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가 미운 이유

나는 남편과 결혼할 때 시아버지와 아버지의 친분으로 인해 결혼했다.

당시 남편은 미국 유학생이었고, 나는 승무원을 내려놓고 중동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있던 상태였다.

평소 시아버지와 안면이 있던 아버지는 결혼 적령기의 딸이 있다네.

시아버지도 결혼을 해야 하는 아들이 있다네. 하셔서 서로의 이메일 주소를 나누었다고.


그렇게 남편과 처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던 사람과 3개월 만에 후다닥 결혼식을 해치울 수 있었던 까닭은

중간에 시부모님의 개입으로 인해서다.

나는 사람 보는 데 있어서 아주 신중하고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나의 인생이 달린 이 결혼을 잘 모르는 사람과 했다는 것은

시아버지의 빠른 추진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나도 간절히 남편감을 찾고 있었지만

시댁에선 결혼 적령기의 아들이 혼자 미국에 유학 중이니

하루빨리 짝을 찾아 편안하게 아들 공부를 마치려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초고속으로 결혼하고

미국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며 나도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도 낳고 아르바이트도 하는 등 바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미국 생활 5년 차부터 시아버지는 우리에게 재촉하셨다.

빨리 한국에 들어오라고.

한국 사람은 조국에 살아야 한다며 미국은 병원에 가기 힘들고

온갖 이유를 다 대셨다.

물론 아들을 곁에 두고 싶으신 시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독립해 머나먼 타지에서

힘들게 자리를 잡아 잘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이었다.

시아버지께서 자꾸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었다.

표면적으로는 아들을 사랑해서 그랬다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우린 10년 동안 미국에서 잘 지냈다.

하지만 결국에는 시댁 어른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10년 미국 유학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귀국했다.

한국에 들어오면 비빌 언덕이 있다고

미국에서는 우리가 도와주고 싶어도 못한다고

귀에 못 박히도록 따갑게 들었던 이야기다.


10년 만에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찾은 모국은 예상외로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다.

아파트 전세 자금이 없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에 신용이 없던 우리 부부는 대출받는 것부터 너무 힘들었다.

우리가 미국에 있는 동안 한국에 살 전셋집을

시아버지가 발품 파셔서 부동산에서 계약하셨다.

우린 그 집에 필요한 전세 자금을 마련해야 했고

지금은 대출 이자를 매월 갚아나가고 있다.


한국에 오면 비빌 언덕이 있다던 시댁 어른들은

우리를 강하게 키우시려는지 못 본 척하셨다.

물론 독립한 성인 남녀가 가정을 이루었으니

우리들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건 동의하는 바다.


그런데 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미국에서 대학원도 힘들게 졸업하고

미국 사람들과 같이 일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쉽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만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살고 있던

우리 가족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아들을 곁에 두고 싶다던 시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국으로 들어온 결정에 후회가 되었다.


게다가 시아버지가 알아보신 아파트는

아랫집 1층과 층간소음 문제로 더욱 마음이 힘들었다.

우리 때문에 시끄럽다고 매일 같이 찾아오고

결국 경찰까지 왔지만 아직도 미해결중이다.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시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생각했다.

남 탓을 하고 있으니 내가 죽을 것 같았다.

빨리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 있었다.

상담사에게 상담이라도 받고 싶었다.


몇 년 전 친정엄마 장례식에 볼일이 있어 못 오신다는 시아버지가 자꾸 생각났다.

결국에 잠깐 들르시긴 했지만

장례식에서 이 사람은 누구냐,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물으시며

호구 조사하시던 시아버지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외국에서 임종도 못 지키고

갑자기 엄마를 떠나보낸 며느리의 슬픔은 보시지 않으셨다.

그런 모습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내가 강해져야 하고, 빨리 일어서야 했다.

시아버지가 밀어붙이셨어도

남편과 결혼한 건 나의 선택이다.

한국에 들어온 것도 시아버지가 원해서였지만

결국엔 나의 선택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든 한국에서 살아 나가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귀국해서 시아버지와 힘든 상황 속에서

나의 마음은 썩어 문 들어져 갔다.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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