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식 때 일이다.
벌써 12년 전이다.
나의 키는 167cm로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보통 보단 아주 쪼금 큰 편이었다.
하지만 힐이라도 신는 날이면 170cm이 넘게 되어
구두를 신는다는 것은 나의 키를 커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결혼식 날, 나는 예쁜 순백의 드레스에 맞춰 하얀 구두를 준비했다.
굽이 5cm 정도 되는 예쁜 아이였다.
무사히 결혼식 순서를 다 마치고,
가족과 친척이 다 같이 사진 찍는 순서만 남겨두고 있었다.
식장 저 멀리서 친구들과 친척들이 이제 막 부부가 된 우리의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나와 남편 단 둘이 사진을 먼저 찍으려는데
식을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말씀하셨다.
신부가 신랑의 키보다 크면 보기에 안 좋다고...
구두를 벗으면 남편과 키가 비슷헤지고
사진은 예쁘게 나오니 구두에서 내려오란 소리였다.
난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에는 구두를 벗었다.
부부 커플 사진이며, 가족사진, 친척들 사진까지 맨발로 찍었던 것이다.
어차피 긴 드레스에 가려져 내 맨발은 안 보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삶도 구두와 함께 벗겨져 버렸다.
남편에게 맞추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이모님의 권유로 구두를 벗었지만,
그로부터 는 10년간 굽 있는 구두는 커녕
단화 아니면 운동화, 굽이 없는 구두만 신고 다녔다.
키로 남편의 자존심을 맞추려는 마음이 주된 이유였다.
서서히 내 마음도 내 발을 따라 남편 자존심에 맞춰지고 있었다.
결혼식 후에 남편 쪽 친척들이 신부가 구두를 벗고 사진 찍는 걸 봤다며
아주 착한 며느리를 얻었다고 시아버님께 칭찬한 모양이다.
시아버님은 그 일로 나에게 칭찬을 하셨고
그때부터였을까?
남편에게 맞추는 삶이 칭찬받는 삶이라 여기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와 무척이나 다른 사람과 무조건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또 시댁에 칭찬받을 일만 하려 하고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이내 나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며칠 전, 남편 여동생 시누이의 결혼식 날이었다.
나는 곱게 화장을 하고 분홍색 한복을 입었다.
내 한복이 없어서, 비록 시어머니 한복을 빌려 입었지만
화장도 곱게 하고 나름대로 정갈하게 준비 잘해서 갔다.
코로나인 상황 속에서도 손님들이 많이 오셨다.
하객들간의 밀집을 피하려 공간을 여러 개로 나누다 보니 약간은 썰렁한 결혼식이었다.
무사히 결혼 예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을 찍는 순서가 왔다.
‘신부 가족분들 나오세요’란 소리와 함께
우리 부부와 아이 둘, 시부모님이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시부모님은 의자에 앉아 계셨고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서 있었으며
우리 가족만 사진 찍을 자리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 기사가 렌즈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우리의 모습이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과 시누이, 그리고 시누이 남편은 모두 비슷한 키인데
나의 키만 톡 튀어나오게 커 보였던 것이다.
나는 한복에 4cm 굽의 구두를 신고 갔었는데
순간 구두를 벗고 다시 한번 맨발의 투혼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시누이 남편, 시누이, 나, 남편 순서대로 섰는데
계이름으로 표현하자면 도-도-솔-도 같은 급 도약의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잠깐 망설였지만
나는 결국 구두를 벗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허리를 쭈욱 폈다.
그리고 밝게 웃으며 사진찍기를 마무리했다.
그 누구의 칭찬을 바라지 않았다.
아유~거기 착한 며느리네~란 말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어떤가?
나 있는 모습 그대로 살면 될 것을...
나 자신을 버리고
다른이의 인정을 바라는 삶은
인간이 할 짓이 못 되었다.
항상 남 눈치만 봐야 하고,
특히 며느리로 불리고 난 후부터는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제 결혼 후 12년째인데
시누이의 결혼식을 통해 나는 스스로 외친다.
나를 버리지 않고,
다시 나를 찾는 삶을 살겠다고!
아무도 듣지 않지만
나 혼자 속으로 가만히 외쳐본다.
이제부터는 진짜 나를 다시 찾고 세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