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모르는 사람이 내 아이를 혼낸다면 2편

속초 한 달 살기 D-15

바깥을 나온 나는 남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아니, 애들 옆에 있었으면 애들이 종이를 찢는지 아닌지 좀 봐주지! 뭐 했어?"

나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랬더니 평소 조용한 남편이 갑자기 언성을 높인다.

그 서점 아저씨가 자기에게 와서 공룡 책 살 거냐고 했단다.

아니라고 했더니 왜 제자리에 안 꽂아 두냐고 뭐라고 해서

남편도 사과를 하긴 했는데

더 이상은 서점에 머무르기 싫었단다.


'그래서 나보고 언제 갈 거냐고 묻고

밖으로 먼저 나가 있었구나.'

남편의 상황을 알게 된 나는

이번엔 첫째 아이에게 또 다그친다.

"너처럼 평소에 물건을 다 부수고 잘 망가뜨리는 애는

분명히 그 종이도 네가 찢었을 거야!

왜 거짓말을 해?

엄마가 그 아저씨한테 혼나야 해?"


나는 성난 사자가 되어 그렇게 첫째에게 윽박질렀다.

아이는 마스크를 써서 안 그래도 작은 얼굴에 껌뻑이는 눈만 보인다.

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자기가 안 했다고 한다.

"아니야! 평소 너라면 충분히 그 종이 찢고도 남아!"

라며 아이에게 매몰차게 말했다.


“당신이 애들 옆에 있었으니 그 상황을 좀 말해봐요.

나는 사진 찍느라 못 봤으니!

첫째가 찢은 거 맞죠?”


남편이 하는 말이

그 종이가 원래 조금 접혀 있었는데

아이가 의자에 오르다가 옷에 걸려 조금 찢어졌다는 것이다.

첫째는 아마 자기가 그랬는지도 모를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종이는 이미 낚서로 가득 차서

찢고 새로 갈아야 하는 건데

왜 그 아저씨는 그렇게 말을 하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남편한테도 부모가 돼서 아이가 책을 빼고 제자리에 꽂지 않는 것도 못 보냐며 했단다.

남편은 왜 자기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하냐며 씩씩댄다.




나는 숨을 깊게 쉬어 보았다.

상황을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서점에 가자마자 나는 사진을 찍고 책을 구경하느라 바빴고

아이는 공룡 책을 골랐지만 볼 수 없자 의자 위에 올려두었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종이를 살짝 찢었고

남편은 부모의 자격을 운운하며 따지는 아저씨에게 질려

빨리 서점에서 나가고 싶어 했다.


동네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와서 책을 빼고 제자리에 안 두는 걸 일일이 다 치워야 하는

아저씨의 노고를 이해하려 해 봤다.

방문객 입장에서는 딱 한 권인데 뭐~ 할 수 있지만

다수를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외항사 승무원으로 일했을 때

승객들이 담요 달라, 물 달라, 펜 달라 의 정당한 요구가

내 몸이 힘들땐 너무나 힘에 부쳤던 적이 기억났다.

승객은 혼자지만 다수를 상대하는 입장은 늘 피곤하기 마련이다.




나는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왜 화가 났을까?

내가 왜 그렇게 소리쳤던 것일까?

남편이 아이를 제대로 안 보고 먼저 나가서?

아이가 종이를 찢어서?

아저씨가 부모 자격 운운하며 호통을 쳐서?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다른 사람이 내 아이 혼내는 것을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아이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아이를 잡았다.

쥐 잡듯이 잡았다.


마스크 넘어 아이 눈망울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하던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슬펐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남편과 아이들을

내 사람들을 믿지 않고

지켜주지 못했다.

남의 말만 듣고

아이를 다그치고 혼내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아이보다 남의 말과 이목에 신경을 더 쓴 내가

엄마라는 게 화가 났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친구가 사람을 죽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세상 사람들이 그를 정죄하고 조롱했다.

하지만 한 진실된 친구가 오명 쓴 친구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끝까지 그를 믿어주었다는 이야기.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다.

아무리 세상이 아이들을 속일 지라도

엄마인 나만은 아이를 지켜주고 보듬어주고 믿어줘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런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사과했다.

“엄마가 상황도 모르고 혼내서 미안해.

우리 아들을 제일 사랑하는데...

엄마 용서해줘”

그리고 남편에게도 사과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은 엄마가 잘못한 날이니깐

엄마가 사과의 의미로 맛있는 거 사줄게!

속초에서 유명하다는

봉 브레드 마늘 바게트 먹으러 가자!

엄마가 쏜다!!"


작가의 이전글 모르는 사람이 내 아이를 혼낸다면 1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