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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근처로 이사를 왔다.

시부모님이 사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싫었다. 

시댁 근처에 가서 사는 게 왠지 꺼려졌다.

안 가겠다고 했다. 

버티었다.

하지만 남편과 시부모님을 생각한다면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시부모님 근처로 가면 나한테도 좋은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어떤 일일까?




마침 시댁 근처에 새로운 택지 지구가 개발된다 했다.

그리고 도심 속 호수공원이 있다고 했다.

그래! 호수공원 옆 새로 지은 신축 아파트! 

그곳으로 가면 시집이 있는 동네로 이사 가리라!

나는 야심 차게 생각했다.

게다가 아파트 바로 앞에는 호수를 품은 도서관이 있었다.

신축 아파트+호수공원+도서관.

새 아파트에 살며 호수공원으로 산책 나가고 아이들과 도서관을 간다면...

그렇다면 시댁 근처로 이사 갈 수 있으리라!

이 세 가지의 꿀 조합이면 나는 시댁 근처로 이사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된다면 그것은 인생이 아닐 터...

우리 부부의 수중에 있는 돈으로 신축 아파트는 꿈도 못 꿨다.

대출을 받는다 해도, 평생 이자 갚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댁 근처, 10년 된 한 아파트 전세로 이사 왔다.

내가 꿈꾸던 도서관도, 호수공원도 멀어졌다.



실망했다. 내가 시댁 쪽에 이사오려던 조건이 하나도 충족되지 않아서...

화가 났다. 남편에게...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하지만 나는 어정쩡하게 이사 온 이 곳에 차츰 적응하고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곳에.

햇살이 잘 들어와 식물이 안 죽는 이 집에.

처음 이사 온 후 선물을 가지고 아랫집을 방문했는데,

우리도 아이 키워보며 안다고 괜찮다고 한사코 선물을 거절하는 아랫집에...




그렇게 10년 된 아파트에 사면서 점점 이 곳에 나를 담고 있다.

차 타고 얼마쯤 가면 내가 꿈꾸던 멋진 호수공원이 있지만,

나는 우리 아파트 뒷 공원에 더 자주 간다.

거기는 시골의 구수한 거름 냄새가 난다.

멋진 호수가 없다.

하지만 집에서 가깝다. 걸어서 갈 수 있다.

그곳에서 나는 아침에 운동을 하고 아이들과 산책도 나간다.

아무리 멋진 호수 공원이 있다 한들. 집에서 멀면 안 가게 된다.



호수를 품은 멋진 신식 도서관에도 차 타고 몇 번 가봤다.

책도 새 거고, 건물도 깔끔하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되는 작은 동네 도서관을 간다.

오래되었고, 아담하다.

하지만 아이들과 산책 겸 걸어가서 책을 보고 온다.

걸어가는 길에 아이들과 동네 구경도 한다.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되었다.

시댁 가까이 이사 왔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들이 하나도 충족이 안되었다.

화만 나고 슬펐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를 탐험한다.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누릴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새 도서관과 호수공원. 

아무리 좋은 장소라 집에서 머니 안 가게 된다.

오늘도 난 집 가까이에 있는 공원과 도서관을 간다.

집 가까이 있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이렇게 오늘도 난 내 삶의 터전과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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