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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나 Mar 29. 2024

관상은 진리였다

인성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낯가림이 별로 없고 기본적으로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며 첫인상이나 관상에 관해 딱히 편견이 없었다. 어떤 계기로 만났든 나와 잘 맞아 오래 이어지면 좋은 인연이고 아니면 그냥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라 생각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았다고 할까? 이런 성격은 때론 적을 만들기도 했는데, 내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한 애정을, 아닌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한 것이 누군가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별 신경 안 쓰고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입사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사회라는 곳, 특히 대기업 조직 안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나를 비난하던 사람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에게 정신적 상처를 입혔다.(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입사한 특정 성별의 사람들이었다!) 특히 나의 회사 생활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무능한 빌런 상사(한때 나의 사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상도 얼굴색도 별로였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나에겐 첫인상에 대한 편견이 없어 딱히 그를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진 않았다.(순진했던 나여...) 30여 년을 살면서 누군가의 입안의 혀처럼 굴 정도로 자존감이 낮지도 않았고, 회사에서는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몇 윗분들에겐 인정도 받았다.(어쩌면 이것이 더욱 화를 불렀을지도...) 칙칙한 얼굴의 내 상사는 마음 또한 밝지 않았다. 그에겐 내가 칭찬받는 것조차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릴 땐 무시하면 그만이던 사람들이 내 상사(또는 선배)가 되었을 때 나의 일상은 지옥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언젠가 그 상사와 관련하여 조문을 할 일이 생겼고 장례식장에서 그의 아내와 인사를 하게 되었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그 부인은 친절하게 아는 척을 했는데, 그건 내 이름을 알 만큼 내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여러 가지로 복잡해졌다. 아마도 좋은 일들로 내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도 친절했던 그 부인의 미소가 모두 꾸며낸 것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여전히 순진했다...) 그런데 그 경조사를 계기로 그 빌런 상사의 가정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들을 알게 되었다.(나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참 빨리 내 귀에까지 도달하고, 내가 알면 그냥 모든 사람이 다 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 그 상사가 나를 괴롭혔던 이유에 대해 일정 부분 이해하게 되었다.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생긴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이 빚어낸 그의 민낯을 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나에게 자행한 일들을 합리화하고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내가 어느 정도 일의 궤도에 오르자 상사들은 내 밑으로 여자 신입사원들을 교육하라고 보냈다가 일 좀 할만하면 빼내기를 반복했다. 처음 몇 명의 신입에게는 정말 열과 성을 다해 그들에게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알려주고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유독 정이 가지 않았다.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나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본능이 나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였던 것 같다. 그 후배는 나중에 대차게 나의 뒤통수를 치고, 후에 빌런 상사의 오피스 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을 못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술을 잘 마시고 몇 차를 가든 그 무능한 상사를 챙겼다는 것이 그녀의 특진과 무관한지는 모르겠다.


  더 많은 예들이 있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을 통해 처음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인상과 흔히 말하는 관상(나에게는 첫인상이 더 맞겠지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처음의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은 나의 육감이 내게 알리는 일종의 ‘위험해! 당장 피해!’라는 알람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물론 위와 같은 사람들을 사전에 걸러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쌓여 아쉬운 건 이젠 사람들을 만날 때 예전만큼 순수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검열함으로써 관계의 폭을 점점 줄이다 못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나처럼 누구에게나 경계심 없이 천진난만하게 다가가는 사람들이 많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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