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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보이스피싱을 당한다면  2편

속초 한 달 살기 D-18

속초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 

여유롭고 늘어진 일상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 한 달 살기를 하는 순간에도 나는 바쁘다. 

오늘은 애들 뭘 해먹여야 하나? 

내가 놓친 속초 맛집은 어딜까? 

겨울 날씨에 속초 어디를 가야 아이들과 잘 놀 수 있을까?

그 와중에 글도 써야 하고

아이들 책도 읽어주어야 하고

정말 바쁘게 살고 있다. 


오랫동안 카톡을 볼 여유도 없다. 

하지만 가끔 들여다보는 카톡에는 여전히 

그 낯선 외국인의 인사가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의 카톡을 한동안 읽지 않고 두었다. 

‘왜 내게 카톡을 계속 보내는 걸까? 무슨 의도가 있을까?’


그러다 생각이 났다. 

이것은 바로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얼마 전 기사를 보았다. 

외국인 보이스 피싱에 걸려 돈 몇 천만 원을 날렸다는 것을. 

상황적으로는 누구나 안 넘어갈 듯 한 이야기지만

막상 온라인으로 친구가 된 외국인에게 

뜯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기사였다.

다시 인터넷에서 기억을 더듬으며 기사를 찾아 읽어 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내 상황과 딱 떨어지는 몇 가지 단서가 포착되었다.


1. 온라인으로 친구가 되고 싶다며 먼저 메시지를 보냄

2.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신변 사항에 대해 자세히 말함

3. 자신의 멀쩡한 사진을 보냄

4.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푸른 눈과 금발의 외국인

5. 상당한 기간을 들여 친근하고 달콤한 말로 상대방의 경계심을 허뭄

6. 자신을 사업가 또는 글로벌 기업 임원으로 포장

7. 공통의 관심사로 친근감을 표현함


기사의 내용과 며칠간 내가 주고받은 카톡의 내용이 딱 들어맞았다. 

허허! 이젠 내가 외국인 보이스피싱 대상자가 되었구나! 

그것도 카톡으로 말이야...     


그러고 보니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미국에서의 사건이 기억났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10년을 살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물건들을 다 정리해야 했다. 

많은 것을 버렸고

쓸만한 것은 주변 지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상태가 아주 최상의 것들은 다시 중고로 팔기도 했다. 

그때 우리 집 냉장고는 산지 얼마 안 되는 신형이었기에 

미국에서 우리나라 중고나라 격인 'craiglist' 사이트에 냉장고 사진을 올려두었다. 

깨끗하고 멀끔한데 가격까지 저렴해서인지

많은 사람한테 사고 싶다고 문의가 왔다. 


그중 어떤 사람한테 문자가 왔다. 

자기가 우리 냉장고를 사고 싶은데 지금은 여행 중이니 

먼저 냉장고 가격을 지불할 수표를 보낸다고 했다. 

남들이 사기 전에 자기가 먼저 사고 싶은데 

지금은 여행 중이니 

수표를 먼저 보내 냉장고 가격을 지불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겸손하고 신사적(?)인 문자 내용에 나는 

그 당시 내가 살던 주소를 알려주었다. 

며칠 뒤 정말 한 사람으로부터 수표가 왔다. 

그런데 그 수표는 우리가 내놓은 냉장고 가격의 몇 배가 큰 액수였다. 

자세히 수표를 보니 은행 이름도 있고

보낸 사람 이름과 주소가 반듯하게 적힌 진짜 수표였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 수표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확인해보니 진짜 수표가 아니었다. 

알아보니, 나는 미국에서 유명한 사기 수법에 걸린 것이었다. 

보통 그렇게 큰돈의 수표를 보내고 나서 

물건 가겨을 제외한 차액은 내가 갖고 

나머지 차액은 그 사람 계좌로 돈을 보내는 것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송금해버리면 끝나는 그런 사기였다. 

지인들은 이미 caiglist에서 많이 쓰는 수법이라며 조심하라고 했다. 

다행히 나는 그 사람에게 냉장고 차액의 돈을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중하고 신사적인 문자를 그대로 믿고 차액을 송금할 수도 있었겠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속초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중에도 

꾸준하게 나의 외국인 친구는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내 안부를 묻고 

가족들은 잘 지내냐며 

다정하게 말을 건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눈뜨고 코베어가는

온라인 세상이다



아..
정신 똑띠 차려야겠다.
빨리 애들 밥이나
차려줘야겠다.



함께 읽는 글:

낯선 외국인에게 카톡이 왔다 1편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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