들고 갔던 가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친한 동료가 다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하면서(나는 안면만 있었다) 그분이 내 가방을 보고 같은 걸 사고 싶다고 하더란 말을 전했다. 아니, 그분을 몇 번 만난 적도 없는데 내가 무슨 가방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알고 있다고? 이 외에도 유사한 일들을 겪으며 도대체 이 사람들은 타인을 볼 때 어떤 것에 집중하고, 무엇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위의 에피소드들은 내가 회사 사람들에게 조금 뜨악했던 경험의 몇몇 사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과의 대화 주제의 대부분은 돈 또는 부동산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생각할 때 문제는 그들의 모든 판단 기준이 바로 ‘돈’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입사 초에 이루어진 호구조사 등에서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실상은 내가 생각한 이상이었다. 예를 들어 한 선배와 나는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냈지만 그 선배의 집이 어디인지만 알았을 뿐 선배의 부(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흥미도 없었다. 그런데 부서 사람들과 대화도중 선배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것에 대해 자주 언급되었고 급기야 선배의 배우자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종국에는 선배와 어떻게든 인연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까지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과연 요즘은 이것이 정상인데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입만 열면 시작되는 주식 이야기와 아파트 청약 이야기들,  당연하다는 듯이 업무 시간에 주식을 사고팔고 청약 사이트에 접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부서원에 절반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돈 많이 벌고 싶다. 또한 돈은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여러모로 살기가 팍팍해지니 사람들이 돈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사람을 판단하거나 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조차 그 사람의 성품이나 가치관보다 재력이 기준이 되는 것은 좀 서글프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지만 한 사람이 가진 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을뿐더러 부를 많이 축적한 사람이 꼭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예를 너무나 많이 보아오지 않았나? 내가 또 이뤄질 수 없는 이상적 이야기만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돈’만 보고 누군가와의 관계 설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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